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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pd 알멋 정기조 Aug 29. 2022

근현대로의 시간 여행, '서울역사박물관'

서랍 속 오래된 물건을 다시 꺼내 보는 듯한 느낌으로 박물관을 보다


'서울 사람은 부산 바다를 그리워하지만, 부산 사람은 서울을 보고 싶어 한다.'


다른 곳은 보통 'OO 여행' 이라고 많이 부르지만 서울은 '서울 여행' 이라는 말 외에 '서울 구경' 이라는 말이 존재합니다. 故 서영춘 선생의 '서울 구경' 이라는 노래 때문이기도 한데요, 어쨌거나 '여행' 이 (다른 곳으로의) 이동 자체가 포인트라면 '구경' 은 그것보다는 흥미와 관심이 포인트입니다. 


과거에는 평생 서울 구경 한 번도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였겠습니다만 교통이 발달한 지금은 서울을 못 가본 사람이 더 희귀할 것입니다. 서울보다 더 잘 지어진 아파트, 서울 못지않게 번화한 거리가 전국에 충분히 있을 테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서울 구경' 이라는 말이 쓰이는 까닭은 아직까지 사람과 물자와 자본 등 전국의 모든 인프라와 아이템 등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 대한 흥미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서울의 대표 여행지는 어디가 있을까요? 600년 조선 왕조의 중심지인 경복궁과 창덕·창경궁, 우리나라의 대표 유물들이 다 모여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역사 유적이 있고, 전 세계적으로 드물게 수도를 가로지르는 큰 강물인 한강 주변, 전국 최고 수준의 공원인 올림픽공원이나 서울 숲, 기타 내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핫 플레이스' 로 인지되는 홍대·연남동이나 백화점 본점, 놀이공원 등도 있습니다. 외국인들이나 지역 거주인들에게는 정말로 흥미로운 곳이 되겠죠.


그런데 사실 수도권 거주인들에게는 별로 흥미로운 공간은 아닌 듯합니다. 너무 많이 가봐서일까요? 그냥 일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별 느낌 없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는 것이죠. 외국인들에게 우리나라의 대표 여행지라고 소개할 수는 있어도 내국인들에게는 그다지 메리트 있는 여행지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서울 안에서 외국인들에게도 흥미로우면서 수도권 거주인을 포함한 내국인들에게도 흥미로운 곳이 어디 있을까 찾아보다가, 제가 픽한 공간이 바로 '서울역사박물관' 입니다.




서울의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


세계사적으로 '중세(中世)' 는 서로마 제국 멸망(476)부터 동로마 제국 멸망(1453)까지의 시기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르네상스가 완성되면서 '근대' 로 넘어오게 되는 흐름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설인데, 우리가 고전 중의 고전이라 부르는 '바로크(Baroque)' 도 르네상스 이후인 근대의 일이 됩니다.


그런데 서울 1392년 조선 왕조가 건국한 이래 600년 넘게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근대와 현대를 통째로 아우르는 기간 동안 우리나라의 중심이었다는 것이죠. 서울의 역사가 바로 근대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 그 자체인 것이고, 따라서 서울역사박물관은 우리나라 근·현대의 역사의 엑기스를 모아놓은 곳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근현대 콘셉트의 전시관이나 박물관은 전국에 다수 있지만, 서울의 역사는 그와는 다르게 근·현대사의 '대표' 격이 되기 때문입니다.


현대사로 오면 그러한 대표성이 더 강해지는데, 일례로 1988년 서울올림픽 관련 전시물을 들 수 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국내는 물론 세계사적으로도 굉장한 의미를 갖는 올림픽입니다. 1980년대 동서 냉전을 겪으면서 1980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 LA 올림픽은 각각 동서 진영이 불참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는데, 1988 서울에서 이러한 냉전이 극복되고 모두 참가하는 평화의 장이 열렸죠. 또 불과 30년 전에 세계 최빈국이었던 소위 '개발도상국' 에서 열린 최초의 올림픽으로, 당시의 여러 중·후진국들과 특히 동유럽 국가들에게 성장에 대한 큰 동기를 부여한 올림픽으로 평가됩니다. 국내사적으로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대한민국이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의 길로 들어섰고, 북한과의 체제 대결에서도 완전히 승리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그 외 남서울(강남) 개발 계획(1970), 서울지하철 개통(1974), 국회의사당 준공(1975) 등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들이 전시관 여기저기를 채우고 있습니다.




