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는다는 것

100일 글쓰기 - 4

by 모사가


소설을 읽지 않았다. 내 이야기만으로도 벅찬 하루에 타인의 인생까지 더하고 싶지 않았다. 제정신으로 살기 힘든 세상에 허구까지 얹힌다면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해 낼 자신이 없었다. 미쳐 돌아나가는 통에 섞여 뱅글거리는 스스로를 지켜내는 것조차 버거운 때였다.

튕겨 나갈까 두려웠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정의할 수 없다. 부침개 반죽에 덜 개어진 밀가루 한 꼬집처럼 한번 휘저으면 가라앉을 운명임에도, 고고한 척 되지도 않을 일에 집착하고 구질거렸다. 실은 지켜야 할 것이 밀가루인지 반죽인지, 그것부터 고민했어야 됐을지 모른다.

밀가루고 나발이고. 입에 들어가면 맛이 나고, 맛이 나면 넘어가고, 식도를 지나 위에 안착한다. 그 뒤론 구불구불, 형체를 잃고 잘게 부서져 뭔지 모를 것들로 흘러간다. 지난하게 괴롭히던 것이 갑자기 사라진다. 그리 될 것은 그리 될 것이요, 안 될 것은 안 될 것이라. 너무 애쓰지 마, 이럴 때 신이 필요하다.

참을 수 없어 걸었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이 도망치자 울려댄다. 알듯 한 이름의 유치한 금박 은박 도장이 박힌 책을 집었다. 제목을 소리 내 읽어본다. 직관적이지 않은 단어에 숨이 막힐 찰나, 첫 장을 넘긴다. 음절이, 문장이, 이야기가 쏟아져 넘친다. 물처럼 바람처럼 삼키고 뱉어 모으고 펼치며 잡아 이끈다.

이제야 읽는다. 형섭은 난잡히 싸우고, 유태는 끝내 침잠하며, 글렌다는 나은 인간을 길러낸다. 대신해 살아주는 그들을 대신해 나는 살아간다. 같음에 안도하고 다름에 자위한다. 다행한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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