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영진 Oct 30. 2022

Day 17. 부다페스트

200120 Budapest

1월 20일, 드디어 여행의 (실질적인) 마지막 날 아침의 밝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21일 11시 15분 출발. 사실상 내일은 시간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멋진 도시 여행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해야 할지 고민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알람을 맞췄다. 마지막 날 아쉬움을 남기고 싶진 않다. 물론 아무리 고민이 되어도, 일단 밥부터 먹어야지. 국회의사당이 창문 너머 보이는 이 멋진 식당에서 다시 아침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식사를 마치고, 방에 올라와 외출 준비 완료. 어제 계획한 대로 유럽 여행 카페에 저녁 식사 초대 글을 올리고 길을 나섰다.


부다페스트 호텔의 훌륭한 아침식사 / 마지막 날 일정 시작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하지만 게으른 부모는 어쩔 방법이 없다.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역시 호텔 문을 나선 시각은 10시 30분. 그보다 일찍 나오는 건 참 쉽지가 않다. 오늘도 여전히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하다. 어제저녁 사진 찍을 때만 잠깐 괜찮았던 건지. 마지막 날까지 날씨가 아쉽다. 첫 번째 일정은 또 한 번 어부의 요새로. 해가 진 후의 사진은 남겼지만, 밝을 때 사진이 없어 아쉬웠다. 게다가 어젯밤에 찍은 사진을 호텔에 들어와 살펴보니, 잠에서 깨자마자 찍어서 그런지 세현이 얼굴이 너무 부어 있어서 너무 아쉬웠다. 그 아쉬움을 오늘은 꼭 만회할 작정이다.

새롭게 24시간 교통 티켓을 구입한 후 버스를 타고 어부의 요새로 올라갔다. 아이들 컨디션은 아주 괜찮아 보인다. 버스는 한적했고, 요 녀석들은 이 좋은 날에 서로 벨을 누르겠다고 싸우고 있다. 도착하자만 아이들을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사진을 남겼다. 밤과는 또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어부의 요새. 보고 또 봐도 정말 멋진 곳이다. 하지만 너무 아침부터 왔는지, 오늘도 세현이의 얼굴이 조금 부어 있다. 세현이가 이렇게 얼굴이 잘 붓는지 처음 알았다. 본인이 말은 안 하지만, 지금 많이 피곤한 상태가 아닌가 싶어 미안하다. 모델도 아니고, 부은 얼굴을 어찌할 수도 없기에 그 정도로 만족하고 우린 다시 시내 방면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한다.


어부의 요새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사소한 다툼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어부의 요새와 세체니 다리에서 형제 사진 촬영 with 브리오 기차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점심을 먹기 위해 페스트 지구 중심부로 가는 길. 잠시 세체니 다리가 보이는 곳에 들러 사진을 남겼다. 날은 흐리지만, 비가 내리진 않아 너무 다행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곳에선 어떻게 찍어야 사진이 멋지게 나오는지 통 모르겠다.

이제 마지막 점심식사 시간. 오늘 마지막 부다페스트 식당은 바로 국내에도 까마귀 식당으로 알려진 VakVarjú Restaurant이다. 그래도 헝가리에 왔는데 현지 굴라쉬는 꼭 먹어 봐야지. 식당은 대관람차가 있는 엘리자베스 광장(Erzsébet tér) 인근에 위치해 있다. 식당 내부는 기대 이상으로 고급스러웠고, 음식 가격은 생각보다 저렴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우리에겐 안성맞춤. 음식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아이들은 놀이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마지막 외식이니만큼 3가지 메뉴를 주문했다. 굴라쉬와 현지 전통 부침개(피자?), 그리고 미트볼 스파게티이다. 식사가 준비되고 아이들을 부르지만, 녀석들은 놀기 바빠 올 생각을 안 한다. 결국 아이들이 먹을 양을 덜고 부모부터 식사를 한다. 잠시 후 놀다 지친 아이들이 자리로 왔고, 아이들도 식사에 참여할 수 있었다. 음식 맛도 생각보다 괜찮다. 사실 부침개는 예정에 없이 시킨 메뉴인데, 아이들은 이걸 가장 잘 먹는다. 피자라고 생각한 것일까. 음식을 다 먹고도 아이들은 놀이방에서 더 논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계속 잡고 있기가 눈치 보여 아주 짧게 놀이 시간을 준 후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이번 유럽여행 마지막 외식, 부다페스트 까마귀 식당에서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번 유럽여행 마지막 외식, 부다페스트 까마귀 식당에서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점심을 먹고 나왔는데, 그 많던 구름이 보이질 않는다.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부다페스트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니. 이 얼마나 감격적인 일인가. 완벽하게 화창한 날씨는 아니지만, 어렴풋이 보이는 파스텔톤 하늘의 모습도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날씨가 좋아지자 우리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기분도 낼 겸 우린 Váci St를 가로질러 그레이트 마켓 홀(Nagy Vásárcsarnok)까지 걸어가기로 결정했다. 약 2km의 거리, 아이들과 함께 간다면 40분은 걸리겠지. 그래도 걷기에 너무 좋은 환경이다.  

