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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사이 Feb 17. 2022

우리가 안녕하기를

볼 수 없지만 그릴 수 있다는 듯이

눈을 감아도 그려지는 마음

시 그림책 『우리는 안녕』

박준 글 / 김한나 그림 / 난다




"안녕, 안녕은 처음 하는 말이야.
안녕, 안녕은 처음 아는 말이야."


새해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참 빠르다. 아직 보내지 못한 순간이 남아 마음이 조금 답답하다.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듯이, 잘 보내야 또 다른 만남을 준비할 수도 있으니깐.


박준 시인의 시와 김한나 작가의 그림이 만나 따듯한 시 그림책을 펼쳤다. 『우리는 안녕』은 박준 시인의 아버지와 함께 사는 개 '단비'의 이야기를 담았다. 언어로 그리는 그림인 시를 따라 흩어지는 순간을 모아 한 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했다.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에 수록된 시 「단비」와 작가의 말을 읽고 보면 더 깊이 빠져드는 시 그림책이다.




"한번 눈으로 본 것들은 언제라도 다시 그려낼 수 있어.
그리고 그리고 또 그리는 것을 그리움이라고 하는 거야."


단비에게 날아온 잿빛과 푸른빛의 깃털을 가진 새. 단비와 새는 함께한 시간이 쌓일수록 점점 더 가까워진다. 친구가 생기는 건 새로운 세상에 눈뜨는 일이다. 상대의 세상을 공유하고 귀 기울이며 서로의 세상을 보듬어주는 과정이다.


누군가 곁에 머무는 마음은 벽을 뛰어넘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언제라도 다시 그려낼 수 있는 이가 생기면 마음에 꽃이 피어난다. 눈을 감아도 어둠 속에 빛나는 별처럼. 캄캄했던 눈앞이 환해지고 한 번도 보지 못한 세상을 꿈꾸게 한다.




“만나지 못한 이를 그리워할 때,
눈은 먼 곳으로 가닿습니다.
보고 싶은 이를 보고 싶어할 때,
마음은 가까이 있고요.”


안녕은 만남과 헤어짐의 순간을 함께 담은 말이다. 단비와 새가 안녕을 말하며 만나, 안녕을 말하고 헤어지는 순간이 계절처럼 지나간다. 안녕이라는 말은 설렘과 그리움을 품고 있어 다정하고 애틋하다.


같은 시를 읽고 같은 그림을 보아도 사람마다 다른 느낌으로 기억될 것이다. 문득 초등학생 때 단체 관람으로 처음 박물관에 간 날이 떠올랐다. 야외전시장에 있는 커다란 돌덩이 앞에 적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라는 표현이 선명하다. '기원'이라는 단어보다 낯설게 느껴졌던 '안녕'. 그 문장은 읽어도 이해가 안 돼서 선생님께 무슨 뜻인지를 여쭤보았다. 그날 이후로 인사말로만 알았던 안녕에 새로운 의미가 더해졌다.




“헤어지며 놓아주는 순간 내뱉었던 안녕.
기다리고 기약하고 다시 그리며 준비해두는 안녕.
이 사이에 우리의 안녕이 있습니다.”


책장을 넘기면 시와 그림이 따로 또 같이 유연하게 흘러간다. 마음에 출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잠시 머무르는 마음을 살펴 가며 감상했다. 안녕이라는 말이 품은 의미를 차곡차곡 모아서 폭넓은 시야를 보여주었다.


시와 그림으로 위로받고 싶을 때 펼쳐보면 좋겠다. 저 멀리 날아오르는 뒷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며. 누군가의 뒷모습을 지켜봐 주는 일이 슬프지만은 않다는 걸 되새겨 본다.



올해 두 살 된 단비는

첫배에 새끼 여섯을 낳았다


딸이 넷이었고

아들이 둘이었다


한 마리는 인천으로

한 마리는 모래내로

한 마리는 또 천안으로


그렇게 가도

내색이 없다가


마지막 새끼를

보낸 날부터


단비는 집 안 곳곳을

쉬지 않고 뛰어다녔다


밤이면

마당에서 길게 울었고


새벽이면

올해 예순아홉 된 아버지와


멀리 방죽까지 나가

함께 울고 돌아왔다


- 박준 「단비」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문학과지성사,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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