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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pd 알멋 정기조 Oct 12. 2022

이순신의 바다(2) - 명량대첩의 진도-해남 '울돌목'

명량의 대승을 이끈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곳


명량대첩 - 400여 년 동안 누구도 설명할 수 없었던 불가사의한 승리


이순신의 23전 23승은 치밀한 정탐과 완벽한 전략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옥포 해전 때 이순신 본인이 말했듯이 항상 '勿令妄動 靜重如山(망령되게 움직이지 말라, 태산과 같이 조용하고 무겁게 움직여라)' 의 자세로 전투를 치렀고 그 계산은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습니다.

 * 옥포 해전(1592) : 거제 옥포에서 왜군 50척 중 26척을 격침시킨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최초 승리이자 조선군 최초의 승전.


그런 이순신도 셈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명운을 걸고 싸운 단 하나의 전투가 바로 명량대첩입니다. 칠천량에서 대패하고 그나마 남아 있는 단 13척의 배로 최소 300척 이상의 일본군을 막아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비율로 따지면 소위 '17대 1' 이 넘습니다. 이순신도 승리 후 난중일기에서 '실로 천행(天幸)이었다' 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전 글에서도 잠시 언급했지만 개전 후 상당 시간 동안 이순신의 대장선 1척이 홀로 일본군 전체를 상대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물살이 세다는 울돌목(鳴梁)의 역 물살을 받아가면서입니다. 울돌목 바닷물의 유속은 최대 22km/h 에 이른다고 하는데 이를 초당으로 계산하면 6m/s 나 됩니다. 이런 엄청난 물살에 노 젓고 버티고 서 있기도 어려운데 '133대 1' 로 싸우면서 적선을 하나하나 박살내고 있었으니, 도대체 어떻게 승리를 할 수 있었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 기록에 의하면 왜선 300척 중 직접 참전한 전선은 133척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명량수도가 좁아서 전군이 한꺼번에 참전하기 어려워서일 것입니다. 이렇게 적의 전력을 분산한 것도 이순신의 계산이었습니다.)


일본군도 당시의 조류 상황을 읽고 기동력이 좋은 세키부네(関船) 함선 위주로 편성하여 울돌목의 빠른 물살을 순조류로 타면서 돌격했는데, 역조류를 받고 버티는 조선군의 판옥선 1척을 상대로 2시간 동안 제대로 된 공략조차 하지 못하고 되레 차례차례 격파당했다는 것입니다. 상상이 되십니까.


명량해전 당시 상황을 추정한 현대의 한 연구에 의하면,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군은 오전 10시경에 출전하여 11시경부터 본격적으로 일본군과 교전을 했는데 이때 역류가 최고 4.1m/s 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조류의 방향은 12시 18분경부터 서서히 바뀌어 오후 1시 이후부터는 조선군이 순조류를 타는 상황으로 역전됐는데, 이순신은 바로 이때를 승기로 보고 2시간 동안 역조건 속에서 버텼다는 얘기가 됩니다.

* 출처: <명량해전 당일 울돌목 조류·조석 재현을 통한 해전 전개 재해석>, 변도성·이민웅·이호정, 한국군사과학기술학회지 제14권(2011).


꿈보다 해몽이 좋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이순신은 이렇게 역류일 때 버텨내지 못하면 전투에서 아예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역류일 때여야만 왜선들이 명량으로 돌격할 것이고 그래야만 적선과 전면전을 피하고 각개 격파할 수 있다, 그래야만 순류일 때 승부를 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너무나도 대단한 승리여서 어떻게 승리했는지 누구도 설명할 수 없고, 그래서 오히려 한산대첩처럼 명확히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전투로 인정받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승리, 그것이 바로 명량해전입니다.


