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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23. 2022

나의 전부

- 기쁜일이 100개 -


나와 달리 따님은 자꾸 그림을 그린다. 조용해서 가보면 혼자 사람도 그리고 꽃도 그리면서 놀고 있다. 다 그리면 색칠까지 마친 뒤 가위로 잘라 역할놀이를 하기도 한다. 미술학원도 재밌게 다닌다. 미술학원 가는 날이 언제인지 손꼽아 기다리고 보조가방에 친구들 젤리까지 챙겨 현관에 놔둔다. 그렇게 좋냐고 물으면 "당연하지"라 답한다. 뭐 그런 걸 굳이 묻느냐는 투다.

요샌 사립초 입학을 앞두고 영어를 배우고 있다. 공립학교는 먼 대신 사립학교가 많은 동네이, 바쁜 맞벌이 부모라 챙겨주기 힘들다는 핑계로 진학을 결정했다. 본인이 원한 게 아니라 공부 부담까지 주고 싶진 않았지만 영어로 이름은 쓸 줄 알아야 한다길래 급히 시작했다. 수준이 수준이다 보니 열심히 알파벳 쓰기와 파닉스를 배운다. 선생님은 지금은 딱히 단어 뜻을 알려주고 싶지 않으신 것 같은데 따님은 그게 많이 궁금한가 보다. 선생님께 계속 물어 알아내곤 그림을 그리며 한 번씩 외워본다.

수업이 끝난 뒷정리를 하다 단어카드에 끼적인 그림이 귀여워 사진을 찍었다. 그런 건 부끄럽게 왜 찍냐며 한소리 한다. 그리고는 나 잘하지 않았냐며 칭찬해달란다. 도무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앞니는 두 개나 빠져서 개구쟁이 짓을 해대니 벌써 제1사춘기라도 온 건가 싶다.



싫어만 반말인 게 우스워 한참 웃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 가져간다도 반말인데? 한다. 생각해보니 그렇다. 그냥 말하듯 자연스레 써놓은 거다.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려면 한참 멀었다. 괜히 머쓱해 아이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며 껴안았다. 엄마 왜 이러냐면서도 코알라처럼 안아달라며 파고든다. 아직 어리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이는 내가 엄마라는 걸 그냥 받아들였고, 엄마라는 이유로 자신을 의탁했다. 목도 가누지 못하던 시절엔 심지어 생명을 기댔다. 세상에 그만큼 온전히 나를 믿어줄 존재가 과연 또 있을까. 우리는 서로의 전부다. 아이가 없었다면 슬픈 일도 없지만 기쁜 일도 없었을 다. 아이가 있어 슬픈 일이 100개, 기쁜 일도 100개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알게 해 준 따님이다.

오늘은 희와 의 날이다. 따님은 뽕뽕한 배와 빵빵한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고 있다. 알 수 없는 흐느적댐을 과연 춤이라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웃긴다. 웃겨서 웃는데 좋아서 웃는다 착각하곤 더 열심히 춘다. 마음 한구석 사랑의 샘이 넘쳐흐른다. 기분이다! 나도 일어나 같이 온몸을 흔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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