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일라잇 시티] 프롤로그 및 1화

Chapter 1. 그림자와 빛의 도시

by 이진성

프롤로그


태양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섀도우 시티의 아침은 여전히 어둡고 무거웠다. 도시 바로 옆, 섀도우 월이라 불리는 거대한 장벽 너머로는 샤이닝 시티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초고층 건물들 사이로 태양이 떠오를 때마다 그곳은 황금빛으로 반짝였다. 하지만 그 빛은 이곳까지 닿지 않았다. 두 도시를 가르는 장벽과 빌딩들의 그림자가 태양 빛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섀도우 시티는 이름 그대로, 늘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다.정오가 되어서야 두 도시의 경계 위로 태양이 걸리고 그제서야 한 줄기 빛이 잠시 이곳에 스며든다. 하지만 그마저도 잠깐이다. 날씨가 흐린 날이면 하루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림자 속에서 흘러간다.


반대로 샤이닝 시티는 다르다. 정오가 지나 해가 넘어가도 빌딩들은 서로 햇빛을 반사하며 도시를 밝힌다. 그곳에는 그림자가 거의 생기지 않는다. 마치 밤마저 허락되지 않는 도시처럼. 그 도시는 언제나 안정적으로 돌아간다. 그 곳의 인구수는 늘 일정하게 유지되었고 드물게 생기는 빈자리들은 매년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의 합격자들로 채워진다. 그곳에 살게 되면 늙지 않고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력은 끊기지 않고 질서는 유지되며 삶은 정해진 궤도를 따라 흘러간다. 모든 것은 정확한 시간대로 흘러가며 예측 가능한 결과를 가진다. 그 완벽함은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준다.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게 만든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 편안함과 안전이 정말 아무런 대가 없이 가능한 것인지, 이 모든게 모두에게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이러한 질문은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이 도시는 질문을 금지하지 않는다. 다만, 질문이 필요 없도록 충분히 편안할 뿐이다. 우리는 그 안정 속에서 살아가며 무엇을 잃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의문조차 생기지 않도록 이 세계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붙잡을 이유를 찾는다. 그래야 하루하루를 버티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그 질문은 생존을 넘어, 자신이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가에 대한 물음으로 바뀐다. 그 선택의 차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모두가 같은 시간에 움직이고 같은 길을 지나며 같은 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무엇을 붙잡고 있는지, 누가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는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품고 있는 질문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조금씩 바꾼다. 어떤 이는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외면하지 않으려 하고, 어떤 이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을 선택한다. 그 차이는 사소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명한 경계를 만든다. 그리고 문득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로 선택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결정에 삶을 맡긴 채, 정해진 방향을 따라 이동하고 있을 뿐인 존재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미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잃은 채 떠다니고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게 된 순간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단순히 살아 있는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무엇을 선택했고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결국, 어떤 인간으로 남을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선택은 기록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람의 삶에는 분명한 흔적으로 남는다.


빛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그 아래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오직 인간의 몫이다. 같은 태양 아래에서 누군가는 지켜내고 누군가는 외면한다.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사라진다. 이 도시는 조용히 묻고 있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분명한 이유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리고 이 세계가 나에게 선택을 요구할 때,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 그 질문은 아직 아무도 대답하지 않은 채, 도시 위에 머물러 있다.


태양은 오늘도 떠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모든 것을 비추지 않는다.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인간의 선택만이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Chapter 1. 그림자와 빛의 도시


해가 기울 무렵이었다. 섀도우 시티는 아직 남은 햇빛을 품고 있었다. 건물 사이로 스며든 햇빛은 점점 사라져갔지만 바닥과 벽면에 옅은 온기를 남기고 있었다. 그 빛은 곧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잠시 더 머물겠다는 것처럼 느리게 퍼져 있었다. 노을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놀이터의 그림자도 길어졌다. 곧 있으면 어두워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 집에 갈 생각이 없다는 듯, 해가 완전히 지기 전까지 이 시간을 붙잡고 싶어 했다. 그때쯤 어른들이 나타났다. 일하고 퇴근중이던 아버지들이었다.


