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100일 글쓰기 - 22

by 모사가


수저 두 벌, 컵은 세 개, 밥그릇 국그릇 두 세트, 다용도 종지 세 개. 최소한의 그릇은 잘 씻어져 건조대에 차례로 늘어서 있다. 노란 불빛 아래 뽀득한 모습으로 줄지어있는 모습이 정갈하다. 살짝 썰렁한 기분이 들어 보일러 온도를 올리러 간다. 거실의 컨트롤러에서 파란빛을 뿜어낸다. 뚜-뚜- 28도까지 올려놓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거실 탁자의 테이블보 한 귀퉁이가 접혀 올라갔다. 내리러 가야 하는데, 머리로만 생각하고 가지 않는다. 뭐라 할 사람도 없잖아, 언젠간 내리겠지, 내버려 둔다. 모니터의 하얀 불빛을 바라본다. 까맣게 써넣으면 덜 눈부실 것 같다. 토닥토닥 의미 없는 단어를 두드린다.


그러고 보니 하루 종일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배달 어플 요청란에 “쥬시쿨은 빼고 주세요. 감사합니다.”라 말을 글로 적었으니 했다고 봐야 하나. 말을 품은 글은 의도를 명확히 전달했다. 쥬시쿨 대신 새우튀김 하나를 더 넣었다는 사장님의 포스트잍이 붙은 채 떡볶이는 배달되었다. 어떤 표정으로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기계적으로 빼고 넣고, 쓰고 받고, 간단하다. 정확하고 간편한 의사소통에 만족하며 새우튀김을 떡볶이 국물이 찍어 입에 넣었다.


라디오에선 피아니스트가 뿔랑의 즉흥곡 ‘에디트 피아프를 기리며’를 연주하고 있다. “이 곡은 단조예요. 단조는 슬픔을 상상한다고 하죠. 그런데 딱 2소절, 정말 이 곡의 단 두 소절만이 장조예요. 그녀의 일생 중 찬란했던 짧은 순간이 장조로 표현된 것 아닐까요.” 인생은 그 찰나의 반짝임을 위한 것인가 생각한다. 쥐구멍에 볕 들 날 있고, 꽃 피는 시기는 다 다르고, 기다리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잘 될 거라는 희망이 곧 삶인가 보다. 하긴,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그랬다. 결국 인간이 희망을 잃으면 죽는 거라고.


너무 앉아 있었다. 잠시 일어나 기지개를 켜본다. 여기저기서 우두둑, 여기 있음을 알린다. 선 김에 빙글 돌며 춤도 춰본다. 발을 열심히 놀리며 냉장고에 가 물을 따라 컵에 부어 마시며 다시 이리저리 움직인다. 커튼을 휘감아 치마처럼 만들어도 보고 노래도 부른다. 지금만큼은 내가 뮤지컬 시카고의 록시다. 한참을 그러다 창에 비친 나와 눈이 마주쳤다. 상상과는 다른 모습에 우뚝 섰다. 위아래 회색빛 운동복에 한쪽 다리는 왜 걷어붙이고, 한 손에 든 동네 이비인후과 개원 기념 컵은 또 무언가.


고요해진 집안, 층간 소음은 여전하다. 쿵쿵 쿵쿵, 박자 맞춰 울리는 소리에 심장이 함께 쿵쾅댄다. 윗집엔 노부부가 산다. 어느 날엔 빵을 사들고 찾아오셨는데, 한동안 다리가 부러져 목발을 짚고 다니셨단다. 목발을 자주 놓치는 바람에 그 소리에 놀랐을 텐데 연락 한 번을 안 해줘서 정말 고마웠다 하셨다. 이후론 그냥 넘긴다. 온종일 지친 몸이 안마의자에서는 조금이나마 나아지셨길 바라본다.


끝까지는 참기 힘들다. 결국 자리를 옮긴다. 딸깍, 부엌 싱크대 위의 작은 불을 껐다. 이제 “진짜 꿈”을 꾸러 갈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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