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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우의 뜰 Feb 04. 2022

곧 봄이 오겠지요

[안온한 편지]

2월이에요 선생님


도종환 시인의 병든 짐승이라는 오래된 시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는데요

산짐승은 몸에 병이 들면 가만히 웅크린다고 합니다.

속 바람에 귀를 세우고

자신의 혀로 상처를 핥으며

아픈 시간이 몸을 지나가길 기다린답니다.

어쩌면 "가만히 있다"는 건 무언의 절규 같기도 합니다

가만히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는 난감한 코로나 시대와 어찌 이리 같은지요.


살아내기 위해 참아내느라 선생님 또한 피곤하셨지요

오십이 넘어서도 여전히 병원 3교대 근무하시랴, 시 어르신들 모시면서 아이들 대학까지 보내시느라

얼마나 절박하셨을까요!


설을 보내고 다시 한 해를 맞이하는 마음으로

지금껏 애써오신 선생님을 꼭 안아드리고 싶은 입춘(立春)입니다.  


15년 전 그때 선생님께서 저를 붇잡아주지 않았다면 어쩌면 저는 학위도 포기하고 남편과 헤어져 방황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이 파도가 지나가기를 함께 가만히 기다리자며 저의 곁을 지켜주셨던 선생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그 마음 그대로 지금까지 간직하고 살아갑니다


이제 입춘이 지나고 나면

가만히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언 땅을 밀면서 어린 새싹이 돋아나겠지요

어딘가 선생님만의 자리도 만들어지고 있겠지요

그곳은 분명 충분히 빛나고 아름다울 거예요

선생님께서는 그렇게 살아오셨으니까요^^

 

선생님~

작년 가을 엄마가 쓰러질 때만 해도

'이리 어려운 일을 겪었는데 설마 이보다 더한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요

아버지마저 치매센터 등록하고,

올 설에는 시어머님이 큰 병원에 모시고 가라는 고창병원 연락받고 서울성모병원 진료 보시고

오늘 내려가셨어요

 

릴케의 말처럼 인생의 어려운 일에는 초급이 없나 봅니다.

인생은 예상치 못한 난해한 문제를 죽는 순간까지 시험하나 봅니다

그래도 가만히 잘 견디고 있겠습니다.

부디 선생님께서도 잘 견뎌주세요

그래서 다시 꼭 뵈어요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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