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연꽃향이 은은하다. 연꽃은 깨끗한 물에서는 살지 않는다. 진흙에서 나왔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결백하다. 연잎 또한 물에 젖지 않는다. 옛날에는 소나기가 갑자기 내리면 우산 대신 연잎으로 비를 가리기도 했단다. 차나 술을 만들기도 하고 요즘엔 고급 한정식메뉴로 연잎밥을 내놓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보는 연꽃은 백련이나 홍련이다. 꽃대가 높아서 수면 위로 꽤 높이 올라와 흰색과 분홍색의 곱고 탐스러운 꽃을 피운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부드럽고 온화해진다. 연꽃은 피어날 때부터 다르다. 굳이 꽃이 피어봐야 구별이 되는 장미와 찔레, 벚꽃과 매화랑은 다르다. 기품이 있다
내가 연꽃을 좋아하게 된 건 수련을 알고 나서다. 10년 전 캐논 500D DSLR 카메라를 장만하고 꽃을 찍으러 다닐 때였다. 양평 두물머리 세미원에서 보랏빛 연꽃을 보았다. 그동안 보았던 높고 우아하게 솟은 연꽃과 달리 겸허하게 낮은 자태로 수면위에 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고요하게 떠 있을 뿐이었다. 잎도 물에 붙어서 반짝 반짝 윤이 났다. 바로 수련(睡蓮)이었다. 오전에 활짝 피었다가 밤이 되면 봉우리를 오므린다. 그래서 ‘수’ 자는 ‘잠잘 수(睡)’ 자를 쓴다. 피고 잠들기를 사나흘 계속 하다가 마치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기도 드리 듯 꽃잎을 접고 고개를 숙인다. 소리도 없이 물밑으로 자취를 감춘다
한송이 수련 같은 분은 만났다. 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텨 VIP간호사로 일 할 때였다. 의료서비스 분야에서는 유명한 강사라고 했다. 최 원장님의 여배우처럼 매력적인 외모와 아나운서같은 거침없는 말솜씨에 첫만남에는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내 예상은 빗나갔다. 겉모습과는 다르게 따뜻한 카리스마로 내 마음을 사로잡으셨다. 명품브랜드가 뭔지도 모르는 촌스러운 내게 학벌, 집안, 보여지는 겉모습은 실력이 아니라고 하셨다. 진실한 마음을 품으면 언제 어디서든 떳떳할 수 있다는 거다. 항상 준비하는 삶을 강조하셨다. 말과 행동은 단정하고 절도 있게 하되 손과 발은 조용하고 부지런해야 한단다. 이메일이나 짧은 용건의 문자도 고객이 앞에 계신 것처럼 따뜻하고 공손해야 한단다. 나는 자다가도 외울만큼 연습했다. 검사를 위해 커텐을 칠 때는 꽃잎을 만지듯 하고, 혈압을 재고 채혈 할 때는 나비 날개 짓처럼 부드럽고 날렵했다. 미리 풍채를 확인해서 맞는 가운을 준비했고, 짐작되는 결과가 있으면 해당 진료과 교수님들께 미리 보고를 드렸다. 미흡한 준비나 실수로 VIP 고객에게 야단맞은 적도 있었다. 지켜보시던 최 원장님은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이번 일을 계기로 더 단단해지는 거라고 어깨를 잡아주셨다.
최원장님의 부고 소식을 문자로 받았다. 믿을 수 없었다. 바로 일주일 전에 둘째가라면 억울한 그 일을 털어놓으며 전화 통화를 했었다. 퇴근길에 VIP분에게 전화가 왔고, 받으려는 순간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서 전화를 받지 못했는데, 결국 그 분은 내 연락을 기다리다가 급성심금경색으로 응급실로 오시게 되었다는 애기, 회복되신 후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병원 로비에서 ‘이 간호사 때문에 죽을 뻔했다고, 이런 간호사는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소리쳤다는 애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포기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는 순간 최 원장님의 아주 작고 여린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전해왔다
‘최선생님, 진정한 프로는 혹독한 훈련과 시련을 두려워하지 않는답니다.’
언제나 열정적이고 당당하셨던 최 원장님은 나와 만나기 4년 전 유방암으로 수술 받고 투병 중이었다는 걸 조문 가서야 들었다. 그러면서도 단 한 번도 아프거나 피곤한 내색을 보여주시지 않았다. 일주일 전 유방암이 폐로 전이되어 호흡곤란으로 입원하셨고, 그 날 나와의 통화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언젠가 어리석은 질문을 했었다. 늘 웃기만 하시는데 울어본 적이 있는지를. ‘그럼요, 지금도 많이 우는 걸요, 한번 웃기 위해 두 번 울었지요’ 하시던 말씀이 떠오른다.
수련은 필 때도 자태가 곱지만 질 때도 흐트러짐이 없이 고요하고 아름답다. 마지막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진정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신 최 원장님. 이처럼 단아하고 우아한 임종을 다시는 만날 수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