'이게 아빠가 어렸을 때 썼던 물건이야'


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나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 고려시대의 청자나 조선시대의 대동여지도 이런 유물들을 보면 '아,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한번 보고 지나가는 게 보통입니다. 반면 일제강점기 이후 특히 현대의 전시물들을 보면 지금 우리의 삶에 대입이 되고 때로는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예컨대 아래 '1971년도 남서울 약도' 를 보면, 지금 서울에서도 중심지 중 하나인 잠실이 당시에는 섬(잠실도)과 백사장 지역이었다는 것, 잠실대교가 과거 '제7한강교' 로 불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 중에는 이 약도나 과거 잠실 지역 사진을 보면서 '맞아, 이 근처가 다 허허벌판이었어.' 하면서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과거에 썼던 다이얼식 전화기나 세탁기·선풍기는 중년 이상의 세대에서는 '직접 썼던' 물건이고, 전시된 초기 컴퓨터는 3, 40대까지도 어렸을 때 직접 만져봤던 물건입니다. '이게 아빠가 썼던 물건이야.', 'LG가 과거에는 럭키금성이었어.' 하는 얘기를 들으면 유소년 세대들도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1978년부터 입주하여 2014년까지 있었던 서초삼호아파트 내부(111㎡)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공간도 있습니다. 지금은 '서초 푸르지오' 가 됐지만 불과 우리 엄빠 세대 때 중상류층이 어떻게 살았는지 직접 눈으로 보면서 지금의 집들과 비교해 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경험입니다.


마치 서랍 속 깊은 곳에 있던 옛 물건을 다시 꺼내보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 이런 게 현대 전시물들이 고대 유물들과 다른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공간 증축으로 더 많은 전시물이 있었으면


서울역사박물관에는 훨씬 더 다양한 전시가 가능해 보이고 더 필요해 보입니다. 서울은 단순히 600년 도시가 아니라 과거 한성백제(BC18~475) 시절부터 도읍지였고 고려시대에도 3경 중 하나(남경)였는데, 조선시대 이전에 대한 전시가 없는 것은 좀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근·현대사에서도 영광만이 아니라 그늘을 조망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중상류층의 아파트 모형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과거 고속 성장 시대에 서울 곳곳에 있었던 판자촌 모형이 더 필요한 게 아닌가 싶고, 서울올림픽 같은 영광도 좋지만 와우아파트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도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한 전시가 부족해 보입니다.


그리고 근·현대 유물 중에는 일반인이 보유한 물건이 훨씬 더 많을 것인데 이 부분에 대한 전시 공간 확장도 필요해 보입니다. 박물관 안에 기증유물전시관도 있는데, 기존의 세탁기·컴퓨터·선풍기 외에도 다양한 것들을 기증받아 전시한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위해서는 공간 증축부터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의 2층 규모의 전시관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상설 전시가 사실상 1개 층일 정도로 전시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수직 증축을 통한 공간 확장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박물관 위치는 서울 한복판으로 접근성이 좋은 편이며, 바로 옆에 바로 경희궁이 있습니다. 경희궁은 다른 궁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대신 방문객이 적어 훨씬 한적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근처에 경복궁이나 경운궁(a.k.a. 덕수궁) 도 있으므로 그쪽으로 가봐도 됩니다.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10월 초(궁중문화축전)

- 연계 여행지 : 경희궁, 경복궁·경운궁(덕수궁), 북촌 한옥마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세종문화회관(공연)


- 교통 : 서울역에서 2.6km, 동서울터미널에서 16.5km, 인천공항에서 59.6km

                     (서울역~) 종로 1가까지 버스 또는 지하철 1호선(서울역→종각) 이동 후,

                                   버스 환승하여 서울역사박물관·경교장 정류장 하차. 편도 20분 내외

                     (동서울터미널~) 지하철 2호선(강변→을지로4가) 이동 후,

                                   지하철 5호선으로 환승(을지로4가→광화문). 편도 45분 내외

                     (인천공항~) 공항버스 직통 편 이용. 편도 80~90분

                                   공항철도(인천공항→공덕) 및 5호선(공덕→광화문) 환승 이용. 편도 100분 내외


- 먹거리 :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무교동·다동 음식문화의거리, 남대문·북창동 먹거리 골목, 

              종로3가 보쌈골목, 을지로 골뱅이골목, 인사동 골목 내 맛집 등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경희궁의 정전(正殿), '숭정전'
숭정전에서 내려다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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