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라는 거대한 유조선에 갇힌 것은 나만이 아니었다.
수많은 동기가 존재했지만, 연수원 시절의 '황홀한 착각'은 부서 배치와 함께 산산이 부서져 사라졌다.
우리는 겉으로는 동기애를 유지했지만, 내면적으로는 철저히 고립되어 있었다.
우리의 관계는 '함께 같은 수조에 갇혀 있는 물고기'와 다름없었다.
특히 심했던 건 점심시간이었다.
10명이 넘는 동료들이 긴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나누는 대화는 기계적이었다.
"오늘 결재 건은 마무리했어?", "다음 주 감사 때문에 죽겠네." 같은 업무의 피상적인 부분만 공유될 뿐이었다.
누구도 개인의 진심 어린 좌절이나 비전 상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밥그릇을 지키는 외로운 섬이었다.
마치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다'는 무언의 규칙이 테이블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우리는 이 고독과 절망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외부에 모였다.
토요일 저녁, 우리는 평소 입지 않던 캐주얼한 옷을 입고 도심 속 루프탑 바나, 아니면 아예 캠핑장 같은 곳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잠시나마 'H사 신입사원 현우'가 아닌, '20대 후반의 꿈 많던 청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맥주가 몇 잔 돌자, 분위기는 한층 격렬해졌다.
모두의 눈빛에는 그동안 억눌려 있던 분노와 좌절이 비쳤다.
"결국 우린 이 시스템의 볼모야. 우리가 아무리 혁신을 외쳐봐야, 위에선 '괜히 건드리지 마라'는 한 마디면 끝난다고." 누군가 술잔을 세게 내려놓으며 말했다.
다른 동기는 "내 전공? 그딴 거 필요 없어.
그냥 시키는 대로 오류 없이 복사나 잘하는 게 우리 임무야." 라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하지만 일탈은 딱 거기까지였다.
새벽 2시, 택시를 타고 헤어질 때면, 모두는 다시 냉정한 현실을 인지했다.
내일 아침, 우리는 다시 그 비합리적인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그 일탈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오히려 회사로 돌아가야 할 현실이 더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회사로 돌아온 뒤, 탕비실 구석에서 동기인 민영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재무팀 소속이었던 민영이는 입사 초기 누구보다 발랄하고 목표 의식이 강했던 친구였다.
그녀는 굳게 닫힌 탕비실 문 옆에 기대어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현우야, 나... 도저히 못 해먹겠어." 민영이의 손에는 두 달 치 쌓인 전표 묶음이 구겨져 있었다.
"결산이 코앞인데, 매일 야근해도 뭐가 나아지는지 모르겠어. 이 수많은 숫자를 맞추려고 밤을 새우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니? 내가 이 회사 시스템의 붕괴를 막는 건가? 그냥 오류 없이 숫자만 기계처럼 옮기는 거잖아. 내가 재무 전문가가 아니라, 그냥 고성능 복사기가 된 기분이야."
그녀의 눈은 이미 지쳐 있었고, 핏줄이 터진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에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역할은 창조가 아니라, 그저 시스템이 요구하는 데이터를 오류 없이 전달하는 기계에 불과했다.
나는 무의미한 위로 대신,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작 "조금만 더 버텨보자"는 무력한 말만 건넬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얕게 공유했지만, 누구도 먼저 탈출을 감행할 용기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모두는 다시 완벽하게 마비된 톱니바퀴의 이빨로 돌아와 매뉴얼을 응시했다.
우리는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음에도, 그 고통을 해결할 방법을 논의하는 대신, 서로의 고독을 확인하며 불안하게 연명하는 공동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