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도 하나개 바다 위를 걸었다.
날카롭게 날세운 바람이 살갗을 난도질하는 독하고 매서운 날씨었다.
거칠어진 바다는 쉴 새 없이 절벽에 부딪치며 새하얗게 파도로 부서졌다.
어마어마한 포말로 흩어지면서 보란 듯이 으스댔다.
갈 곳이 없었다.
친정엄마가 편찮으신 동안 아버지 또한 마음의 고통이 심하셨다. 하루를 술로 보내셨다.
퇴근 후 맥주 한 병이 삶의 위로인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모를 리 없지만, 아버지는 중독이었다. 증상이 점점 심해졌다. 밤인지 낮인지,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 했던 말씀이나 행동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새해 첫날엔 새벽 3시 식탁에 홀로 앉아 막걸리 3병을 비우셨다.
엄마를 돌보는 3개월 동안 나는 지칠 대로 지쳤다. 직장도 글 쓰는 일도 다 포기할 마음이었다. 오후 3시라서 술을 마셨다는 아버지, 새우등처럼 굽어 자리에 누운 아버지의 모습을 보자마자 집을 나왔다.
어찌 되었든 이번 생은 내가 먼저 죽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에게 진 빚은 이 정도면 충분히 갚은 거 아니가.
내가 없으면 언니나 남동생이 알아서 모시고 챙겨 드리겠지.
부모님도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든 건강하려고 노력하시겠지.
계절마다 내가 사드린 옷들을 챙겨 입으며 그제야 내가 없음을 한탄하시겠지.
그렇게라도 내가 얼마나 마음이 먹먹했고, 슬펐고, 무너졌는지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죽고 싶다는 비장한 마음을 품고 하나개 바닷가 칼바람을 맞으며 계속 걸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걸으면 걸을수록 단단했던 마음의 빗장이 서서히 열렸다. 웅장하게 몰려오던 거대한 파도가 하염없이 부서지고 사라질 때마다 섭섭하고 억울했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몰려오던 바다가 절벽에 부딪쳐 큰 소리를 낼 때마다 무기력했던 나의 뇌와 온몸의 세포들이 다시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올라 활개를 쳤다.
혹독한 바람, 거센 파도가 오히려 나에게 애썼다고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인정받는 기분이었다. 시원하고 개운했다.
죽는 순간까지 파도가 몰려온다.
파도가 없는 바다는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 모든 날들이 파도다
바람에 밀려오는 바다가 새하얀 파도 꽃을 피우는 것처럼 바람 부는 세상에서 나의 꽃을 피우는 것이다.
다시 집으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