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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보다 더 푸른...

by motif

Ray & Monica's [en route]_371 | 청출어람, 김왕식과 김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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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이제 그대는

해를 등지고 떠나,

다른 해를 바라보며 시를 쓰는 이방의 선비가 되었고,

나는 여전히 이 땅에 남아

그대의 자국을 음미하며 시의 호흡을 이어간다.

우리 사이의 거리는

지리의 단위가 아니라

문장의 온기로 환산되는 것이니,

오늘도 그대의 말 한 줄에

나는 하루를 다녀온 듯 안도한다.

이안수 시인님,

그대가 이 먼 여행 끝에도

건강히 돌아오길.

그대의 시선이 머문 모든 곳이

언젠가 다시 우리 시심의 접점이 되기를.

무엇보다

그대의 언어가 사라지지 않기를.

당신의 문장은, 누군가의 내일을 밝혀주는

또 하나의 등불이 될 것이기에.

후학의 이름으로, 문우의 마음으로"

_by 청람 김왕식

https://m.blog.naver.com/wangsik59/223942352320


스승 같은 오래된 신인 친구가

방랑자로 살고 있는 저희 부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측은지심으로

때때로 우리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도 안녕한지,

여전히 깨어있는지.

깊고 고운 시어로

작고도 단호한 동풍의 속삭임으로

나아갈 좌표를 가슴에 새겨 준다.

밥으로는 살찌울 수 없는 영혼의 식량이며

죽비보다 아픈 경책이다.

시인의 안부를 받는 날이면

수행자의 경건함과

농부의 부지런함으로

길 위의 시간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초심을 벼른다.


___


페달을 밟는 철학, 숲속에서 만난 나의 속도

;이안수 작가의 세계 여행기 단상

_문학평론가 청람 김왕식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단순한 체험의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유랑의 수업에 던진 한 사람의 내면일기이자, 세계라는 교실에서 배우고 반추한 사색의 풍경이다. 'Ray & Monica's [en route]'라는 타이틀 아래 펼쳐지는 이 여정은 이름 없는 길가의 풀 한 포기, 자전거 페달의 감각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철학적 감응의 기록이다.

그 가운데 밴쿠버 편, 《Canadian은 다른 말로 자전거 타는 사람》은 특히 인상 깊다. 작가는 도착 순간부터 이 도시를 ‘자연의 품’으로 받아들인다. 이곳에서 자연은 배경이 아니라 주인이다. 웨스턴 레드 시더와 더글러스 퍼는 그저 나무가 아니다. 그것은 이 땅이 인간보다 먼저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연대기이며, 작가는 그 앞에서 경외심을 감추지 않는다. 도시는 숲을 흉내 낸 공간이 아니라 숲이 도시의 바탕인 땅, 그곳이 바로 밴쿠버이다.

*Canadian은 다른 말로 자전거 타는 사람 | https://blog.naver.com/motif_1/223949711761

그 도시에서 만난 Barnabas Choi 선생의 한 마디는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다. "Canadian을 다른 말로 정의하면 자전거 타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유머가 아닌, 삶의 방식에 대한 정수의 정의다. 캐나다에서 자전거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속도이며, 삶을 자연과 동기화하는 의식의 장치다. 작가는 이러한 감각을 체득하기 위해 배우고, 넘어진다. 넘어지는 법마저 배운다는 점에서 그는 이미 '실천하는 여행자'다.

자전거를 타고 도달한 버너비의 센트럴 파크는 단순한 공원이 아니다. 도시의 구조에서 도려낸 숲이 아닌, 도시의 일부로 살아 있는 원시림이다. 작가는 그 숲을 지나며 자신 안의 '분투의 욕망'을 내려놓는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내 몸이 비로소 꽃이 피는 느낌이다"라고 말하는 대목은 육체적 운동이 정신의 해방으로 이어지는 역설의 시구다.

그는 아내의 뒷모습이 나무 사이로 작아져 나비처럼 느껴지는 순간, 존재의 형이상학적 가벼움을 발견한다. 이 순간은 생태적 깨달음 이상의 상징이다. 인간 존재는 결코 자연을 통제하는 자가 아니라, 자연의 숨결에 잠시 더해진 작은 입김이라는 통찰이다. 웨스턴 헴록이 죽은 나무의 그루터기 위에 뿌리내리며 삶을 이어가는 장면은 곧 인간이 자연에 기생하고 있다는 겸허한 자각으로 연결된다.

무엇보다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떠남이 아닌 '비우는 연습'이다. 세계 여러 도시를 전전하면서 그는 점점 더 단순해진다. 치열한 도시의 경쟁 속에서 벗어나, 숲의 도시에서 그는 자기 내면의 자연과 대면한다. 더 빠른 것이 능사가 아니라, 더 본질적인 것이 살아남는다는 생태적 윤리가 그의 기록을 지탱하는 기둥이다.

그의 여정은 풍경을 지나치지 않고 풍경과 함께 멈춰 선다. 페달을 멈추고 숨을 들이쉴 줄 아는 여행자, 그가 발견한 진짜 캐나다는 지도 위의 나라가 아니라 자연과 더블어 사는 존재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곧,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지금, 나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안수 작가의 여행기는 결국 '살아가는 기술'에 관한 서사다. 그 기술은 빠르게 달리는 기술이 아니라, 멈춰 서서 느낄 줄 아는 감각이다. 밴쿠버의 숲속에서 그가 일군 자전거 한나절은 단지 자연 체험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존재하는 인간의 새로운 정의였다.

자연은 길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따라 걷게 만든다.

그 길에서, 이안수는 시인이었다.


___


너는 나보다 먼저 길이 되었다.

