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알라맘 Sep 27. 2020

너는 봄, 나의 봄

춘구월 호주는 봄 봄 봄

수화기 너머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는 그곳의 안부를 전해 들을 때, 여기는 새순이 돋고 꽃망울이 열리고 하루하루 따스함이 더해지는 봄이 문턱에 와있다. 한국과 호주 멜버른은 시차도 거의 없고, 통신 기술의 발달로 날이면 날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화상 통화도 하고, 그래서인지 몸도 마음도 그리 멀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그러나 반대의 계절을 산다는 것, 지구의 반대편에 서있다는 것, 다른 방향에서 해와 달을 본다는 것, 춘삼월이 아닌 춘구월을 맞이한다는 것, 매해 봄마다 흩날리는 꽃잎들처럼 내 마음에 살짝 향수병이 찾아오는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6월 말 멜버른에 코로나 바이러스 2차 유행이 시작되고, 2번째 락다운으로 집에 갇힌 지 석 달이 지났다. 겨울에는 추워서 밖에 나가기 어려우니 또 그럭저럭 견딜만했는데, 봄이 오고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너무 오래 집에 갇혀있던 사람들 모두 폭발하기 일보 직전, 9월 중순 아이들 놀이터를 개방하고 하루 2시간까지 야외 활동을 하도록 다행히 락다운도 조금은 풀렸다. 지난한 동굴 속 겨울잠을 자고 밖에 나와 기지개를 켜는 곰들처럼, 올봄은 정말 새로이 시작하는 새 계절을 맞는 느낌이다. 여느 해보다 봄이 반갑다. 봄비에 싹을 틔우는 초록도, 색을 피우는 꽃들도.






밤사이 비가 내리고 아침 햇살에 기분 좋게 아이와 산책을 나왔다. 집 앞 골목 가로수들이 팝콘처럼 하얀 꽃을 틔우고 있다. 서른 해 봄마다 보았던 내 고향의 벚꽃과 닮았다. 봄바람에 꽃잎들이 휘날리며 흩날리는 모양이 꼭 그랬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절로 익숙한 그 노래가 흘러나온다.


사랑하는 그대와 단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사진을 찍어 올리면 식물 이름을 알려주는 스마트폰 어플 덕에 그것이 배나무에 핀 하얀 배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바람에 날린 꽃잎들이 골목 끝 봄비 웅덩이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그 잔잔한 평화를 아이는 힘껏 돌을 던져 기어이 깨어놓는다. 그러고는 차도로 뛰어드는 바람에 잠시 봄꽃 감상에 젖어있던 엄마의 평화도 아이를 쫓으러 달려간다.


봄꽃이 만개한 배나무와 골목 끝 봄비 웅덩이





너는 봄, 아직 꽃도 피기 전 이제 막 새순이 돋으려는 봄, 파릇파릇 곧 초록을 피워 올릴 역동적인 에너지, 봄비 웅덩이 위를 파닥파닥 두발로 구르며 둥글고 작은 물결을 만들어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는 봄.

나의 봄, 연분홍빛 벚꽃이 날리던 서울의 봄, 봄내에 취해서 나의 청춘에 취해서 밤이면 속절없이 술에 취하던 홍대와 낙성대의 봄,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 엔딩’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고 또 걷던 한강의 봄.

지구 반대편의 춘구월을 맞이하며, 벚꽃이 아니라 흩날리는 배꽃과 함께 봄바람을 맞으며, 사랑하는 나의 봄과 단둘이 손잡고 집 앞의 골목을 걷고 있다. 그렇게 또다시 그리워질 나의 봄이 지금 한창이다.


이전 14화 길어지는 코로나 락다운에 고마운 우리 집 뒷마당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