친구들은 하나둘 손을 잡혀 사라졌다. 누군가는 어깨에 올라탔고 누군가는 등에 업혔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놀이터 한가운데에 혼자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네에 앉아 노을이 천천히 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은 조금씩 빛을 잃었고 놀이터에 남아 있던 그림자들도 길게 늘어지다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낮 동안 따뜻하던 바닥의 온기는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식어 갔고 공기마저 차갑게 변해 갔다. 웃음과 발소리로 가득하던 공간은 어느새 숨을 죽인 듯 고요해졌고 그 고요 속에서 나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을 직감하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조용했다. 섀도우 시티의 저녁은 빨리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때마다 그림자가 발밑에서 길게 늘어졌다. 그러다가 문득 샤이닝 시티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은 건물들은 멀리서도 밝게 비추고 있었다. 어둠으로 잠긴 이곳과 달리, 그곳은 밤에도 가로등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밝게 빛난다. 그곳의 삶은 어떨까.. 그곳에서는 노을이 져도 어두워지지 않아서 계속 놀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있었다. 부엌에서 저녁을 준비하고 있는 뒷모습.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듣고 어머니가 나를 찾으며 말했다.


“이든 왔니? 곧 저녁먹을 시간이니 손 씻고 식탁에 앉아있으렴.”


식탁에는 늘 두 개의 그릇만 있었다. 어머니와 나. 둘이서만 먹는 저녁은 익숙했고 그래서 더 조용했다. 아버지는 여러 도시를 오가며 무역 일을 했는데 섀도우 시티에서는 모든 것을 만들어낼 수 없었기에 다른 도시와의 거래는 늘 필요했다. 하지만 한 번 도시를 떠나면 몇 달씩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랫동아 나가있을 수록 어머니의 암 증세는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한 피로라고 생각했지만 병은 이미 몸 깊숙이 퍼져 있었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얼굴은 수척해졌고 팔과 다리에는 힘이 빠져 오래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 보였다.


생활은 빠듯해졌고 집 안에는 이전보다 더 긴 침묵이 늘어났다.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보내오는 지원 덕분이었다. 도시에 머물지 않는 아버지는 늘 곁에 없었지만 최소한의 생활비는 꾸준히 도착했다. 어머니는 그 돈을 받을 때마다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나는 그 표정이 왜 그렇게 슬퍼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때는 몰랐다. 그 시절에 우리 집이 겨우 숨을 쉬듯 하루하루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평소처럼 집에 돌아온 나는 식탁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늘 두 개뿐이던 그릇이 세 개가 놓여 있었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나를 보러 오던 아버지가 집에 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 날이 가장 좋았다. 아버지를 볼 수 있었고 식탁에는 평소보다 훨씬 맛있는 음식들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그날의 저녁은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온전한 가족의 모습에 가까웠다. 같이 저녁을 먹으며 아버지는 다른 도시에서 본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한강 시티에서는 말이야. 도시 안에 미래와 과거가 함께 공존하고 있어. 최신 건물들 사이로 오래된 건축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그 사이를 강과 공원들이 이어져 있지. 도시인데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야.”


루나 시티 이야기도 나왔다.

“그곳에서는 로봇들이 사람 대신 일을 하고 있어. 위험한 일들도 전부 로봇이 하고 있지.”


나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들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숟가락을 움직였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느새 접시는 비어 있었다. 잠시 말없이 나와 어머니를 번갈아 바라보던 아버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에 통과했어.”

어머니는 놀란 듯 바라보았고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어 가만히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로즈. 여기서는 너의 병을 고치지 못해. 샤이닝 시티가 유일한 희망이지. 하지만 그곳에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로써는 그 프로젝트가 유일했어. 합격자의 가족에 한에서 병을 치료해준다고 했으니.”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샤이닝 시티에 들어갈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합격자만이 들어갈 수 있지만 대신 가족의 병도 완치해 준다는 조건을 내걸며 지원자들을 끌어모았다.

아버지는 이미 결심한듯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이번에 모든 걸 정리하려고 왔어. 샤이닝 시티로 가게 되면 아마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추고 식탁 위에 작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곳은 화폐를 사용하지 않으니 내가 번 돈은 가져갈 필요가 없어. 대신 여기서는 필요하겠지. 이건 두고 갈게.”


아버지는 내 쪽을 바라보며 낮게 말을 이었다.

“이든이 일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까지는 이걸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소를 지으려 애썼지만 눈가에 머문 불안은 끝내 숨기지 못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날의 공기는 이상하리만치 무거웠고 무언가가 돌이킬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만은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인사를 건넨 후 사라졌다. 연락할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든 연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그렇게 아버지의 떠나는 뒷모습은 눈부신 도시의 황금빛에 삼켜져 끝내 닿을 수 없는 어딘가로 멀어져 갔다.

