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15년 차 교사가 되었다. 휴직기간을 빼면 실경력은 12년이다. 중학교에 근무하고, 임용 과목은 지리지만 역사도 가르치고 일반사회도 가르친다. 그동안 교육청 사업 원고들과 시중 문제집을 써왔고 최근엔 교과서 집필을 제안받았지만 육아를 이유로 거절했다.
실은 어디 가서 직업 밝히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발끝에 차이는 돌처럼 욕먹는 직군이라 나서서 말하기 어렵다. 추억 속 어느 선생님 욕을 실컷 늘어놓는 누군가 앞에 뻘줌히 "사실은.. 제가.." 하며 끼어드는 것도 우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라는 정체성을 제외하곤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
누구나 학창 시절을 지나왔고, 그때 나의 경험에 비추어 학교를 바라본다. 인간은 제 틀을 벗어나 세상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옛날과 지금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면 많은 대화가 오갈 수 있지만, 계속해 옛날이야기만 하면 결국 단절되고 만다.
요즘 학교는 학생 수가 적다. 복직할 학교의 전교생 수는 대략 300명, 소규모 학교로 분류돼 코로나 단계와 무관하게 전면 등교를 했다. 서울 시내에서도 유독 적은 수이긴 하나, 몇 년 전부터 관내 학교들의 학급 수는 계속 줄고 있다.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큰 학교가 좋다. 아이들이 적다고 일이 줄어들지 않는다. 수업은 당연하고, 입학식, 졸업식, 자동봉진(자율-동아리-봉사-진로), 기초학력, 방과 후 등등 기본으로 해야 할 행사와 활동은 똑같다. 학급 수에 비례해 교사 수가 결정되다 보니 규모가 클수록 교사 1명이 담당하는 업무의 가짓수가 줄어든다.
학급당 학생 수는 20명 남짓이다. 물론 과밀지역은 여전히 40명 가까이되지만, 이것도 줄어든 숫자다. 담임교사가 맡는 학생 수가 줄어 전보다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건 장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 사이에 사안이 생겼을 때다.
휴직 전 담임을 했던 학급은 남학생 7명, 여학생 10명이었다. 그나마 2명은 부적응과 학생선수로 학교에 오다 말다 했다. 여학생이 고작 9명밖에 되지 않았는데, 왕따가 생겼다.
요즘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학교폭력예방교육을 많이 받아 대놓고 괴롭히진 않는다. 욕을 하지도, 싸우지도 않고 거리를 둘 뿐이다. 왕따 당했다고 온 아이는 "자기들끼리 모여서 제 욕을 하는 것 같아요, 절 쳐다보고는 그냥 돌아서 간 것 같아요." -것 같아요를 끝없이 나열한다. 모여있다던 아이들을 불러 물으면 "○○이는 저희랑 잘 안 맞아요. 자기 이야기만 하고 저희 이야기는 안 들어줘요. 그래서 그냥 같이 안 다녀요."라 답한다. 담임 입장에선 성향이 안 맞는다는 아이와 억지로 놀게 하는 또다른 폭력을 저지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혼자 남은 아이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고, 진퇴양난이다.
옛날 같았으면 한 반에 동성이 20명씩 있으니 비슷한 친구가 한두 명쯤은 꼭 있었다. 또 이 그룹에서 튕겨져 나와도 받아줄 다른 그룹이 있어 지금 같은 일은 잘 없었다. 하지만 9명밖에 되지 않는 데서 1:8이 되어버리면 정말 어렵다. 화가 나 달려오신 학부모님도 막상 상황을 듣고 나면 함께 난감해한다. "어떻게 하죠, 선생님?" 나도 뾰족한 수가 없어 답답하다.
다름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킨다. 나와 다른 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을 반복하게 한다.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왜 저 친구가 저런 행동을 할까 딱 한 번만 고민해보자 가르치고, 혼자 남은 한 명이 내가 될 수 있다 상상해보자 한다. 다름이 배척으로 이어지는 순간이 바로 폭력이라 거듭 이야기하며, 때리고 욕하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라 알려준다.
그 어느 때보다 갈등이 심한 세상이다. 사는 게 고되고 각박해 그렇다 이해하지만 옳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꽉 막힌 내 세상만 주장할 것도 아니요, 분별없이 철새처럼 몰려다닐 것도 아니다. 포용과 관용이 넘치는, 따뜻하고 올곧은 사람들이 많아지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아, 물론 나부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