주)

일부에서 주장하는 철쇄설, 이른바 쇠사슬을 걸어 일본군을 저지했다는 것은, 설령 사실이라 하더라도 전투 초반에나 효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번 쇠사슬에 걸려 왜선의 돌격이 저지당하고 그 뒤에 따라오던 함선이 서로 부딪쳤다 하더라도, 엄청난 물살을 순조류로 타고 부딪치는 수십 척 함선의 무게를 쇠사슬이 계속 버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최소 폭 300m에 달하는 명량 해협에서 앞의 배가 멈춘다고 그걸 바보 같이 계속 들이받을 리도 없었을 것이고 아마 후속 대열은 이를 피해서 돌격했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철쇄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명량대첩의 승리의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명량대첩비
명량대첩탑 (해남 우수영관광지)



불가사의한 승리의 비결, '울돌목' 의 빠른 물살


명량대첩 승리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쾌하게 밝혀지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울돌목의 빠른 물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좁은 길목을 틀어막는다면 이곳보다 더 좁은 곳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굳이 최소 300m의 넓은 폭을 가진 울돌목을 전장으로 택한 이유는 바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세다는 울돌목의 물살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래서 울돌목에 가게 되면 가장 먼저 물살이 얼마나 센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해남 우수영관광지에는 '울돌목 스카이워크' 라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막상 가 보면 스카이워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높이가 상당히 낮습니다만 높이가 낮기 때문에 오히려 울돌목의 물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울돌목의 물살을 보면 마치 홍수 때 빠르게 흐르는 한강 물살을 보는 듯합니다. 최대 초속 6m이니 아차 하는 동안에 저 멀리 떠내려갈 정도의 빠르기입니다. 명량대첩의 진짜 영웅은 당시 노를 저었던 격군(格軍)이었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닙니다. 당시 우리 격군들은 두 시간 넘게 이 엄청난 물살을 노 저으며 버텼습니다. 다른 무엇도 아닌 '제자리 지키기' 부터 사투였던 것이죠.


이 빠른 물살이 무언가 장애물을 만나면 마치 회오리 같은 움직임을 보입니다. 그래서 영화 '명량' 의 부제가 '회오리바다' 였습니다. 이순신이 지휘하던 조선군은 이 회오리 포인트를 정확하게 읽고 그렇지 않은 곳에서 제자리를 지키며 항전했을 것이고, 왜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돌진하다가 이 회오리바다에서 중심을 잃고 허우적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좀더 높은 곳에서 넓게 조망하기 위해서 울돌목을 가로지르는 '명량해상케이블카' 를 타는 것도 방법입니다. 이 케이블카는 해남과 진도 양방향에서 모두 탈 수 있는데, 가급적 높은 곳에서 내려오면서 보는 진도 방향에서 탑승하는 것이 좋습니다.



명량해상케이블카



울돌목을 사이에 둔 현재 진행형 전투, 해남과 진도


육지에서 울돌목을 건너기 전은 해남이고 울돌목을 건너면 진도입니다. 그래서 두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이순신을 테마로 한 여행 아이템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해남은 과거 전라 우수영이 설치되어 있던 곳이어서 '해남 우수영관광지' 라는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이곳의 랜드마크는 '울돌목 스카이워크' 와 '명량대첩기념관' 입니다. 명량대첩기념관(명량대첩해전사기념전시관)은 단순한 전시보다 과거 판옥선의 모습을 2개 층으로 재현하여 놓은 것이 특징입니다. 기념관 밖으로 나오면 한산도의 한산대첩기념비에 필적할 만한 '명량대첩탑' 이 우뚝 솟아 있고, 바다 쪽에는 내부 관람이 가능한 거대한 판옥선 모형 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 입니다. 육지가 아닌 울돌목 바다 위에 세워진 이 동상은, 높이는 2m 밖에 안 되지만 명량대첩 당시 수많은 고뇌에 싸여 있던 이순신의 모습을 정말 잘 표현해 낸 동상으로 평가됩니다. 


