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y & Monica's [en route]_345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이동이 자유로운 시대. 일과 여행,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노마딕 라이프(nomadic life)를 손쉽게 실현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특히 일에 있어서 지구촌 어디에서나 업무처리가 가능한 디지털 환경으로 바뀜에 따라 유목의 삶은 개인의 자유와 자아탐구를 겸한 중요한 삶의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지속 가능한 삶이 되기 위해서는 여전히 넘어야 할 벽이 적지 않다.
푸에르토리코의 바닷가 마을에서 비치웨어 차림으로 그 벽을 넘어 일과 취미의 지속성을 구축한 솔로프리너(Solopreneur)를 만났다. 그의 구체적 사례를 통해 AI가 단순한 인사이트 제공을 넘어 1인 기업가에게 어떤 조력을 제공하고 있는지 들었다.
푸에르토리코 산후안(San Juan)의 동쪽 지역인 산투르세(Santurce)는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다. 그 환경 덕분에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선호하는 그곳에서, 삶의 모든 규범에서 초탈한 듯한 모습의 한 사나이를 만났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이주한 서퍼이자 솔로프리너, 마이크(Mike Witt)였다.
그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 푸에르토리코로 왔고 5년째 이곳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는 숙소에 체크인하기 전, 방랑자 가방을 옆에 두고 그에게 이야기를 청했다.
-당신의 첫인상으로는 당신을 정의하기가 참 어렵다.
"나는 이 집에서 일하는 1인 기업가이다."
-놀랍다. 사실 나는 당신이 1960년대 히피의 환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면에서는 당신과 나는 닮은 모습이다."
-나는 은퇴 후 '자연으로의 귀의'대신 '세상으로의 귀의'를 택해 당신 같은 사람과의 만남을 위해 3년째 세상을 방랑하고 있다. 사업가로 사는 사람이 방랑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놀랍다.
"사업을 더 잘하기 위해 창의적 환경과 서핑하기에 좋은 이곳을 택했다. 내게 서핑은 에너지를 소진하는 일이 아니라 충전하는 스포츠다. 파도와 씨름을 하고 나면 다시 새로운 힘이 솟는다.
-서핑과 사업은 닮은 점이 있을 것 같다. 적절한 파도를 기다려야 하는 것을 비롯해...
“균형 감각과 타이밍이다. 또한 파도의 힘을 이용해 다양한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데, 사업도 시장 환경의 파도를 잘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그러니까 일을 더 잘하기 위해 도심의 사무용 빌딩이 아니라 좋은 서핑 장소를 택했군."
"맞다. 4월부터는 파도가 좀 낮아지지만 연중 이곳에서 최적의 서핑 포인트까지 자전거로 10분 만에 갈 수 있다. 업무용 책상에서 일어나 10분 만에 서핑보드에 몸을 싣고 파도로 뛰어들 수 있다는 것은 더 없는 보상이다.”
-자전거타기와 파도타기를 동시에 즐기는군!
"차도 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자전거만으로 원하는 곳을 다 갈 수 있다. 마법 같은 곳이지."
-그럼 캘리포니아로는 안 돌아가나?
"이곳의 허리케인 시즌이 6월부터 11월까지다. 그때 한동안 캘리포니아로 돌아갔다가 온다."
-작년에 경험한 로스앤젤레스는 물가와 노숙자 문제가 심각하더군."
"내가 이곳을 택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해.”
-미국에도 집이 있군?
"오렌지카운티에 여동생 집이 있는데 내게 줄 방이 있어서 이곳과 그곳을 오가면서 살아. 하지만 난 일을 해야 하거든. 다행인 것은 온라인으로 업무를 할 수 있어서 인터넷만 잘 되고 노트북만 있으면 세계의 어느 곳에서나 일을 계속할 수 있다.“
-그럼 디지털 노마드인 셈인가?
"좀 다르다. 디지털 노마드는 여행과 일을 병행하니까 몇 달마다 이동하지만, 난 옮겨 다니는 걸 좋아하지는 않아. 그래서 '디지털'인 것은 맞지만 '노마드‘라고는 할 수는 없지. 내 친구는 과테말라, 멕시코, 온두라스 같은 곳을 몇 달마다 옮겨 다니며 일을 하더군. 그는 진정한 노마드인 셈이지. 디지털 노마드라고 하면 보통 물리적인 제품이 없는 일을 하는 거라서, 난 프로모션을 운영하는 정도가 디지털 노마드 부분에 해당하는 것 같아."
-당신은 그 모든 개념을 포함하는 솔로프리너로 불리는 게 옳겠군.
"내 비즈니스 모델을 직접 만들고, 모든 의사결정과 운영을 혼자 책임진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어떤 일을 하나?
“제품을 개발해 실물 제품들을 아마존에서 판매하고 있다.”
-당신의 제품을 제작해서 아마존에 판다는 것인가?
