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에 첫 아이가 첫째 아이가 되다
가족에게 새로운 생명이 찾아오고 불가피하게 여러 변화들을 맞이했다. 엄마, 그리고 아내로서 일터와 가정에서의 역할, 아빠이자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하지만 가족 내에서도 가장 큰 변화를 만난 건 첫째 아이가 아닐까. 하루아침에 형아가 되어버린 꼬마의 마음을 우리가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큰 아이 서운치 않게 하는 게 어려운 일이라 말만 들었지, 나도 외동처럼 자라온 터라 그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없었고, 공감의 부재가 아이에겐 또 얼마나 서러이 느껴졌을지 지금까지도 가늠할 수 없다.
큰 아이는 말귀를 알아들으니까, 두 번 세 번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못 알아들으면 짜증이 나더라. 첫째는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옆에서 지켜봐 주지 않게 되고,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거나 자꾸만 재촉하게 되는 일이 많았다. 갓난아기 옆에 있는 네 살 아이는 상대적으로 너무도 커 보여서 자꾸만 다 큰 것 같고 또 비교적 무거워 자꾸만 안아주지 않게 되더라. 아무것도 모르고 빵긋빵긋 웃어대는 신생아를 보면서는 나도 빵긋거리게 되는데 울며 떼쓰는 아이를 보면 자꾸만 씅이 나더라. 아무리 네 살이라 그렇다지만 밥을 먹을 때도 양치를 할 때도 신발을 신을 때나 샤워를 할 때도 자꾸만 뒤집힌 허파를 찾으며 답답해하던 나의 모습.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고 안 되는 것 투성이가 된 형아의 삶은 얼마나 고단했을까.
부모로서 나는 단 한순간이라도 온 마음으로 아이를 기다려보긴 했었나, 버럭 화를 내거나 투정을 짜증으로 맞받아치고는 매일같이 후회로 칠흑 같은 밤을 보냈지만 도저히 깨우쳐지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루는 열이 펄펄 끓던 큰 아이가 해열제를 먹고 잠에 든 날이었다. 동생 우는 소리에 깼는지 뒤척이다가, 둘째를 안아 재우던 나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나 아프잖아. 나도 빨리 안아서 토닥토닥해 줘야지!!”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소름이 돋았다. 내가 알던 아이가 맞나? 지금 나를 혼내는 게 우리 아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섭게 내리 꽂혔다. 아.. 그동안 너도 참고 참고 또 참고 있었구나. 무수한 신호를 줬을 텐데 뭐에 씌었는지, 나는 왜 한 번도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둘째가 태어난 후로 내 생에 처음이던 아이는 이상하리만치 무겁게 느껴졌다. 생각해 보면 만삭일 때도 그리 안아줬었는데 말이다.
그날은 유독 가라앉지 않은 몸의 감각들을 다독이며 밤새 지난 시간들을 뒤적거렸고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쓴 편지에 한참을 머물렀다.
달아, 지난 토요일에 엄마랑 함께 본 영화 ‘조수웅덩이’ 기억나? 엄마는 안 보려다가 우리 달이 보여주면 좋겠다 싶어 자리 잡고 앉았는데 그만 엄마가 푹- 빠져버렸지 뭐야.
바다, 그 안의 작은 웅덩이. 밀물에 모래로 밀려온 바닷물이 썰물에 깊은 바다로 모두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여있는 것 있지? 그걸 조수웅덩이라고 부른대. 그 웅덩이 안에는 바닷물과 함께 너른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발이 묶여버린 물고기와 여러 생물들이 있는데, 바로 그 웅덩이가 또 하나의 바다가 되더라.
눈으로 찾아보기도 힘든 작은 생명들과 그들에게서 뻗어 나오는 에너지를 느끼면서 엄마는 달이 생각을 하게 됐어. 우리 달이도 지금 우주에서 밀려와 엄마 안에서 자리 잡고, 새로운 생명체가 될 준비,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야. 0.36cm, 0.49cm, 1cm, 3cm.. 어제 산부인과에서는 달이 무게가 150g이나 되었다고 알려주시더라, 이렇게 엄마 뱃속에서 완벽한 생명, 온전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신비로운지. 너를 기다리는 이 세계가 마치 바다 같다는 생각을 했어. 한차례 파도가 지나가면 생겨날 조수웅덩이처럼 말이야.