우수영관광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명량대첩비(보물 제503호)' 가 있습니다. 숙종 때인 1688년에 세워진 것인데 일제강점기 때 뽑혀서 경복궁 어딘가에 뒹굴고 있던 것을 광복 후에 원래 있던 자리로 옮겨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진도 쪽에는 '녹진국민관광지' 가 조성이 되어 있습니다. 진도 녹진관광지의 랜드마크는 '진도타워' 인데 '명량해상케이블카' 를 타는 곳이 연계되어 있어 보통 케이블카를 타기 위해 이곳을 들르게 됩니다. 타워에는 '명량대첩 승전관' 과 '명량MR시네마' 그리고 전망대 등이 있습니다.


진도 쪽에도 해남의 스카이워크와 비슷한 '울돌목 물살체험장' 이라는 곳이 있고 해남과 똑같이 판옥선 모형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높이 30m의 '충무공 이순신 동상' 이 있는데, 규모도 크지만 우리나라의 여러 이순신 동상들 중에서 가장 역동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성웅의 영웅적 기백을 멋지게 표현해 낸 동상입니다.


다만 이렇게 두 지자체가 경쟁을 하다 보니 유사한 아이템이 중복으로 설치되는 모양새입니다. 그보다는 전라남도 차원에서 양쪽의 관광 자원을 좀더 효율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합니다. 일례로 44억 원을 들여 만든 '울돌목 거북배' 가 적자 누적으로 운항을 중단한 채 우수영항에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사례입니다.


*주) 이런 면에서 보면 서울 세종로의 이순신 동상은 졸작 중의 졸작입니다. △우선 칼집을 오른손으로 잡고 있는 것은 항복하러 갈 때나 협상하러 갈 때와 같이 싸울 의사가 없다는 표현이라는 점이 가장 논란이고, △보물 제326호 쌍수도와 보물 제440호 참도 등 이순신이 썼던 무기가 실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전혀 다른 모양의 칼을 차고 있는 점, △갑옷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것이 장수의 복장이라 볼 수 없다는 점 등의 논란이 있습니다.



'고뇌하는 이순신' 동상
판옥선 모형 (우수영 관광지)
해남 충무사
울돌목 거북배 (우수영항)
진도타워
서울 세종로 이순신 동상


명량대첩 승전일은 음력 9월 16일인데, 그래서 매년 9~10월경에는 '명량대첩 축제' 가 열리니 기왕이면 축제 때 맞춰 가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명량대첩 승리의 중요한 이유인 조류의 변화를 직접 보기 위해서는 방문일 당일의 물때 시간을 확인하여 그 시간에 맞춰 가면 더 좋겠습니다.


해남의 남서쪽 끝, 진도의 입구에 있는 울돌목은 (수도권 기준으로) 거리가 상당한 데다가 교통도 좀 불편하여 가는데 좀 어려움이 있습니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은데, 가장 편한 방법은 ▲KTX를 타고 목포역에 가서, ▲목포 시내버스를 통해 목포터미널로 이동한 후, ▲시외버스 편으로 목포터미널에서 녹진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아니면 △광주의 유스퀘어 버스터미널에서 녹진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 편을 타면 됩니다. 해남에도 우수영터미널이 있지만 울돌목과 좀 거리가 있어 불편하고(2.8km), 반면 진도의 녹진터미널은 울돌목 바로 앞에 있어 접근성이 좋습니다.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9~10월경(명량대첩 축제)

- 연계 여행지 : (해남) 대흥사, 땅끝마을, (진도) 진도항, 신비의바닷길


- 교통 : 서울시청에서 393.4km, 목포역에서 36.5km(목포역~목포터미널; 4.5km)

           (목포터미널~녹진터미널) 시외버스 편. 1일 6회, 편도 56분

           (광주터미널~녹진터미널) 시외버스 편. 1일 6회, 편도 1시간 56분

              *버스 편 문의 : 녹진터미널 / 061-542-4195


- 먹거리 : (해남) 떡갈비, 닭 코스 요리, 해물탕(이상 향토음식)

              (진도) 홍주(酒), 듬북국, 꽃게탕, 간재미회무침(이상 향토음식)


진도항 (구 팽목항)
쏠비치 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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