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

100일 글쓰기 - 62

by 모사가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어제까지 1차 원고 마감일이라 쉴 새 없이 머리를 썼더니 과부하가 걸렸다. 어떤 생각도,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아 저녁 무렵까지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젯밤 늦게 메일을 보낸 탓에 답장은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문제들이 아주 좋다며 피드백이 왔다. 좀 귀찮아도 자료를 많이 찾고 이것저것 들여다본 보람이 있다.


남편은 예민한 날 위해 집안일을 도맡았다. 툴툴거리는 부인의 신경질을 다 받아주고, 아이의 요구사항도 날쌔게 들어준다. 분명히 힘들 텐데 묵묵히 받아주는 그 마음이 고맙다. 말로는 쑥스러워 작은 손하트로 감사함을 대신했다.


재우러 들어가 함께 누웠는데 아이가 묻는다. “엄마는 언제부터 왜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 답을 하려다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해졌냐 되물었다. “선생님은 너무 힘든 것 같아. 가르치기도 해야 하고, 챙겨주기도 해야 하고, 문제집도 써야 하고, 할 게 엄청 많아.” 요 며칠 마감에 시달리며 컴퓨터 앞에 붙어있었더니 보는 아이도 힘들었나 보다. 바쁜 척, 힘든 척 좀 그만할 걸, 다 내 잘못이다. 기민한 딸은 그 짧은 시간에 엄마를 잘도 파악했다.


늦은 밤, 아이가 잠들고 나서야 다시 노트북을 켰다. 산더미처럼 참고서를 쌓아놓고, 교과서를 뒤적거린다. 별 것 아닌 문장 하나 만들면서 오만상을 찌푸린다. 켜진 부엌 불에 나온 남편은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다시 방으로 들어간다. 아이만 몰랐으면 하는 비밀을 이렇게 또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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