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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Feb 04. 2022

일하는 부모란

- 생각없이 삽니다 -


언젠가부터 깊은 고민 없이 살고 있다. 지키고 싶은 무언가도, 놓고 싶지 않은 어떤 것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버린 지 오래다. 생각한 대로 되는 일이 한 개도 없는 날이 수두룩하다.

어느 날 밤, 아이가 아팠다. "내일 아침에 병원 가야 할 것 같아."라는 내 말은 공중에 흩어졌는지 일어나 보니 남편이 없다. 부랴부랴 학교에 전화수업을 바꿀 수 있는지 물었다. 간신히 1교시 수업을 오후로 미루고 병원에 들렀다 친정엄마께 아이를 부탁하곤 출근했다. 이어지는 수업과 업무에 점심도 못 먹고 일만 하다, 4시 반 땡! 하자마자 다시 총알같이 집에 온다.

'개인 사정으로 학교에 피해 주고 싶지 않다. 점점 늙어 가시는 친정엄마 발목 잡고 싶지 않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끼니를 건너뛰며 일하지는 말자. 난폭운전, 칼치기는 내 인생에 없을 줄 알았다.'

안 하고 못 하리라 생각했던 내 소신과 신념, 믿음은 종잇장보다도 더 하찮다. 나는 늘 이쪽저쪽 다 못하고, 민폐와 진상 사이를 오가며, 멋쩍은 미소로 미안함을 대신한다.

저녁에 돌아온 남편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른다. 너만 바쁜 일 있냐, 그냥 회사로 날라버리면 다냐, 왜 나만 맨날 다 책임지냐, 넌 아빠 아니냐, 참아 온 모든 울분이 순간에 터져 나온다. 미안하다, 고생했다, 그 말에도 화가 나 말이면 다냐고 쏘아붙인다.

결국은 돌고 돌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모른다는 신세한탄과, 남들보다 배는 열심히 공부한 세월이 아까워서라도 버티자는 악다구니만 남는다. 냉탕과 온탕처럼 얼어붙다 불 뿜다 수시로 널을 뛴다. 게다 내 앞길을 막고 있는 저기 저 아저씨 한 명은 처단의 대상인지 포용의 대상인지 불분명해 번번이 싸운다.

그래서 생각을 접었다. 닥친 일을 그냥 한다. 이거 하고 다음은 그거고 그다음은 저거고, 감정도 일절 없다. 기계적인 일처리다. 그러면 좀 덜 힘들다. 왜?라는 의문은 절대 이 미션들을 성공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자발적 바보가 되었다.

옛날처럼 집 앞 놀이터에 혼자 나가 놀고, 잠시 옆집에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집이라도 하나 마련하려면 맞벌이는 필수요, 인터넷의 발달로 몰라도 될 것들이 쏟아져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기만 한다. 요즘 부모들, 이래저래 힘들게 산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는 나와 당신들을, 위로하고 격려한다. 다 잘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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