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집 앞 미술학원에 데려다줬다. 1시간의 자유시간,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단골 카페에 들어갔다. 신혼 때부터 왔던 곳이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커피맛이 그대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주문하기도 전부터 "따뜻한 라테요?"라 묻는다. 1년 중 열 손가락 안에 들게 다른 메뉴를 시키는데 그때마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무슨 일이냐 물어봐준다. 더워서, 단 게 당겨서, 이유는 단순하다. 어느새 커피 취향도, 시시콜콜한 일상도 나누는 사이가 됐다.
늘 예쁜 라테아트를 그려 커피를 내준다. 하트, 나뭇잎, 곰돌이, 다양하다. 오늘은 하트다. 커피에 대한 주인의 자부심 같기도, 애정 같기도 한 하트를 망가트리고 싶지 않다. 한쪽 끝으로 조심히 마시면 마지막까지 하트를 만날 수 있다. 거품의 간질거림과 하트의 따사로움, 따뜻한 커피의 넘실거림이 좋다.
고요한 시간, 카페 안을 가만히 둘러본다. 노란 불빛 아래 목화송이를 바라보며 저런 따스함을 언제 느꼈더라, 과거를 더듬는다.
차 보조석 아래 신발 한 켤레가 떠오른다. 20년 가까이 된 하늘색 양가죽 플랫이다. 굽이 많이 높은 신발을 신었을 때만 세상 구경을 나온다. 딱히 편한 것도 아니고 아끼지도 않는데 그냥 언젠가부터 가방에 담긴 채 이 차에서 저 차로 옮겨 다니며 계속 있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새로 산 예쁜 신발에 물이 튀는 게 싫어 요리조리 피해 가며 집에 가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졌고 노력은 소용이 없었다. 이미 밖이 다 젖어 무거워진 신발은 걸을 때마다 벗겨지며 안쪽까지 물이 차기 시작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터덜터덜, 계단 대신 나무가 양옆으로 무성한 언덕을 올랐다.
마침내 도착한 버스정류장에서, 내 손을 이끌고 기숙사 휴게실로 데려가 젖은 신발을 벗겨냈다. 비에 젖어 망가진 신발이 꼭 나 같아서 엉엉 우는 날 달래며, 휴지로 꾹꾹 누르고 드라이기로 말렸다. 그깟 신발로 뭘 울기까지 하느냐 타박하는 대신 다 마르면 집에 갈 수 있겠다고 위로했다.
일 년에 한두 번도 안 신는데 뭐, 라며 신경 쓰지 않던 신발엔 사실 그때의 따스함이 녹아있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렇게 유치하게 울었던 적도, 온전히 받아들여졌던 적도 없었다. 나의 민낯을 가장 넉넉하게 품어줬던 그 기억을 놓을 수 없어 아마도 버리지 못했나 보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이 그냥 곁에 두자 정한 건 아닐까.
금세 1시간이 지났다. 하트는 컵 밑바닥에 아직 모양을 유지하고 있다. 기억 속 플랫슈즈도 빛이 바랬지만 여전히 하늘색이다. 나에게 보여준 타인의 진심이 무거워 마음에 담는다. 버릴 수 없어 간직하고, 간직하다 보니 또 버릴 수 없다. 하트를 휘젓고 신발을 내다 버릴 날이 오긴 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