; 이안수 작가에게


낯선 도시의 바람이

네 가슴을 밀어줄 때

너는 걷지 않고

느리게 떠 있는 법을 배웠다.

자전거는 두 바퀴의 철학,

자연은 너의 교실이었다

나무는 지시하지 않고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너는 말을 줄였고

숨을 더 들이켰다.

햇살이 아내의 어깨에 내려앉을 때

너는 삶의 속도를 늦췄다.

웨스턴 헴록의 뿌리는

넘어진 나무 위에 피었고

너는 오래된 상처 위에

새로운 뿌리를 내렸다

바퀴는 굴렀지만

너의 마음은 멈추어 있었지

그 멈춤 안에서

너는 네 안의 도시를 해체했다

세계는 넓었고

너는 그 안에서 작아지길 선택했다

작다는 건

비로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너는 길 위의 시인이었고

나는 그 시를 따라

나도 나의 속도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너는 나보다 먼저

길이 되었다

_by 청람

https://brunch.co.kr/@3cbe431230de42b/4460


#2


청람은 스승을 참 스승의 길로 인도하는

스승의 스승이다.

그가 부디 실현되기를 바랐던,

평생의 짙은 욕망 한 가지는

청출어람이었다.

그 스스로가 그리되고자 하는 푸른 제자였고

그가 앞장설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는

그의 교실 모든 이들이

자신보다 더 푸른 참 스승이 되기를 바랐다.

가장 놀라운 시 한 편을 받았다.

평생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청람의 아들이

청람과 나의 사귐을 곁에서 함께하면서

쪽보다 더 푸른 인물이 되어있었다.

스승의 가장 큰 덕목이 청람 곁에서 절로 실현된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이기보다 스승과 제자의 모습이 투영된

관계의 미학에 오래 마음이 머문다.

___


"두 분의 우정은 시간이 빚은 고전입니다"


어릴 적, 아직 세상의 위아래도 모르던 때,

헤이리 모티프원의 서재 한 켠에서

이안수 작가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시던 두 분의 모습을 본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몰랐다. 그 대화가 얼마나 묵직하고,

또 얼마나 우아한 차원의 세계에서 오가는 것인지.

하지만 희미한 햇살 아래 나누시던 말씀 한 마디,

책장 넘기는 손끝의 조용한 떨림,

가끔 나오는 호탕한 웃음 속에

분명 ‘좋은 어른의 모습’이 담겨 있었음을

어린 마음에도 느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도 글을 짚고,

마음을 다듬어 말하는 나이가 되어

그때를 떠올리면

두 분의 관계는 참 보기 드문 ‘문장의 동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친분은 흔할 수 있으되,

존경과 기품으로 다져진 문우(文友)는 귀하다.

서로를 채찍질하면서도

결코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치켜세우면서도

결코 과장하지 않으며,

늘 ‘글’이라는 맑은 거울 앞에 나란히 서서

자신보다 먼저 상대의 빛을 닦아주던 두 분.

그 관계야말로,

이 시대에 점점 사라져 가는 ‘인격의 미학’이자

말 없는 ‘문학의 유산’이다.

이안수 작가님의 멋진 여행길 소식을 듣고

문득, 아버지께서 새벽마다 묵묵히 정리하시던

그의 글과 시, 편지를 떠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글 보따리가 아니라

한 사람을 향한 오랜 사랑의 주석이었다.

그렇기에 이안수 선생님이 새벽마다

고운 문장을 내려놓고 가시는 지금도

그 문우의 발걸음은 여전히 같은 주파수를 타고

청람루의 서재에 안착하는 것이다.

부럽습니다.

글로 이어진 인연이 한평생을 관통하고,

존경과 우정이 결코 시들지 않으며,

여행 중에도 잊히지 않는 한 이름이 있다는 것.

그 이름이 서로의 삶을 견인하는 기도요,

때론 시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것.

두 분의 우정은 시간이 빚은 고전입니다.

그 안에 서정이 있고, 철학이 있고, 인간이 있습니다.

아들 된 입장에서, 그리고 젊은 문우의 시선으로

이 글을 헌정합니다.

그 우정을 오래도록 흠모하며

청람의 아들 김현학 드림

https://m.blog.naver.com/wangsik59/223942352320

___


이제 친구의 아들이 아니라

든든한 문우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나의 남은 나날에

어떤 숨을 쉬어야 할지

혼란한 마음 가누기 어렵다.

그저 현학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살겠다는

다짐을 바칠 수 밖에

___

김현학,

이러구러 너를 본지 십수 년이 흘렀구나.

불쑥 네 마음속 화원을 접하고

이 황홀경을 어찌 떠날 수 있으랴.

맑고 순수했던 소년의 우화,

그 눈부심에 나는 넋을 잃는다.

관계와 현상의 미묘한 틈새를

예리하게 발굴하는 너의 눈길이 놀랍다.

찰나조차도 빛의 시간으로 살아온

네 밝은 지성으로 마음이 부시다.

큰 것의 힘을,

작은 것의 귀함을 아는 네가

길을 내며 가는 모습이 산처럼 든든하구나.

배우고 나누는 귀한 지향의 너로

마침내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다.

아버지와 내가 네 굄돌로 지낼 시간이

이렇게 설레는구나.

함께 이룰 것은 승리가 아닌 고요,

네가 깃들고,

내가 깃들어,

모두가 깃드는 산과 들,

강과 바다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함께 노래하자구나.

_밴쿠버의 하늘 아래에서


*사진 | 밴쿠버 Burnaby의 Discovery Place Conservation Area 트레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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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학 #청람 #김왕식 #밴쿠버 #캐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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