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기 꼭 한 달 전에 이사를 왔고, 미처 뒷마당을 손볼 틈도 없이 아이가 태어났다. 그리고 두 시간 텀으로 먹고 자는 아이를 백일 동안 돌보는 동안, 뒷마당에는 푸릇푸릇 잎이 돋는가 싶더니 이내 노릇노릇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가만히 그 잎을 들여다보니 우리가 익히 아는 세 잎 클로버, 클로버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은 몰랐는데, 잎들보다 한 뼘이나 높은 줄기 위에 노란 꽃망울들이 올망졸망 맺히기 시작하였다. 네 잎 클로버가 행운을 뜻한다면 세 잎 클로버는 행복이란 뜻이라는데, 우리 집 뒷마당에 행복꽃이 천지로 흐드러지게 피었구나.
그렇게 두 해 겨울을 지나고 아이가 걸음마를 뗐다. 이제 슬슬 아이가 뛰어놀 뒷마당을 준비할 필요성을 느꼈고, 아쉽지만 저 행복한 정글과는 이제 작별 인사를 해야 할 때가 왔다. 때마침 코로나 유행으로 3월 말 호주도 봉쇄령이 내려졌고, 이제 막 혼자서 미끄럼틀을 타기 시작하던 아이의 동네 놀이터는 문을 닫았다. 우리는 서둘러 뒷마당을 아이 놀이터로 만들어주었다. 콘크리트와 잔디를 깔고 미끄럼틀을 들여놓고, 자전거며 온갖 탈 것들도 동네 여기저기서 주워왔다. 40평 가까이 되는 뒷마당은 아이 혼자 뛰어놀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아니 너무 과분했다.
우리가 이 집을 살 때만 해도 쓸데없이 뒷마당이 너무 넓은 것, 다시 말하면 집 밖에 노는 빈 땅이 너무 많은 것이 불만이었다. 차라리 이만큼 방이 좀 더 컸으면, 거실이 좀 더 넓었으면 싶었더랬다. 그런데 난데없이 코로나 봉쇄령으로 온종일 집에만 있어야 하는 상황이 닥치자, 천장 대신에 하늘을 볼 수 있는 집 안이지만 집 밖이기도 한 이 빈 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한창 몸으로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하는 사내아이가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는 이 넓은 뒷마당이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깨닫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이 오랜 락다운을 어떻게 견뎠을까.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 멜버른은 3월 말부터 5월 초까지 6주 동안 사회 봉쇄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6월 말 코로나 바이러스 2차 유행이 다시 오면서, 7월 한 달 3단계 락다운을 시작으로, 8월부터 오늘 현재까지 6주 동안 4단계 락다운인 상태이다. 슈퍼와 약국 같은 가장 기본적인 생필품을 파는 곳 이외의 모든 상점들이 문을 닫았고,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필수 사업장을 제외하고는 일도 임시 휴업 중이다. 밤 8시부터 새벽 5시까지는 통행금지라 아예 밖에 나갈 수 없으며, 한 사람당 하루 한 시간 집에서 5km 이내로 운동을 하거나 장을 보러 갈 수 있다.
앞으로 4단계 락다운은 2주가 남았고, 연말까지 2-3단계에 준하는 봉쇄령은 계속될 거라고 한다. 호주는 크리스마스 때가 여름휴가 시즌이라서, 정부는 계속 사람들에게 그때까지만 참아달라고 거듭 당부를 한다. 하지만 올 연말쯤 호주 전 국민이 맞을 수 있다던 코로나 백신에 치명적인 부작용이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유럽에서는 여름휴가가 끝나자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하며 바이러스 재유행이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길어지는 락다운에 여긴 지금 경제뿐만 아니라, 우울증에 가정 폭력에 자살까지 심각한 사회 문제들을 함께 앓고 있다. 7월부터 두 달 넘게 집에 갇혀 화가 난 사람들은 오늘도 대규모 시위를 하는 중이다.
뒷마당에 잔디를 깔고 나서 뿌리를 잘 내리게 하려면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어야 한다고 했다. 이부자리에서 나오기 싫은 초가을의 쌀쌀한 아침, 두꺼운 옷을 걸치고 아이 옷까지 입혀서 밖에 나가기가 귀찮았다. 그런데 잔디에 물을 주고 있노라면 매일 아침 해돋이를 보는 것처럼 하루를 기분 좋게 웃으면서 시작할 수 있었다. 물길 따라 소리를 지르며 똥강아지처럼 잔디 위를 뛰어다니는 아이, 잔디에 물을 주는지 아이에게 물을 주는 건지, 아무튼 둘 다 흠뻑 젖었다. 잔디는 땅에 뿌리를 튼튼히 내릴 것이고, 신나게 뛰노는 아이의 다리도 튼튼해질 것이니, 아무튼 일석이조다.
지난 3월 유럽이 사회 봉쇄를 시작하면서 이탈리아에서부터 다 잘 될 거라는 뜻을 담아 희망의 상징이 된 무지개. 햇빛이 좋은 날 물줄기를 길게 해서 잔디에 물을 뿌리면, 뛰고 있는 아이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떠올랐다. 하늘도 땅도 아이도 푸르고 색이 없는 물과 빛이 만나서 무한한 색을 피우는 순간, 아이는 자신의 최대 속력으로 뛰고 최선을 다해 웃으며 최고의 행복을 누리는 순간을, 나는 매일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임에도 그 행복과 희망의 순간들을 계속 사진으로 담았다. 락다운이 점점 길어지고 비록 그 희망의 색은 자꾸 바래더라도, 우리는 지금 여기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행복을 지켜내야만 하니까.
지난겨울 집에서 혼자 갓난쟁이를 돌보며 갑갑하던 나에게, 창밖으로 보이는 뒷마당 세 잎 클로버 노란 꽃들이 행복을 선물했다면, 올해는 락다운 때문에 한창 뛰어놀 아이와 집에 갇혀버린 나에게, 우리 집 뒷마당은 아이의 행복한 비명 소리와 함께 희망의 무지개를 띄운 ‘그래도 다행’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이 고맙고 과분한 행복을 잘 지켜내기 위해서, 길어지는 락다운에 깊어지는 시름일랑 훨훨 날려버리고, 아이와 함께 더 씩씩하게 몸도 마음도 더 튼튼하게, 우리 집 뒷마당에 웃음꽃도 행복꽃도 피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