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기쁨

100일 글쓰기 -24

by 모사가


3년 가까이 쓰던 이어폰이 얼마 전 고장 났다. 그전부터 기미가 보여 잘 달래 가며 사용 중이었는데 결국 한쪽이 들리지 않게 되었다. AS센터를 찾으니 남편 회사 근처라 수리를 부탁했는데 어렵다는 답을 들은 모양이다.

외출했다 돌아오니 남편 앞으로 택배가 하나 와 있었다. 마침 재택 중이라 뭐냐 물으니 내 거란다. 잘 먹지도 않는 영양제를 사줬나 싶어 뜯었는데, 이어폰이다. 심지어 새로 사야지하고 봐 뒀던 제품이다. 10년째 함께 살며 받은 선물 중 가장 마음에 든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게 무엇인지 살펴본 세심함 때문이다.

출산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친구를 만났다. 20여 년을 쉼 없이 만나온 친구인데 특이한 점이라면 남자다. 좋은 친구를 잃기 싫어 일부러 남편에게도 소개했다. 1년 만에 만난 친구는, 대뜸 선물이라며 탈모샴푸를 건넸다.

"체코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파는 맥주 샴푸가 탈모에 좋다더라고. 출산하면 머리가 많이 빠진다며. 네 생각나서 사 왔어. 애 낳느라 고생한 건 내 친군데 아기 선물은 사기 싫더라."

가뜩이나 호르몬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한 시기였는데 친구의 말을 듣고 울컥했다. 그 누구도 나를 생각해주지 않을 때였다. 집에 돌아와 욕실 한편에 샴푸를 놓고 차마 쓰지 못했다. 그게 줄어들면 나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내 슬픈 눈을 봐서였나, 친구는 지금도 생일에 상품권을 보내며 애 것말고 꼭 네 것 사라고 덧붙인다.

선물을 고르는 건 참 어렵다. 상대에 대해 긴 시간 고민하고, 취향도 파악해야 한다. 품목을 정하는 것부터 난관이다. 고심 끝에 전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두렵고 소심해진다. 어떤 사람은 선물은 어차피 뭘 해도 성공확률이 낮으니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걸 하라는데, 내키지 않는다. 그렇다고 돈은 성의가 없어 보여 싫다.

열쇠는 시간에 있는 것 같다. 내가 당신을 생각하고 좋아한, 당신이 나를 아끼고 베푼 그 시간들 속에 답이 있다. 시간을 꽉 채운 생각들이 모여 좋은 선물을 고르고, 또 때로는 고민의 시간 자체가 선물이 되기도 한다. 관계를 돈독히 만들어주는 마법이다.

오늘은 남편 몫의 설거지를 돕고, 두 번 낼 화를 한 번만 냈다. 뭘 사줘서 그러는 치사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저절로 움직인다. 입꼬리가 자꾸 위로 올라가고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내가 웃긴다. 받아 들곤 고마워, 음악 들으며 진짜 고마워, 잠들기 전에 정말 정말 고마워, 세 번 말했다. 꽃노래도 세 번까지만 좋다니 더 하면 별 볼 일 일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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