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쉬킨
(1799년 6월~1837년 2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믿으라,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날 그리움이 되리니
#결투
러시아 모스크바 아르바뜨 거리에 가면 푸쉬킨 생가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하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 초입쯤 위치한 집인데요.
푸쉬킨이 13살 어린 나탈리아와 결혼하고 신혼 때 잠깐 살았던 집입니다.
그 집 앞에는 푸쉬킨과 나탈리아 부부의 동상이 있습니다.
아르바뜨 거리를 찾는 사람들은 푸쉬킨 부부 동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많이 찍는데요.
저는 아르바뜨에서 이 동상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였습니다.
푸쉬킨이 37살이란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게 된 게, 나탈리아를 마음에 품은
누이의 남편이 신청한 결투 때문이었거든요.
푸쉬킨의 외할아버지는 아프리카 에티오피아 출신 장교입니다.
푸쉬킨이 생전에 가장 아끼고 좋아했던 초상화를 보면, 곱슬머리가 아프리카 혈통을
그대로 잘 표현해주거든요. 모스크바에 뜨레찌야코프 미술관에 가서 키프린스키가 그린
푸쉬킨의 초상화를 보면 가장 눈에 띄는 게 푸쉬킨의 헤어 스타일과 푸쉬킨이 작품을 쓸 때
영감을 받은 뮤즈입니다.
모스크바 유학 시절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외우고, 가끔 이 시를 읊었는데요.
푸쉬킨의 삶을 알고 이 시를 읊으면, 너무나도 무거운 얘기를 너무나 가볍게 하고 있는 푸쉬킨의 문장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푸쉬킨은 평생 작품 활동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귀족학교를 졸업하고 외교부에서 근무했으며, 동시대인(사브레멘닉)이라는 잡지를 출간해 기자로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푸쉬킨은 사람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귀족과 노예, 농민으로 삶이 정해지는 것을 반대했고,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자신 있고, 잘하는 글쓰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일깨워줬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푸쉬킨의 작품들이 훗날 19세기 후반에 러시아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절망, 그리고 희망
러시아 국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문학가로 꼽히는 푸쉬킨.
하지만 푸쉬킨 개인의 삶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푸쉬킨은 서른이 넘은 나이에 13살 연하의 아내 나탈리아 곤차로바와 만납니다.
아내는 이미 결혼을 했다 사별한 경험이 있었고요.
푸쉬킨 어머니를 비롯해 주변에선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했지만, 푸쉬킨은 그녀와 결혼을 합니다.
푸쉬킨이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아내는 사교계 활동을 하며 궁정 행사에도 참여합니다.
백옥 같은 피부에 단아한 모습을 보면 나탈리아는 당시 러시아를 대표하는 미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당시 러시아 귀족사회에선 푸쉬킨의 아내에 대한 염문설이 돌았습니다.
푸쉬킨은 결혼생활 6년 만에, 누이의 남편이자 프랑스 귀족인 단테스가 신청한 결투에 나갔다가 총상을 입고 며칠 만에 세상을 떠납니다.
푸쉬킨의 삶을 이해하고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시를 읽으면, 그 무게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시 원문은 '만약에(ЕСЛИ)'로 시작합니다.
쉽게 우리말로 풀어서 정리를 하면...
만약에, 삶이 당신을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아요.
우울한 날들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거예요.
마음(심장, 가슴)은 미래(내일)에 살잖아요.
지금의 슬픔은 모두 순식간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고
또 지나간 것은 언젠가 그리워할 날이 있을 거예요.
만약에..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속이고 배신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이 우울하고 힘든데
오늘을 견디면서 내일의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요.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이 아픔과 슬픔, 고통을 견디면
이 시간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서
모두 그리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푸쉬킨이 대단해 보입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얘기할 수 있다는 게.
오늘을 견딘다는 게.
그리고 나의 시선을 오늘이 아닌 내일로 고정한다는 게
쉽지 않으니까요.
#삶의 무게
사람은 저마다 삶의 무게를 지고, 견디고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남의 눈엔 보이지 않는 나의 삶의 무게.
또 내 눈엔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삶의 무게.
그래서 쉽게 말하고, 쉽게 판단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쉽게 단정 짓고, 쉽게 평가해서는 안 되는 것 같고요.
누군가에겐 가벼운 무게가 나에겐 버거울 수 있고
나에겐 버거운 무게가 누군가에겐 견딜 수 없는 고통일 수 있듯이
코로나19로 여러 모양의 아픔과 어려움을 겪고,
오늘을 견디고 버티고 있는 분들에게
푸쉬킨의 시가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