"맞다. 지금은 소량으로 제품을 테스트(Small Batch Manufacturing)하는 중이다. 제품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지. 문제가 있는 제품을 10,000개나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테스트가 끝나면 멕시코나 중국에서 대량 생산을 하는 식인데... 제품은 창고를 임대해서 거기에 두는 거야."
-경험이 없다면 어려운 전문적인 영역이군.
"30대 때 큰 회사에서 일했다. 그건 지금처럼 홀로 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지. 모든 것은 완벽하게 시작할 수는 없으니 조금씩 배우며 나아가는 중이야. 하지만 AI가 등장하면서 한결 쉬워졌다."
#2
-어떤 영역에서 AI를 활용하나? 그전에는 그 영역을 어떻게 수행했지?
"마케팅, 회계, 세무 같은 영역을 비롯해 직접 처리가 어려운 것은 프리랜서를 썼다. AI를 활용하면서는 거의 모든 것을 내가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한다기보다 AI가 정보를 제공해 줘서 마치 팀을 운용하는 것처럼 일할 수 있게 됐다. 이제는 AI의 조력만으로 충분해."
-언제부터 AI를 활용했나?
"1년 전부터다. 갈수록 점점 더 ‘와,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 최근에는 특허를 내는 일도 내가 해냈다. 한 달 정도 걸렸지. 나는 특허 변호사가 아니니까 조금씩 단계적으로 확인하면서 진행했다. 예전에는 특허 작성 비용에 1천 달러 정도가 들었지만 AI 덕분에 지출 금액은 '0'달러가 됐다. 이 일을 해내고 나서 이제 홀로도 내 사업의 모든 것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하지만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 인공지능 모델이 사실이 아닌 정보를 생성하는 현상)을 조심해야 해. AI가 '이거다'라고 말하는 것 중에도 맞지 않을 때가 있으니까. 차근차근 AI를 사업의 다양한 분야에 활용하는 법을 배우고 있어."
-이런 사업의 전 영역을 학습하는 것도 회사 조직 내에서 경험했던 업무가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군. 어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했었나?
"내 배경은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이다. BP(British Petroleum)에서 이 업무를 하면서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일을 했었고 힐튼호텔 본사에서는 조달업무를 했었지. 호텔에는 진공청소기나 유니폼을 비롯해 수많은 물품이 필요하잖아. 그런 업무였다."
#3
-일의 성격이나 방대함으로 보아 자전거와 서핑을 즐기는데 많은 시간을 쓸 수는 없을 것 같군?
"맞다! 나는 약간 일 중독적인 성향이 있어. 하지만 나는 그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즐기니까. 내 스타일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늦잠을 자는 식이다. 일의 스케줄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솔로프리너의 장점이지. 만약 휴가를 가고 싶다면 누군가에게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지. 일의 목표도 홀로 세운다. 나 자신에게 '자, 해보자'하는 거다. 특히 최근 AI 덕분에 엄청난 기대와 기회가 열리고 있다. 지금 당장 확답은 못 하지만 그런 상황이다. 내일의 모든 것을 시스템화하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잘나가는 제품도 있다. 이제부터 규모를 키우려고 한다."
-사업은 ‘퀀텀 점핑’을 하는 때가 있더군. 당신에게 지금이 그때인 것 같다. AI의 활용으로 지금은 10여 명 인력을 고용하는 효과를 누리고 있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고용인을 활용하는 효과를 거둘 수도 있으니 급격한 도약은 더 빨라질 수도 있겠다."
"노력을 계속해 보려고 한다."
-미국인인 당신이 과테말라(Guatemala)나 도미니카(Dominica)가 아닌 이곳 푸에르토리코를 선택한 것은 렌트비, 서핑 환경 외에도 미국령이라는 이점이 있겠군?
"그렇지. 미국 시민이 미국령에 거주하면 비자, 체류 허가가 필요 없고 의료보험 등 미국 내 권리를 그대로 누릴 수 있는 법적, 행정적 편의가 있다. 내 사업을 이곳에 세팅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세제혜택까지 있어서 이곳 이주를 더 쉽게 결정할 수 있었다."
-작년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는데, 멕시코의 니어쇼어링(Nearshoring) 지원 정책으로 그곳에 제조 시설을 이전한 외국회사들이 많더군. 아마존도 대형 물류센터를 운영하고 있고... 하지만 정부의 정책 변화에 따라 좀 불안해하는 점은 있지만..."
"나도 그곳을 주목하고 있다. 그곳에 제조 시설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있다. 그곳이라면 나도 캘리포니아와 멕시코를 쉽게 오갈 수 있으니까. 물론 중국이 제조업에서는 여전히 최고지만, 관세 문제 등으로 어려움이 있잖아. 그래서 베트남이나 다른 제조업 지역으로 가는 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티후아나도 유력한 대상이다."
#4
-솔로프리너의 길을 가고자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경험을 나누어준다면?