여러 상점들을 구경하며 걷기를 계속. 아이들은 유모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그리고 40분을 예상했지만, 1시간 30분이 걸려 그레이트 마켓 홀에 도착했다. 이곳은 대형 시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 와이프가 파프리카 분말과 몇 가지 살 물품이 있다고 했다. 시장 안은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아주 예쁘게 꾸며져 있다. 세현이 녀석은 어떻게 새로운 곳에 온 걸 아는지, 잠에서 깼다. 언제든 새로운 걸 좋아하는 우리 세현이. 잠에서 깨자마자 현란한 조명과 시장 분위기에 즐거워하고 있다. 나는 세온이 유모차를 끌고, 엄마와 세현이는 시장 구경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구경을 마칠 즈음 세온이도 잠에서 깼고, 우리는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부다페스트의 멋진 풍경들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레이트 마켓 홀(Nagy Vásárcsarnok)에서 시장 보기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그레이트 마켓 홀을 나선 후 바로 앞에 있는 다리(Liberty Bridge)를 걸어서 건넜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고, 해가 지기 전에 조금 더 걷고 싶었다. 뉘엿 해가 지기 시작한 강의 풍경이 너무 아름답다.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길 건너편 다리 난간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 소녀들의 모습도 아름다워 보인다. 우린 다리를 건너갔다가, 집으로 가기 위해 다시 다리를 건너 돌아왔다. 이제 슬슬 저녁을 먹어야 할 시간이다.

원래 우리는 다른 여행객을 초대해서 저녁을 먹을 계획이었다. 아침에 글을 올렸고, 오전에 2명 정도가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고 쪽지를 보내오긴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저녁 식사 계획을 취소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중요한 건 그 여행 카페 규정 중에 집에서 하는 파티 모임은 금지된다는 조항을 늦게 발견한 것이다. 사실 그냥 무시하고 저녁을 먹을까 싶으면서도, 굳이 규정을 어겨가면서까지 식사 모임을 만들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연락해 온 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점심 무렵 모임을 취소했다고 답변을 드렸다.

그런데 사실, 조금 귀찮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밖에 나와 돌아다니다 보니, 체력이 고갈되었다. 나는 누군가 처음 만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사람이다. 혹자는 그런 만남을 가지며 에너지가 충전된다고 하지만, 나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 결국 나에게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추진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굳이 카페 규정까지 어겨가며 모임을 만들 수는 없다.


해가 지기 시작하는 부다페스트의 멋진 풍경들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Liberty Bridge 위에서 사진들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첫 번째 집 숙소를 정리해야 한다. 어제 호텔로 옮기면서 기본적인 짐을 다 가져갔지만, 청소와 정리는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사실 우리 가족 저녁식사를 준비할 체력도 남아 있지 않았던 터라, 우린 정리만 마치고 저녁을 어딘가 가서 간단히 사 먹기로 했다. 원래 들어오는 길에 숙소 앞 평점 좋은 와플집에서 와플을 사다 먹으려고 했는데, 영업을 하지 않아 그마저도 실패했다.

