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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림 Jul 12. 2023

비오는 양재천을 걷다

복잡할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기 

가끔 나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형이상학적인 이상을 꿈꾼다. 

사랑에 관해 어지럽도록 생각하다가, 내가 하고 싶은 사랑을 꿈꾸다가, 

"그런 사랑이 과연 있나. 나는 너무 어렵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과 마주쳤다. 


바라는 것이 없으면 지복을 누릴 수 있다. 

바라는 것이 없어도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으며, 

바라는 것이 없어도 세상에서는 초대받는다. 


내가 재능이 있음을 믿고, 온전히 열린 상태로 내어맡기면, 

우주는 내가 나로서 가장 빛날 수 있는 할 거리를 보내준다. 

기쁘게 하는 것만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일 터다. 


걷는 길에 가까운 지인과 통화를 했다. 


"오빠. 나는 공주님으로 살고 싶은데. 그냥 나는 나 예뻐해주는 사람과 "Happily ever after" 하고 싶은게 꿈인데." 

<꼭 공주여야하는거야? 여왕이 되면 안돼?> 

"공주님이 편하잖아. 여왕님은 용기도 가져야 하고, 리더십도 있어야 돼." 

<공주님은 누군가 모셔주는 것에 의존해야 돼. 여왕님은 그냥 본인이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면 돼> 


그냥 웃음이 나왔다. 이게 무슨 통화인가. 말인가, 방구인가. 


"오빠. 오빠는 결혼은 생각 없지." 

<나 그런 말 한적 없는데> 

"결혼생각 있다는 말도 한 적이 없잖아." 

<남자는 생각만으로 결정하지 않아. 준비가 되어야 하는거지.> 

"아니, 무슨 준비를 해. 다 갖추고 있는데." 

<남자는 그래도 준비 해. 집이든, 돈이든. 필요한 것들을> 

"아... 그래. 고마와." 


아. 그렇구나. 

마음이 앞설 때는, 기본으로 돌아간다. 

사람이 사는데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 

지금에 감사하는 삶으로. 지금, 여기, 현재에 머무르는 삶으로. 

공주님이든, 여왕님이든 지금 나에게 주어진 1분 1초를 살아갈 뿐이다. 

1분 1초마다 우주는 나에게 사랑을 쏟아지듯 보내주는데, 그 순간 순간 기쁘게 잘 누리면 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배울 거리든, 치우고 정돈할 거리이든.  

이상을 쫒다가, 내게 주어진 많은 것들에 감사하는 순간을 놓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싱그러운 나뭇잎들과, 빗물에 불어난 양재천의 시원하게 물 흐르는 소리, 

선선해진 공기와, 마침 적절하게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이 따듯하게 앞길을 비춘다. 

양재천은 바닥이 깊지 않은 천이라, 장마철에는 수변 산책로의 진입을 막아둔다. 


그래. 갈 수 있는 길은 한 방향인데, 그 길을 잘 걸어가는게 삶인데. 

선택할 수 있다고, 저항할 수 있다고 느끼며, 이상을 꿈꾸며 괴로워한 것도 내 몫이겠다. 

어차피 위험한 길은 갈 수 없게 막혀 있다. 


내가 헛되이 바라는 것은 그저 허상일 뿐, 내가 배워야 할 것과 필요한 것을 받는다.

온전히 내어맡기면, 우주의 끌어당김은 내게 허락된 것들에 기쁘게 닿도록 허락의 범위를 무한으로 넓힌다. 
우주가 보내주는 사랑이다. 

고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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