"제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그렇듯 돈 때문이 아니라, 제품 개발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 ‘언젠가 수백만 달러를 벌 거야’라는 꿈을 꾸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와, 정말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염두에 두라고 하고 싶은 말은 먼저 그 일을 좋아해야 한다는 것이다. 돈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그 일을 사랑해야 한다는 거지.
지금 나는 월트 디즈니의 책을 읽고 있는데, 그가 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온다. 그는 미키 마우스부터 시작해 자신의 만화를 만드는 데 집착했다.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도. 책에서는 ‘백설공주’라는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을 완성해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부분까지 나오는데, 그 과정에서 디즈니는 건강 문제도 겪었다. 수많은 애니메이터들이 밤낮없이 작업하고, 디즈니 자신도 모든 세부 사항을 꼼꼼히 검토하느라 건강을 돌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만큼 집착하지는 않지만, 작가로서 그 열정을 이해할 수 있어. 정말 그 일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이지.
내가 걱정하는 건,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아, 쉽구나’라고 오해하는 거야. 특히 젊은 세대는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백만장자가 되는 3단계’ 같은 콘텐츠를 보고, 비트코인 등으로 ‘하루아침에 성공했다’는 허황된 이야기들을 접한다. '22살에 페라리를 몰고, 대저택에 산다’는 식의 과장된 모습들이 많지만, 사실 대부분은 허상에 불과하거든. 많은 사람들이 젊을 때는 ‘첫걸음만 내디디면 다 될 거야’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대부분이 길을 잃고 좌절하기 마련이거든. 직접 경험하며 배워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어.
캐나다에 있는 내 아들은 이제 20살이 되는데, 지금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너무 많은 압박을 느끼고 있어. 물론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하지. 그래서 나는 그에게 “그냥 뭐든지, 모든 걸 시도해 봐!”라고 말해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뭔가를 시작하면 바로 최고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야, 시작하고 거기서 배우는 거야'라고 말해준다."
-결국, 성장과 성공은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도와 실패, 학습의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메시지군. 이 시대는 더욱 기존의 포장된 길로만 가려고 해서는 안될 것 같다. 당신처럼 길을 내면서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당신은 마치 30대의 청년처럼 젊어 보인다?
"고맙다. 나는 쉰 살이다."
-일에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그렇게 젊게 보일 수 있나?
"그냥 쓰레기 좀 줍고, 숨 쉬고, 해변에 가서 수영하면 돼. ㅎㅎㅎ"
-당신의 젊음 유지 비결은 간단하지만 이웃과 자신을 배려하는 루틴이 읽힌다. 당신의 표정이 당신이 이상향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사실 나와 아내는 3년 전에 은퇴했어. 그동안 당신처럼 자신을 돌보고 사는 대신 일과 의무에 매인 삶을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10년 동안 나라밖을 방랑하면서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 삶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던 거야. 일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이웃과 더불어 즐거운 삶을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의 배움을 위해... "
"오, 축하드려요."
#5
며칠 뒤 산후안의 플라야 푸에르타 데 티에라(Playa Puerta De Tierra) 해변을 산책하는 해거름에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길을 멈추니 내 앞에 자전거가 멈췄다. 마이크였다.
"산후안 여행은 어때?"
"이렇게 산후안 사람이 되어보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
"다행이군. 이곳이 바로 내가 말한 그 서핑 스폿이야. 파도가 제일 좋은 시기는 12월부터 2월 사이지만 그 외의 계절에도 이렇게 자전거를 즐기고 때로는 야간 서핑도 즐긴다."
"때로는 다른 지역으로 서핑을 가기도 하나?"
"친구들이 여기보다 좋은 서핑 장소로 가자고도 하지. 이사벨라(Isabela), 린콘(Rincón), 폰세(Ponce), 파하르도(Fajardo) 등 좋은 장소도 많아. 그런데 그곳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2시간 이상을 운전해야 하고 2시간의 서핑을 즐긴 뒤 다시 되돌아와야 하니까 거의 하루가 필요하다. 이곳은 자전거로 10분 거리일 뿐이야. 그래서 내게는 이곳이 가장 완벽한 장소다."
그를 두 번째 마주쳤을 때도 셔츠조차 입지 않고 긴 수염을 고무로 동여맨 모습 그대로였다.
그가 오던 길로 멀어지기 전에 말했다.
"지금 LA에서 벌어지는 혼란도 잘 알고 있을 거야. 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지. 푸에르토리코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저녁에 해변으로 자전거 타고 가서 서핑하거나 수영하는 시간이 내게 영감을 주고 에너지를 다시 충전해 줘. 그리고 앞으로 당신과 아내분의 모험도 계속 지켜볼게. 정말 꿈같은 삶을 살고 있군. 내 한국 형제~"
그는 도시에서 야생을 사는 사람 같았다. 새로운 문명의 파고를 두려워하는 대신 서퍼의 본능으로 파도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