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일과 날짜도 모른 채 따님과만 지내다 보니 매일이 비슷하다. 바쁘긴 엄청 바쁜데 하루를 돌아보면 아이 밥 챙겨주고 숙제 봐주다 잠시 입씨름한 기억밖에 없다. 우리 딸은 빨간 머리 앤 같은 아이라 귀여우면서도 엉뚱하고 재밌다. 그 순간의 유쾌함을 잊지 않으려 기록해놓는데, 문득 하나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 무렵의 일이다. 갑자기 아침 등원 전에 가방을 뒤지던 따님이 종이 두 개를 건네줬다. 또 한글 파괴의 괴랄한 편지인가 싶어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받으려는 찰나, 한마디 하신다.
"엄마, 산타할아버지 연락처 알아?" "으..응????" "내가 산타할아버지한테 선물 받고 싶다고 편지를 썼는데, 엄마가 연락처 알면 좀 전해줘."
1차 연락처, 2차 구체적인 선물 공격의 충격으로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양말에 편지 넣어놓으면 선물 주신다던 이야기는 휴대전화 때문에 사라진 옛 감성인가 보다. 책은 잘 안 읽지만 그래도 휴대폰도 안 보여줬고 유튜브나 컴퓨터도 모르는 따님인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한참을 고민했다. 별 뾰족한 수 없이 시간만 흘려보내곤 요새 애들이 다 이렇겠지, 체념하고 하원을 시키러 갔다.
"근데 따님아, 엄마가 신디 기타 사주면 안 될까?" "엄마, 그건 산타할아버지 선물이고. 엄마는 다른 걸 사줘야지. 내가 생각해보고 말해줄게."
이번엔 더 어이가 없어 우리 엄마한테 하소연하러 전화를 걸었다. 그랬더니 엄마가 웃으며 그러신다.
"할아버지한테는 병아리 모양 반짝이는 뭘 사달라 했다던데?"
알고 보니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산타 할아버지한테 다 다른 선물을 말한 거였다. 크리스마스에 한탕할 준비를 했나 보다.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입이 떡 벌어진다. 당당해서 더 놀랍다.
하기사, 부처님 오신 날에는 부처님 생일이니 (본인이 먹고 싶은) 케이크 사서 축하해야 한다던 따님이시니 무슨 말을 못 하겠나. 내가 낳았지만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따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