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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15. 2022

사소한 비밀

- 엄마도 대나무숲이 필요하다 -


아이가 다급하게 엄마를 부른다. 씻고 나와 긴 머리를 열심히 빗더니 풀어헤친 채 거울을 보고 있다.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는 걸 귀찮아해 늘 묶고 있는데,  그렇지 않은 모습에 무슨 일일까 생각했다.


"엄마, 나 이러니까 다른 사람 같지 않아?"


아이는 이제 여덟 살이 되었다. 어린 마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온갖 호들갑을 떨며 답한다.


"어머~ 이게 누구야. 누군지 몰라봤네! 어쩜 이렇게 예뻐?"


남이 들을까 부끄러운 말을 천연덕스럽게 뱉으며 연기혼을 불태우면, 아이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화답한다. 거기에 더해진 매우 거만하고 오만함은 기본이다.

조금 있으니 머리띠를 끼고 와선 예쁘냐 묻는다. 이 머리띠, 저 머리띠, 심지어는 큰 리본핀을 두 개나 머리띠에 끼워 쓰고 나타난다. 자신은 공주라며 요염한 눈빛을 쏘면서 포즈를 취하곤 사진을 찍어라, 이번엔 동영상이다, 각종 지시를 내린다.

한참 들어주다 보면 요샛말로 현타가 온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건 무엇. "나는 내가 아니다"를 주문처럼 왼다. 힘들다 말하지 못하고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며 최선을 다한다. 마음속엔 내가 이러려고! 공부를 하고! 휴직도 하고! 진짜! 욕 아닌 욕이 부글댄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걸 참 잘한다는 칭찬으로 끝이 났다.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조막만 한 꼬맹이한테 된통 당한 느낌이라 영 별로다. 표정을 살핀 아이는 엄마 왜 그러냐 묻는다. 뾰로통할 여유조차 없는 것에 체념하며 다시 활짝 웃고, 확인을 마친 아이는 자기 방으로 노래하며 뛰어갔다.

그래서 여기에 슬쩍 불만을 털어놓는다.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적다 보니 혼자 투덜댈 곳은 인터넷 밖에 없다. 아이가 컴퓨터를 몰라 다행이다. 혹시 알게 되어도 이렇게 흉이라도 속 시원히 보게 알려주지 않을 거다. 부모 자식 간에 서로 사소한 비밀은 좀 지니고 살아야 숨통도 트이고 하지 않겠나. 엄마 욕, 아빠 욕, 선생님 욕, 이 세상 욕이란 욕은 다 하고 싶은 사춘기에 마음껏 내지를 수 있게 해주려면, 나도 작은 해우소 하나쯤 미리 마련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천사처럼 아이는 잠이 들었다. 고롱고롱 숨소리가 귀여워 토실한 볼에 뽀뽀했다. 이런 일을 할 사람이 따로 없는지 잠결에도 "엄마.." 한다. 미워하지만 예쁠 때도 있고, 미워하지 않지만 안 예쁠 때도 있고, 사랑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걸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 언제까지 가능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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