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과 친한 사람
100일 글쓰기 - 47
말과 관심을 줄이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어제 앞자리 선생님의 아이가 아팠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괜찮은지, 옆자리 부장님은 지난 주말 산에 가신다 했는데 버섯은 많이 따셨는지, 궁금한 게 산더미다. 내 일에만 집중하며 차분해지려 노력도 해봤는데 갑갑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좋은 말을 많이, 신나게, 하는 것으로 자신과 타협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밝고 유쾌하며 느끼는 그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 만난 친구 하나가 그런다.
"나는 네가 진짜 부러웠어. 어쩜 사람이 그렇게 기복 없이 늘 똑같을 수 있는지 신기하더라니까. 널 보면서 아, 저런 건 그냥 넘길 수 있구나를 배웠어."
주변의 평가와 상반되는 이야기를 꺼내는 친구가 놀라웠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 물었더니 넌 그냥 세상 모든 일에 관심은 많은데 "응, 그렇구나."로 끝났다 한다. 남을 바꿀 생각이나 내가 바뀔 생각도 없이, 나는 나 너는 너를 한결같이 실천했다 말한다. 남의 시선에 신경 쓰고 불안해하던 자신과 정반대인 날 보며 위로받고 용기도 얻고 또 저렇게 살아도 괜찮구나 생각했단다.
사실 나에겐 동심원이 두 개 정도 있다. 그냥 아는 사람 원과 그 안에 있는 친한 사람 원이다. 그냥 아는 사람들은 연락을 자주 하더라도 딱히 휴대폰 번호를 저장하진 않는다. 사람을 필요에 따라 만나는 건 염치없다 생각해 마음을 나눌 사이가 아니라면 굳이 깊이 친해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타고난 오지랖 덕에 들은 걸 지나치지 못하다 보니 이런저런 것들을 기억했다 묻는다. 사람들은 그게 관심이고 애정이라 생각해 나와 아주 친하다 느끼는 것 같은데, 그냥 정도의 차이에서 오는 좋은 오해들이라 넘기고 산다.
반면 친한 사람들은 별다른 연락 없이 있다 고민이 생기면 만난다. 이상하게 힘들 때만 보게 된다. 나는 주로 듣는 입장이고, 친구들은 울분을 토로한다. 연애에 실패하는 친구에겐 네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을 뿐이니 잘했다고, 직장상사가 괴롭힌다는 친구에겐 시원하게 면전에 욕하고 그만두라 말해줬다. 그런데 솔직히 그건 너의 문제이니 네가 제일 잘 알지 않냐, 내가 하는 말이 딱히 의미 없지 않니?라고 덧붙이자 친구가 한마디 한다.
"야, 근데 넌 기복이 너무 없어서 아주 사회화가 잘 된 사이코패스 같을 때가 있어. 영혼 없는 공감몬이야!"
얘를 친구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너 오늘부로 확 아는 사람 원으로 밀어버리는 수가 있다. 진짜 친해서 딱 한 번만 봐주는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