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유치원에 간다. 차에 타는 아이를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며 아쉬운 척을 하곤 집에 총총 뛰어 들어온다. 신남의 꼬리는 감출 수 없다.
어질러진 집안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보지 말자, 안 보인다, 주문을 외며 컴퓨터 전원을 켠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어떤 생각이 들었나, 스쳐지나갔던 조각들을 끌어 모은다. 휴대폰에 적어놓았던 문장도 들춰보고 코치님의 글감창고도 기웃거린다. 컴퓨터에 마무리 짓지 못한 글들도 열어본다.
무남독녀 외동딸이라 어릴 때부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시진 않았지만, 같은 집에 있다고 함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내 방에서, 부모님은 안방과 서재에서, 특히나 사춘기를 지나고부턴 각자의 시간을 방해받을 일이 잘 없었다. 혼자만의 상상은 일상이었고, 누군가와 생각을 나누기보다는 짧은 끼적임으로 남겼다. 그게 습관이 돼 지금도 여기저기에 적어 놓는다. 언젠가 제대로 된 글로 완성해보자 싶은 마음에.
고개를 드니 설거지 거리가 보인다. 옆으로 돌리니 아이가 벗어놓고 간 실내복이 바닥에 그대로다. 바쁜 아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결국 정리본능이 발동한다. ‘설거지만 해야지’에서 시작해 ‘다 치웠다’로 끝난다. 그동안 생각은 더 늘었다. 오가며 빈 문서에 적어놓은 것만 다섯 개다. 간신히 자리에 앉고 나면 곧 동이 날 쌀과 물이 생각나 주문 어플을 켜고, 그러다 한 줄 적고, 주문 마치면 빨래가 기억나 돌리고, 또 한 줄 더 적고, 늘 그런 식이다. 글 쓰는 루틴 같은 게 생길 리 만무하다.
비슷하지만 매일이 다른 날들이다. 장을 보지만 상품이 다르고, 밥을 하지만 메뉴가 다르다. 아이 머리 모양도 매일 다르게 묶어 줘야하고, 날마다 달라지는 투정도 받아줘야 한다. 그 사소한 다름을 창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사이사이 테트리스처럼 글쓰기를 끼워넣는다. 나날이 끼워넣는 실력이 늘어야할텐데, 점점 쪼들려 태산같이 쌓이기만 하니 걱정이다. 이러다 곧 game over가 뜨지나 않을까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