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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알라맘 Aug 30. 2020

미니멀리스트 엄마의 맥시멀 육아법

돈도 환경도 아끼는 법,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법

1년짜리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호주로 건너올 때, 내 짐은 노트북 컴퓨터를 포함하여 7kg 기내 수하물이 전부였다. 호주에 오기 전까지 나는 10년 동안 배낭 하나 메고 세상 곳곳의 여러 나라들과 많은 도시들을 떠돌아다녔다. 마땅히 한 곳에 거처가 없었던 나는 늘 짐을 싸고 풀기를 반복하였고, 그 짐 혹은 집을 달팽이처럼 등에 메고 걷는 길 위의 삶은 짐의 무게도 소유욕도 내려놓게 만들었다.


호주에 와서 남편을 만나고 원베드룸 작은 아파트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침대도 소파도 부엌의 그릇들도 다 남편이 어디서 공짜로 주워왔다. 십만 원 정도를 주고 내 키보다도 작은 중고 냉장고 한대를 샀다. 남편은 돈이 좀 모일 때마다 큰 냉장고를 사고 싶어 했지만, 나는 그럴 돈 있으면 여행을 가야 한다며 남편을 끌고 호주 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 그렇게 2년 반을 살았다.


어쩌다 큰 집을 사고 안방에 드레스룸까지 생긴 지금에도 나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남편에게 옷 좀 사 입으라는 잔소리를 듣는 와이프다. 어느 날 친한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지금 당장 A4 종이 한 장에 속옷 양말 포함하여 내가 가진 옷가지를 다 적어보라고 하면 할 수 있다고. 내 결혼식을 포함하여 나를 보러 호주에 두 번이나 왔었고, 현재 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 그 친구의 대답이 더 가관이었다.

나는 네 옷들 그 종이에 그림으로
다 그려보라고 해도 할 수 있겠어!







그런 내가 임신을 하고 엄마가 되면서 내 스스로도 놀라울 만큼 물욕이 샘솟았다. 육아도 장비발(!)이라며 모빌부터 바운서, 쏘서, 점퍼루, 보행기, 범보 체어, 하이체어, 심지어 같은 아이템도 브랜드 별로 2-3개씩 구매했다. 웬만한 어린이집 부럽지 않을 만큼 아이 책이며 장난감이며, 세 식구만 사는 40평 집이 온통 아이 물건으로 가득 찼다.



옷은 또 어떤가. 남편과 내가 같이 쓰는 안방 드레스룸은 텅텅 비어있는데 아이 옷은 아이방 벽장 하나가 부족하다. 생후 800일이 지난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적어도 800벌 가까이 옷을 입었다. 아이가 맞는 3번째 겨울 (현재 호주는 겨울) 이번 F/W 시즌 컬렉션에는 (만 2세 아동복 사이즈로는) 긴팔 티셔츠만 50장, 긴 바지만 30벌, 옷걸이에 걸린 후드 잠바와 겨울 외투만 20벌 이상이 있다.




외국에서 잘 사고(?) 잘 산다고(!)
지금 자랑질을 하고 있는 것인가?
사실 나의 자랑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는 아이 옷도 육아템도 책도 장난감도
대부분 공짜로 쓰고 있다.


그 비법은 중고마켓에서 사서 쓰고 다시 중고마켓에 팔기! 보풀이 일어난 옷을 물려 입히고, 어디가 크게 찢어지지 않는 이상 또 물려준다. 다른 아이들의 손때가 묻은 (색이 바래고 생뚱맞은 스티커가 붙어있는) 장난감과, 멋지게 사인을 해놓은 (마구 낙서가 되어있는) 책은 돌려본다. 이용 기간이 짧은 아이들 옷과 물건은 새것을 제값을 다 주고 사기에는 돈이 아깝고, 더 이상 필요가 없어져 처분을 해야 할 때도 여전히 새것이라 그냥 버리기에는 물건이 아깝다.


그러니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일석이조 이득이 있는 육아 ‘아나바다(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기)’ 운동에 나는 적극 동참하고 있다. 호주는 오래전부터 환경보호에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높고, 현재 기후변화 문제에도 그들의 자발적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아직 쓸만한데도 자신에게 필요가 없는 물건이 있으면, 좀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중고마켓 무료드림 게시판에 올린다. 한국과 달리 종량제 봉투나 폐기물 스티커 없이 그냥 버려도 되지만, 개개인 스스로 그런 작은 나눔과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다.


