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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문보 Feb 20. 2020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의 현주소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의 영화 <기억의 전쟁> (Untold, 2018)


할아버지는 전쟁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그런 건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라 했다. 학교에선 베트남 참전으로 경제발전을 할 수 있었다고 배웠다. '양국이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라고 대통령은 말했지만 그 불행한 역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 이길보라 감독 -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심지어 재수학원에 다니면서 한국 근현대사를 배웠다. 그러나 이길보라 감독처럼 어떤 교사를 만나든 파병의 대가로 미국이 한국군의 전력 증강과 경제 개발을 위한 기술 및 차관을 제공하겠다는 브라운 각서를 토대로 박정희 정부는 베트남 파병을 실시했고, 그로 인한 베트남 특수 덕분에 경제 발전을 할 수 있었다고만 배웠다. 심지어 이길보라 감독의 경험과 달리 본인은 베트남과 한국 모두 불행한 역사를 겪었다는 내용을 배우지도 않았다. 다큐멘터리 영화 <기억의 전쟁> (2018)은 불행한 역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찾고자 하는 동시에 전쟁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영화는 민간인 대학살로 가족을 잃은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 그날의 현장을 두 눈으로 목격한 '딘 껌' 아저씨, 그리고 그날 이후 전쟁의 흔적으로 두 눈을 모두 잃은 '응우옌 럽' 아저씨, 즉 살아남은 세 분의 증언으로 그날의 이야기에 접근한다. 또한, 클로즈업 쇼트를 활용해 나무와 육체에 새겨진 전쟁 범죄 피해의 흔적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껌' 아저씨의 증언은 한국군 중 일부가 파병으로 받은 월급으로 어린 베트남 소녀를 돈으로 사서 성적인 관계를 맺었고, 소녀를 임신시켰음에도 어떤 책임도 지지 않고 라이따이한을 외면한 채 고국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만든다. 



대한민국으로 넘어온 카메라는 가해자의 태도를 기록한다. 인터뷰에 응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은 본인들의 희생과 애국심 덕분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고, 민간인 학살과 성매매는 극소수의 일탈이라고 주장하며, 전쟁에서 민간인 중 일부가 입는 피해는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을 내세운다. 그리고 본인들은 국가가 내린 작전을 군인 신분으로서 그저 따랐을 뿐이므로 어떤 죄도 없고, 오히려 마땅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호소한다. 이뿐만 아니라 비록 시민평화법정은 모의법정에 불과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참전용사들은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를 포함한 베트남 피해자들을 미동 없이 빤히 쳐다볼 뿐이다. 물론 참전용사 중에서 민간인 대학살이나 성매매를 하지 않았던 분이 계시겠지만, 그들의 단체 행동은 비극적 사건을 외면하는 뻔뻔한 자세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카메라는 베트남에서의 카메라와 달리 시위를 위해 모인 참전용사들의 훈장, 소속 군부대 마크, 군복 등을 클로즈업해 프레임에 담아내고, 전자의 이미지와 충돌을 일으킴으로써 반성의 태도가 없는 대한민국이 베트남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고 있는 현실을 환기한다. 아울러 영화는 시민평화법정에서라도 사과를 받았으면 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던 '응우옌 티 탄' 아주머니가 참전용사의 부동자세를 보고 슬픔에 잠기는 모습을 관객에게 보여준다. 끝으로 이길보라 감독은 아주머니가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은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막으로 전하며 영화를 마무리한다. 이는 아주머니가 대한민국 방문 당시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김복동 할머니와 함께 슬픔을 공유하는 순간과 연결되는데, 상반된 위치에서 두 가지 기억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대한민국 사회가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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