병은 우리 가족을 갈라놓았다. 누군가의 선택이나 잘못 때문이 아니라, 함께 있어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드는 현실 때문이었다. 살리기 위해서는 떠나야 했고 남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했다.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불치병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벌어 와도 섀도우 시티에는 어머니를 살릴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의 병 앞에서는 그런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 사실이 우리 가족을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샤이닝 시티로 떠난 지 며칠이 지났다. 평소처럼 저녁을 먹고 이제 잠자리에 들려던 참이었다. 그때 믿기 힘든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고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급하게 울리는 문소리에 어머니가 달려나가 문을 열자 그곳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극도의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샤이닝 시티에서 탈출한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무언가를 속삭였다. 나는 그 말을 듣지 못했지만 어머니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가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아버지는 다시 떠났고 어디로 간 것인지는 끝내 알 수 없었다.


다음 날 군인들이 집에 들이닥쳐 아버지의 행방을 캐물었다. 우리는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정말 몰랐지만 어머니는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진실은 결국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일찍 떠나면서 함께 묻혀 버렸다. 그렇게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지도 어느덧 30여년이 흘렀다.


그 후로 나는 샤이닝 시티를 동경하면서도 동시에 두려워했다. 도시는 여전히 황금빛으로 빛났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어둡고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느낌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았다. 합격자 대부분은 어느 순간 소식이 끊기고 극소수만이 황금빛 방송 화면 속에서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타난다. 하지만 그 미소가 진짜 행복인지, 아니면 환상인지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가 왜 도망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비밀은 여전히 어둠 속에 묻혀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을 끝내 말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얼굴이 내 기억 속에 지금도 선명히 남아 있다.






어두운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끝없이 솟은 건물 위 불이 꺼진 방 안에 나 혼자 창 밖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방은 어두운 암흑 같았고 숨조차 막히는 듯 고요했다. 창밖으로 흘러내리는 빗방울만이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창에는 나의 어두운 얼굴이 비쳐 있었다. 그 모습은 낯설 만큼 차갑고 텅 빈 표정이었다.


그 순간, 번개가 도시 위를 갈랐다. 하얀 섬광이 방 안을 잠깐 비추었고 창에는 방금까지 없었던 또 하나의 사람이 비쳤다. 지금의 자신의 모습 뒤로, 다른 한쪽은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또 다른 그림자. 그러나 자세히 보니 그들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라움에 숨이 막히려는 순간, 다시 한번 번개가 창밖을 찢으며 방 안을 삼켰다. 그리고 나는 숨을 몰아쉬며 꿈에서 깨어났다. 깨어난 곳은 낡은 시멘트 방 안이었다. 그리고 곧바로 벽에 달린 공공 스피커가 크게 울리며 새벽 아침을 찢었다.


[모든 근로 인원은 정해진 시간까지 배정된 근무지로 출근 바랍니다.]


방송음이 멎자, 방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나의 숨소리만이 희미하게 맴돌았다. 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벽을 바라봤다. 시멘트 벽에는 거미줄처럼 금이 퍼져 있었고 녹슨 파이프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이곳에서 시간은 언제나 느리게 흘렀다. 그림자 속에서는 하루조차 무겁게, 굼뜨게 움직이는 듯했다. 나는 잠시 멍하니 벽을 바라다가 늘 하던 대로 일어나 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린 뒤, 나갈 준비를 했다.


섀도우 시티의 사람들은 성인이 되면 할 일이 정해지게 된다. 신체 조건에 따라 어떤 이는 공장에서 기계를 만들고 어떤 이는 비옥한 땅에서 농사를 지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곡식과 고기, 기계 부품들은 필요한 최소한만 남기고 전부 샤이닝 시티로 올라갔다. 마치 그들을 위해 우리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그 덕분에 그나마 우리가 큰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위에서 내려오는 감시와 통제 속에서 움직여야 했다. 샤이닝 시티에서 파견된 군인들, 그리고 하늘을 떠다니는 드론들이 모든 움직임을 보고있었다.


내 이름은 이든 카터.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올해로 서른여섯,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근로자다. 여섯 살 때 아버지가 실종되었고, 그로부터 몇 년 지나지 않아 어머니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친척의 손에 맡겨져 자랐고, 성인이 되자마자 집을 나와 공장에서 일하며 살아왔다.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 지원은 성인부터 가능하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지원만 열일곱 번, 열 번 정도는 아예 테스트 대상에도 들지 못했고 일곱 번 정도는 테스트 도중에 탈락했다. 사실 테스트는 조금 위험한 편이었다. 부상을 입는 사람들도 많았고 중간에 사고로 사망하는 자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곧 다가올 테스트는 다를 거라 믿었다. 아니,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낡은 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안개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 대부분 해어진 옷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걷고 있었다. 모두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는 나처럼 꿈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지만 반대로 희망 없이 평생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길가의 전광판이 동시에 켜졌다. 섀도우 시티는 매일같이 광고를 내보냈다. 푸른빛 화면 속에 잘생긴 남자와 예쁜 여자가 미소 지었다. 그들은 섀도우 시티 출신이었고 100년이 넘도록 이터널 플레임 프로젝트의 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뒤에는 해가 떠오른 상류층 도시의 황금빛 도시가 비쳤다.


