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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사가 Jan 24. 2022

엄마와 미역국

- 싫어하는데 제일 잘하는 아이러니 -


미역국이 싫다. 검고 미끄덩거리는 물체가 물에 빠져 흐물대는 걸 건져 입에 넣고 싶지 않다. 태생이 물인 것을 굳이 육지로 가져와 바싹 말렸다 다시 물에 넣는 아이러니를 왜 저지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산처럼 불어나는 모습마저도 유쾌하지 않다.

밤 12시에 아이를 낳고 돌아오니 2시간 만에 미역국과 밥, 흰 우유를 줬다. 고된 출산이 아니어 정신도 몸도 제법 말똥 했지만 삼시세끼 미역국만 먹어야 되는 사람이 됐다. 새벽 2시에 미역국을 주는 것도, 먹는 것도 웃겼다. 생일에도 잘 안 먹는 미역국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것도 온 식구의 다정한 감시와 함께. "아이고 잘 먹네, 그렇게 잘 먹어야지." 묘한 응원은 덤이다.

매주 한 번씩 미역국을 끓인다. 내 속에서 탄생한 그분은 나와 달리 미역국을 사랑하신다. 팔자에 없는 미역국 장인이 될 기세다. 소고기 미역국, 조개 미역국, 가자미 미역국, 황태 미역국, 종류도 다양하다. 다른 걸 먹어주면 좋으련만 무조건 미역국을 외친다. 그분의 세상엔 미역국이 제일이다. 내가 그리 키우지도 않았는데 열심히 편협한 인간으로 성장 중이시다.

엄마라는 역할을 부여받았단 사실을 미역국 덕에 깨닫는다. 부족한 엄마, 모자란 엄마라며 자책 속에 빠져있을 때 미역국은 위로의 음식이다. 세상에 자신이 먹지도 않을 음식을 돈도 안 받고 기꺼이 만들어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싫어하는 걸 꾹 참고 노력할 만큼 나는 널 사랑해,라고 합리화도 해본다.

오늘도 국거리를 손질하고 미역을 불린다. 고기를 볶고 미역을 넣어 보글보글 끓이면 그분이 물으신다. "엄마, 오늘 미역국 했어? 와, 신난다!" 그래, 그거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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