집에 들어와 정리를 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국 6시가 넘어서 정리를 완료하고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우린 트램을 타고 호텔 방면으로 이동했다. 호텔 쪽에서 국회의사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길 생각이었다. 원래 가족사진을 찍을 생각이었는데, 가족사진 촬영은 실패했다. 인물을 비출 조명이 따로 마땅치가 않아 생각처럼 사진이 예쁘게 나오질 않았다. 고민을 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어부의 요새를 한 번 더 올라가기로 했다. 사실 어제 세현이 얼굴 부기가 내내 마음에 걸렸다. 오늘 마지막으로 거기서 멋진 가족사진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다페스트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이동하는 길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버스를 타고 어부의 요새로 가는 길. 저녁을 못 먹은 탓에 더 이상 배고픔을 참기가 어렵다. 마침 길에서 패스트푸드 피자집(Pizza Me)을 발견. 유심히 관찰하니 조각으로 피자를 판매하고 있고, 매장 안에서 식사도 가능해 보인다. 피자를 주문하고 먹는데, 아니 우리가 어디서 이렇게 맛있는 피자를 먹어봤던가. 너무 맛있었다. 저녁 8시까지 굶주렸던 아이들도 폭풍 흡입. 그냥 마지못해 들어온 식당에서 이렇게나 맛있는 피자를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아예 자리를 잡고 더 먹고 싶었지만, 나와 아내는 이제 마음이 어지간히 조급하다.

다시 길을 나서 버스를 타고 어부의 요새에 도착.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마주하게 됐다.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길에 점점 창 밖이 뿌옇게 되더니, 어부의 요새에 도착하니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는 건 어려운 일. 우린 재빠르게 포기하고, 세체니 다리로 가는 버스를 탔다. 저 아래로 내려가면 안개가 없겠지 싶었다. 그러나 세체니 다리 역시 안개 때문에 희미한 조명으로만 분간이 가능한 상황. 우리의 마지막 사진 찍기 계획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돌이켜보니 결국은 부다페스트에 처음 도착했을 때 날씨가 가장 좋았다. 시차 적응도 힘들고, 부다페스트에서 남은 날이 많다는 핑계로 사진 찍기는 미뤄두었는데. 그 결말은 이렇게 되어 버렸다. 뭐, 이런 게 또 여행의 묘미라면 묘미이니. 지금까지 남긴 사진들로 여행의 기억들을 간직하는 수밖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린 호텔로 발걸음을 옮겼다.


갑자기 만난 부다페스트 피자 맛집 Pizza Me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안개로 자욱한 어부의 요새와 세체니 다리의 모습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마지막까지 모든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 들어오니,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제 남은 아쉬움은 언젠가 다시 올 여행을 위해 마음속에 담아두는 수밖에 없다. 내일 장거리 비행을 위해 아이들을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아이들은 감사히 금방 잠이 든다.

이렇게 우리 여행이 끝나는 걸까. 20일 여행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기분이란 참 뭐라 설명하기가 어렵다. 여행의 마지막 날 밤엔 꼭 다중인격자가 되는 기분이다. 한시라도 빨리 따뜻한 집에 가고 싶은 마음, 여행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 여행 추억들을 돌아보며 아내와 대화하던 중, 갑자기 서로 지금 무척 배가 고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쉬운 마음은 담아두어야 한다고 했지만, 저녁으로 먹었던 피자가 갑자기 떠오른다. 현재 시각 밤 10시. 용기를 냈다. 아내가 짐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가서 피자를 사 오기로 했다. 자욱한 안갯속 늦은 밤에 나가기가 겁이 나기도 했지만, 빠른 이동을 위해 트램이 아닌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다.

이 피자를 먹고 나면 정말 모든 일정이 마무리된다. 2018년 여행처럼 사건, 사고는 없었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방법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언젠가 아이들과 다시 이 도시에 오게 될 것이라는 확신은 생겼다. 내일 또 긴 시간 비행기를 타야 한다. 아쉬운 마움을 부여잡고 잠자리에 든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나도 아내도, 아이들도 잘 버틸 수 있길 소망한다.


부다페스트 마지막 밤, 마지막 피자 야식을 위한 발걸음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부다페스트 마지막 밤, 마지막 피자 야식을 위한 발걸음 (2020.1. 헝가리 부다페스트)


이전 17화 Day 16. 부다페스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