“도시를 위해 이터널 플레임(영원한 불꽃) 프로젝트에 지원하세요. 당신의 이름은 영원할 수 있습니다.”


“당신도 불멸의 삶을 가질 수 있어요.”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올려다봤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일출, 눈부신 하늘, 웃는 사람들. 화면 속 세상은 너무 멀었다.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잠시 후 일터에 도착한 나는 동료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곧장 일을 시작했다. 귀를 찢는 듯한 기계 소음과 공기를 메운 먼지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잠시 휴식 시간이 찾아오자 직장 동료 존과 해리가 다가왔다. 존은 곧 결혼 준비로 분주했고 해리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혼이었다.


나는 작업 장갑을 벗으며 웃었다.

“존, 결혼 날짜가 이제 얼마 안 남았지?”

존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응, 이제 며칠 안 남았어. 정신은 없는데.. 그래도 결혼 생각만 하면 기분은 좋더라.”

해리는 농담으로 받아치며 말했다.

“이제 자유롭게 술 마실 날도 얼마 안 남았네. 난 아직 신혼인데도 벌써부터 아내 잔소리에 시달리고 있어.”

“너는 와이프가 곧 출산 예정이라며. 그런데도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가니까 잔소리를 듣는 거지.”

존이 농담 섞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긴장보다는 여유가 묻어 있었고 결혼을 앞둔 설렘 덕분인지 눈빛이 한결 밝아 보였다. 힘든 삶 속에서도 소소한 농담을 던질 줄 아는 성격 덕에, 그는 곁에 있는 이들에게 늘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곤 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가볍게 웃었다.


존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이든, 넌 언제쯤 좋은 소식 들려줄 거야? 이렇게 혼자만 지내면 외롭잖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 아직 결혼 생각 없어. 지금은 다른 게 더 중요하거든.”

해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또 그거야? 샤이닝 시티에 가겠다는 꿈?”

나는 단호히 대답했다.

“맞아.”

존이 씁쓸하게 웃었다.

“넌 대단하다, 이든. 하지만 이제 현실 좀 보라고. 몇 번이나 떨어졌잖아. 포기하는 것도 필요해.”

나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너희들도 알잖아. 샤이닝 시티에서 사는 게 내 꿈이라는 거. 이렇게 잠깐 살다 사라지는 인생은 원하지 않아.”

해리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넌 아직도 하늘만 보네. 우린 그냥 눈앞의 작은 행복으로도 충분한데.”

나는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지만, 곧 시선을 돌렸다.

“난 그냥 이렇게 살다가 사라지는 게 싫을 뿐이야. 기억도 남지 않고, 이름조차 잊히는 삶은 원하지 않아.”

해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너도 알잖아. 그동안 샤이닝 시티에 가려고 발버둥 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결국 끝내 가지 못하고 나이만 들어버린 사람들도 수두룩했어.”

존이 조용히 나를 바라보며 말을 보탰다.

“해리 말이 틀린 건 아니야. 너무 높은 꿈만 좇다가 정작 눈앞의 행복조차 놓쳐버리면 그땐 어떻게 하려고?”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림음이 울렸다. 우리는 대화를 멈추고 곧장 배식을 받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작업장 천장을 올려다봤다. 회색빛 시멘트 틈새로 흘러든 희미한 햇살이 눈에 들어왔다. 그 빛은 단순한 햇살이 아니었다. 나에겐 반드시 닿아야 할, 다른 세계로부터의 신호처럼 느껴졌다.


점심을 끝내고 잠시 밖으로 나왔다. 늦었지만 섀도우 시티에 진짜 아침이 찾아왔다. 거대한 담벼락과 초고층 건물 사이로 빛의 칼날이 스며들었다. 차갑던 공기가 잠시 금빛으로 물들었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인부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빛은 마치 다른 세상의 축복 같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잠시 동안 세상은 따뜻했다. 하지만 그 빛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시간 뒤면 그림자는 다시 도시를 삼키게 된다.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에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하층민에게 허락된 일몰이었다. 나는 벤치에 걸터앉아 붉게 타오르는 노을을 바라봤다. 노을은 짧았지만 잠시나마 아름다웠다.


그 아래로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울려 퍼졌다. 먼지 낀 공기 속에서도 그들의 눈동자는 석양을 받아 반짝였다. 골목 끝, 아버지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짓했다. 아이들은 잠시 뒤돌아보다가 다시 한 번 달리며 웃었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