우리가 함께 본 영화가 마음에서 잊히지 않아 아빠와 함께 바다로 향했어. 금능해변에 발을 담갔는데 발바닥에 닿는 바닷물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껴지고, 작은 생물들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내딛는 걸음마다 조심스러워지는 거 있지? 아마 뱃속에서 우리 달이가 함께 보고 반가워하는 덕이겠지? 그래서 엄마는 나지막이 속삭여봤어.
”달아, 바다야. 우리가 영화에서 만난 친구들이 여기에 모두 모여있네! 지금 이렇게 달이와 함께라서 참 감사하고 행복해. 사랑해. “
*달 : 아이의 태명
주말에 아이와 시간을 보내야겠다 생각하고 단 둘이 바다로 향했다. 결코 가깝지 않지만 지난여름엔 주말이면 게으른 몸을 이끌고서라도 부러 향했던 곳인데 올해는 출산하고 한 번도 못 갔던 금능해변. 사실 아이는 주말마다 모래바다 가자고 노래를 불렀는데 아무래도 신생아가 있다 보니 주저하게 됐던 바다놀이터에 여름이 다 지나고서야 다시 왔다. 차에서 내려 모래에 발이 닿는 순간 아이는 잠자리채, 나는 뜰채를 들고서 조수웅덩이를 향해 뛰어든다.
“엄마! 여기 봐봐 소라게야” “유성아! 이것 좀 봐봐 엄마 꽃게 잡았어!”
“엄마! 이리 와봐 물고기야” “유성아! 여기로 물고기 몰아줘!”
우리는 서로 자기가 본 세상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이 났다. 웅덩이 안의 생명들을 쫓느라 바쁜 아이의 눈, 그 눈에 하나라도 더 담아주고파 더욱 바빠지는 엄마의 손과 발. 바닷물을 석석 헤치며 물고기를 모는 나의 모습은 스스로의 유년부터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나와 추억을 나누는 친구는 동네 오빠들도, 사촌형제도 아닌 바로 내 생에 첫 아이,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작은 웅덩이마다 꼭 저처럼 아꼬운 존재들을 찾아다니는 이 아이다. 뱃속에 작은 점처럼 존재하던 아이는 모래처럼 고운 발로 바다를 누비고 다닐 만큼 훌쩍 자라 있다. 바다에 안겨 한참을 놀다 보면 어느새 아이는 파도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모래의 부름에 달려간다. 혼자만의 재미를 찾은 아이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고 놀이에 몰두하고 그럼 그제야 내 눈은 물고기가 아닌 아이를 향하게 된다. 자유로이 노니는 아이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에서부터 뜨뜻한 무언가가 퍼지며 찾아드는 감사한 순간. 오늘따라 평상시와는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생각이 덧붙는다. 아이가 나를 불러주어 고맙네. 아이가 나와 노는 걸 즐거워해주니 다행이야. 나의 추억을 아이가 함께 채워주다니, 영광이잖아.
오늘, 단 몇 시간이지만 온전히 첫째 아이와의 시간을 보내고 차에서 잠든 아이를 안고서 엘리베이터 없는 4층을 걸어 올랐다. 참 간사하기도 하지 전혀 무겁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돌 아기 때부터 지금까지 몸무게는 얼마 차이 나지 않는다 아이는 단순히 키가 자라고 말이 또렷해지고 생각이 컸을 뿐, 모든 건 상대적인 내 상황만이 변했을 뿐이라는 걸 다시금 느끼고선 이내 자라난 아이에 비해 넓어지지 않은 엄마의 마음이 부끄러워진다. 잊지 말자 아이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음을.
*아꼬운 : ‘사랑스러운’의 제주 방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