눈 내리는 날

100일 글쓰기 - 2

by 모사가


전혀 소식을 모르다 펑펑 내리는 눈에 당황했다. 아침 일찍 나선 아이는 오늘따라 구두를 신고 갔다. 유치원은 언덕 꼭대기라 하원이 걱정되었다. 도로에 열선이 어디까지 깔려있더라, 트렁크에 스노우 스프레이가 있던가, 머릿속이 바빠졌다. 결국 유치원에 전화를 걸어 오늘 하루만 셔틀버스 하원을 부탁드렸다. 수화기 너머 선생님들의 번잡한 목소리가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급한 불을 끄고 나니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거실에서 내다보이는 산자락이 하얗다. 앙상했던 나무들이 새하얀 털옷을 입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소담히 내려 소복하게 쌓인다. 누군가 눈은 “괜찮다, 괜찮다.” 하며 내린다 했는데, 조용히 덮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든다. 차갑지만 따뜻한 이상한 느낌이다.

오디오 전원을 켜고 음악을 고른다. 오랜만에 날씨와 어울리는 곡을 찾아본다. 슈만, 라흐마니노프, 키스 쟈렛, 성시경, 이적, 장범준.. 차이코프스키의 사계 중 10월이 눈에 들어왔다. 러시아의 10월은 오늘처럼 눈이 내리고 추위가 몰아친다. 재생버튼을 눌렀다. 음들은 고독한 계절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기호는 눈 덮인 적막한 세상을 나타낸다. 곡의 마지막, morendo. 사라지듯 점점 느리게 끝내라 적혀있다. 마치 눈 외엔 어떤 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아스라이 옅어져 간다.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한 손에는 부츠, 다른 한 손에는 눈썰매를 들었다. 소란스러움으로 고요를 대신하고 싶었다. 아파트 산책로의 언덕을 신나게 누비며 재미있다고 소리를 지른다. 어린이들이 하나 둘 모인다. 앞 친구가 무사히 언덕 아래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차례를 지키며 열심히 내달린다. 한쪽 구석의 눈사람은 찡긋한 눈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본다. 넘어져도 즐겁고 손이 빨갛게 얼어도 모른다. 아스팔트 바닥이 드러날 때쯤, 눈사람이 대가족을 이룰 즈음이 되어서야, 아쉬운 인사를 남기며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하루가 길다. 눈 때문에 바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동동거리며 보낸 오늘 하루의 시간 속, 작은 흠 하나쯤은 가려졌으리라. 눈썰매를 끄느라 저녁밥이 부실했어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우리 집 따님이 그렇듯.


눈만 왔다 하면 아파트 산책로 언덕에 동네 아이들이 모여 눈썰매를 탄다. 그 옛날 어른들 이야기 속 뒷산 비료포대의 요즘 버전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처음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