이 중에 딱 한 벌 새 옷으로 사주었다!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나 죽으면 그만이라 생각했던) 지구 환경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아이가 태어나고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 지수는 내 인생 그 어느 때보다 최고점을 찍었다. 기저귀와 물티슈는 절대 불가항력의 영역이요, 자주 변을 보는 아이 때문에 화장실 휴지통 비닐도 하루에 서너 번을 교체한다. 출산 직후 집에 와서 브리타 정수기에 물을 받고 옮기다가, 그만 손목이 떨려서 정수기를 바닥에 떨어뜨릴뻔한 적이 있다. 그 후로 2년 가까이 마트에서 페트병 생수를 사다 먹었다.


지난 호주 여름 어마어마했던 산불의 연기가 수백 킬로를 날아 우리 집 현관 앞까지 시커멓게 몰려왔을 때, 이번 한국 여름 온 나라가 빗물에 떠내려가지 않을까 싶을 만큼 긴 장마가 이어졌을 때, 그린란드와 남극의 빙하가 녹고 북극곰과 펭귄이 멸종될지도 모른다는 그 어떤 뉴스를 들었을 때보다 확실히 실감이 되었다. 이제야 앞으로 계속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 환경과 기후변화에 대해 진심 어린 걱정이 되었다. 이미 늦은 것은 아닐까 후회와 자책감을 느끼며, 페트병 생수를 끊고 다시 브리타 정수기를 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더 열심히 하기로 결심한다. 사실 우리 집 경제를 위해서 시작했던 나의 육아 아나바다 운동을,  앞으로도 지구 환경을 위해서 꾸준히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자본주의와 자유경제라는 미명 아래 이미 차고 넘칠 만큼 물건을 만들어낸 우리의 업보를 조금이라도 반성하고자, 루시드폴의 ‘사람이었네’ 노래 가사에 나오는 ‘공장 속에서 비옷이 되어 팔려온’ 하루 1달러를 버는 지구 반대편의 아이들에게 사죄하고자, 지금 병들어 죽어가는 지구에게 마지막 심폐소생술이라도 되고자, 나는 계속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쓸 것이다.







일 년에 옷 한 벌 사 입을까 말까 한 내가 아이를 옷 부자 패셔니스타로 키우는 모습을 보며, 우리 이모가 성인 옷도 그렇게 사이즈 별로 한 묶음씩 팔면 좋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하셨다.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것이 엄마의 마음이 아닐까? 그래서 조금 더 비싸도 피부 트러블이 적다는 천연 오가닉 코튼 옷을 사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많이 빨아 유해 화학물질들이 떨어져 나간 헌 옷들이 요즘 아이들이 앓고 있는 아토피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모르겠다, 알더라도 반짝반짝 빛나는 내 아이에게 최고 신상 예쁜 새 옷을 사주고 싶은 엄마 마음도 있을 테니까.


이렇게 사이즈 별로 한 묶음씩 사고 또 판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호주 멜버른은 코로나 락다운 4단계가 시행 중이라, 집에서 5km 이상 떨어진 곳으로 생필품이 아닌 쇼핑이 현재 불법이다. 집에서 24시간 두 돌짜리 아이와 씨름을 해야 하는 엄마에게 아이의 새로운 장난감은 생필품 이상이라고 외치고 싶다! 물론 나에게 새 장난감이란 중고마켓에 공짜로 올라온 헌 장난감들인데, 그것을 바로 주우러 가지 못하는 엄마 마음은 타들어간다. 아마 내년쯤 아이와 마트를 가면 분명 아이는 새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쓸 텐데, 엄마가 중고마켓에서 같은 장난감 구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어떻게 협상을 해야 할까. 길어지는 락다운에 집에서 깊어지는 엄마의 시름이다.


락다운만 아니면 당장 주우러 가고 싶은 공짜 장난감들!





미니멀리스트 엄마가 맥시멀 육아를 하게  비결은 경제적으로 ‘빠듯한 살림살이 (그래서 공짜를 주우러 다녔고), 원베드룸에서 신혼을 살다 출산 직전 이사  쓰리베드룸 집을 남편과 내 물건들만으론 절대 채울  없었던 ‘텅텅  살림살이 있었다.

이제 그것이 돈도 환경도 아끼는 이자
앞으로 우리 아이들을 살리는 법이라 믿으며,
나의 육아 아나바다 운동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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