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생일이라고 저녁 특별식을 제공? 해 줘서 한 숟가락을 뜨는 순간, 큰 딸이 “아빠 선물이야”하면서 편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집에 귀가 하기 직전에 두 자녀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몰래 귓속말 회의 및 편지 전달에 대한 논의 마친 후, 식사하는 도중에 나에게 서프라이즈를 한 것이다.
편지 봉투를 열어서 아이들이 쓴 편지와 그 내용물을 보는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눈가에서 흘렀다. (갱년기는 아닌데.)
나중에 어른이 되면 캠핑카를 사준다는 아이들의 이야기에 왜 그렇게 눈물이 흘러내리는지. 밥을 먹는 것인지, 눈물을 먹는 것인지도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이들이 건네 준 깜짝 선물
아이들이 건네 준 편지 봉투를 바라보면서 그리움 때문인지, 6년 전 하늘나라로 가신 아버지 생각이 문득 스쳐 지나갔다.
나의 어린 자녀가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면서 건넨 용돈과 편지 글이 그날따라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뼈 때리듯 후벼 파는지.
나는 내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이었는가?
나는 왜 살아생전에 따뜻한 말 한마디와 글 하나도 써 드리지 못했을까?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 이틀 전에 아버지는 8년 간 암 투병을 하시다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고 나니 조금만 더 살아 계셨으면 하는 아쉬움과 후회가 들 때가 많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딸과의 관계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먹함’ 혹은 ‘데면데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물론, 돈독한 관계 속에서 사랑이 넘치는 부모 자식 간의 연을 맺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시골에 가면 집안 어른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 중에 ‘부모님 살아계셨을 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뻔한 말이고 당연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께 전화 한 통화, 얼굴 한번 뵙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타지에서 현재의 상황이 결혼 전이라면 공부하기 바쁘다고, 직장 생활을 하면 직장 생활 바쁘다고, 결혼하면 가정생활 바쁘다고 이런저런 핑계만 자꾸 늘 뿐.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청초한 부모님은 어느새 머리에는 하얗게 눈이 내리고 눈가에는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있다.
내 아버지, 어머니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마음을 먹었지만, 내 모습 속에서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정말 최고의 행복한 가정을 꾸려야지 마음을 먹지만, 그 안에서 부모님의 마음을 보게 된다.
본인들도 자식들을 잘 먹이고 잘 살고자 어려운 시절 견디며 살았을 텐데. 이제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보니 부모님의 심정을 알 게 되고 철이 든다.
결혼 전, 이상적인 가정과 완벽한 부모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자녀를 낳아 키워보니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과연 존재할까라는 생각을 한다. 나 자신이 행복을 꿈꾸며 살아가는 불완전한 존재이고 내적 성장이 필요한 존재인데.
완벽한 부모를 꿈꾸고 있다는 자체가 허상 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부모가 완벽한 부모인가?
돈이 많은 부모? 학식이 풍부한 부모? 권력과 명예가 많은 부모?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
2019년도에 천만 이상의 관객이 본 “극한직업”이라는 영화가 있다. 극 중 주인공 류승룡은 마약반 형사로 정말 최선을 다해 일을 하지만 실적은 없고, 집에서는 아내에게 인정도 못 받는 평범한 남자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다.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대한민국 평범한 직장인이다.
주인공 류승룡이 극 중 동료 배우에게 이런 대사를 한다.“니들 우리 딸 예진이 알지?” “개 초등학교 때 장래 희망이 뭔지 알아?”
장래 희망을 물었기 때문에 단순히 직업에 대한 답변을 생각을 하던 찰나에 주인공의 입에서는 “용의자”라는 답이 나온다. 그 이유는 용의자가 되면 아빠를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에 딸의 장래 희망이 용의자라는 것이다.
그때 상대 배우는“그래, 용의자가 돼서 만나는 아빠보다 치킨을 시키면 만나는 아빠가 낫지.”라는 대사를 한다. 상대 배우의 대사 때문에 그 순간 폭소를 터트렸지만, 대사가 주는 의미가 상당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적이 있다.
나는 어떤 아빠이고 어떤 부모의 모습 일까?
짧은 대사 한 마디 속에서 타인과의 비교 대상이 아닌, 내 자녀에게 아빠로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자식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함이 아닌, 아이들이 필요할 때 언제라도 찾아주고 달려갈 수 있고 손을 내밀어 줄 수 있는 부모인가?
한 발 멀리서 등을 보이며 걸어가는 아빠가 아닌, 옆에서 어깨를 내어 주며 걸어가는 그런 부모가 되고자 노력해 보면 어떨까? 그렇다면 자녀의 장래 희망이 최소한 용의자는 아닐 것이다.
언젠가 아이들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여행하길 오늘 다시 소원해 본다.
완벽하지 않으니까 지금도 사는 것이고, 그래서 완벽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