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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pd 알멋 정기조 Oct 05. 2022

이순신의 바다(1) - 한산대첩의 통영 '한산도'

세계 4대 해전 한산대첩, 그리고 이순신이 세운 삼도수군통제영의 무대

* 이번 이야기는 여행지의 스토리가 된 이순신의 승리 이야기도 곁들여 써 봅니다.



이순신, 그 자체로 전 세계 일류 브랜드


이순신은 세종대왕과 함께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입니다. 그냥 영웅 정도가 아니라 '성스러운 영웅(성웅)' 인 유일한 사람이죠.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많이 다루지만 그만큼 더 극의 전개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순신입니다. 전 국민이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많이 들어서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각보다 이순신을 잘 모릅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이겼다는 그 유명한 제갈공명도 사실 이순신의 전략과 업적에는 단연코(!) 미치지 못합니다. 이순신은 적어도 ▲수백 년은 앞선 해상 전술을 실전에서 선보였고, 그걸로 ▲단 한 번도 아닌 23전 23승 무패의 신화를 만들었으며, 그냥 승리 정도가 아니라 ▲800:0 의 압승을 거뒀으니, 이 정도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전쟁 영웅입니다. 이는 절대 '국뽕' 이 아닙니다.


좀더 상술하면 이순신은 기본적으로 함대함 포격전이라는 현대적 해상 전술을 이미 400여 년 전에 구사했고, 특히 부산포 해전에서 선보인 함대지 포격전, 즉 해상 함대가 육지의 본진을 선제 타격하는 전투 방식은 적어도 19C 전에는 상상도 못할 전술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석기시대에 손자병법을 구사한 정도로 '넘사벽' 인 전술을 썼던 셈입니다. 

 * 부산포 해전(1592) : 이순신의 3대 대첩 중 하나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해전 금지령' 에 따라 부산 본진에 머물러 있던 일본군의 함대를 이순신의 함대가 선제 타격한 전투. 이순신의 전투 중에서도 최다인 일본군 전선 128척을 침몰시켰고 일본의 전쟁 의지를 완전히 꺾었음. 부산에서는 승전일인 10월 5일(양력 환산)을 '부산 시민의 날' 로 기념하고 있음.


그 결과 23번의 전투 동안 (공식 기록만) 800여 척에 가까운 왜선을 박살내면서 아군의 피해는 '0' 인 거의 SF 소설급의 전공을 올렸습니다. 명량대첩에서는 아예 이순신의 대장선 1척 혼자서 울돌목의 급물살을 역류로 받아가며 300여 척의 왜선을 2시간 동안 상대하는 불가사의에 가까운 무용을 보여줬습니다. 


이순신의 진가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거북선이라는 세계 최초의 장갑선을 창안하여 개발한 ▲창의적인 과학자였고, 1만 명 이상의 병력과 수군을 중앙 정부 지원 하나 없이 자급자족으로 운영하며 오히려 중앙 정부에 상납까지 한 ▲탁월한 경영자였으며, 전란으로 황폐화된 민심을 바로잡고 민중의 항전 의지까지 되살린 ▲목민관이자 정치가였습니다. 사후 조선왕조실록에 '호남 일도(一道)' 의 사람들이 모두 통곡했다' 라고 기록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 거북선(龜船) : 조선 태종 때인 1413년에 이미 '귀선(龜船)' 이라는 용어는 쓰이고 있었는데 이는 배 위 일부에 철갑을 둘러 적의 화공을 막는 정도였을 것으로 보이며(이러한 형태마저도 서방세계에서는 1782년에야 등장), 이순신은 이를 개량하여 △배 위에 철제 송곳을 박아 적이 배에 올라타는 것을 봉쇄하고, △거북 머리에서 전방 방향으로 화포를 쏘아 돌격하면서 전투를 할 수 있게 하였으며, △기존 판옥선의 튼튼함에 철갑을 더하여 적의 화공과 조총 공격을 무력화하는 최전방 돌격용 장갑선으로 개발하였음. 서방 세계에서 거북선 같이 철갑을 두른 장갑선 형태가 나온 것은 미국 남북전쟁 때인 1862년으로, 이순신의 거북선은 이보다 270년이나 빠른 것임.


무엇보다 국가로부터의 지원은커녕 오히려 모함을 받아 쫓겨난 상태에서, 칠천량 해전에서 전멸하다시피 한 수군 전력을 가지고 30배에 가까운 적군을 상대하고 결국 전장에서 목숨까지 바친 ▲최고의 충신이자 인격적 성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인조·효종·정조 등 후대의 여러 왕들도 이순신의 업적을 크게 평가하고 흠모하였는데, 숙종은 '殺身殉節 古有此言 身亡國活 始見斯人(절개를 지키려 죽음을 무릅썼다는 말은 예부터 있었으나 제 몸 죽여 나라를 살린 것은 이 사람에게서 처음 본다)' 라는 현충사의 제문을 직접 써서 사액(賜額)할 정도였습니다.

 * 칠천량 해전(1597) : 이순신 파직 후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칠천량에서 왜군에게 대패한 사건. 그 결과 거북선 3척 포함 대부분의 전투선을 잃고 조선 수군 전체가 사실상 와해되어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음.


알면 그만큼 더 많이 보인다고 하죠. 전국에 이순신 관련 여행지가 여럿 있는데 사실 많은 국민들은 이곳들을 매력적인 곳으로 보지 않는 게 보통입니다만, 우리가 이순신을 좀더 깊이 이해하고 가서 돌아보면 더욱더 그곳에서 영감을 받고 의미 있게 여행할 수 있게 됩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그동안 전혀 몰랐던 '세계 최고의 해군 영웅' 의 진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산도 충무사의 이순신 영정
거북선 모형 (통영 도남관광단지)



한산대첩 - 한산뿐 아니라 임진왜란 전체의 승리를 꾀한 '신의 계책(神策)'


세계 4대 해전이라는 말은 사실 명확한 근거가 없습니다. 과거 영국 해군이 가르치던 세계 3대 해전에 한산대첩이 포함됐다는 것인데, 세계 3대 해전이라는 것 자체가 서구, 특히 영국 중심의 가치관이 반영된 것이고 여기에 한산대첩이 포함됐다고 하는 것도 국내에서 주로 통용될 뿐 세계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사실은 아닌 것 같습니다.

 * 세계 3대 해전 : 살라미스 해전(BC480, 그리스vs페르시아), 칼레 해전(1588, 영국vs스페인), 트라팔가 해전(1805, 영국vs프랑스-스페인).


그렇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한산대첩 은 충분히 그들과 동급, 아니 그 이상으로 놓아도 전혀 손색없는 대승리이기 때문입니다. 한산대첩을 통해 사실상 일본의 수륙 병진 전략은 완전히 봉쇄되었고 결국 보급이 끊긴 일본은 패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임진왜란에서 조선이 승리한 결정적 계기가 된 전투였던 것입니다. 또한 주로 육지전에서 쓰였던 학익진을 해상에서 처음으로 그것도 완벽하게 전개하여 군사학적으로도 큰 족적을 남긴 전투였고, 전선 69척을 침몰 또는 나포하고 9,000명에 가까운 적군을 몰살시키면서 아군의 피해는 사망 3명에 그친 압승을 거둔 대첩 중의 대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학익진(鶴翼陳) : 말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펴는 모양' 으로 적을 둘러싸는 진법. 


또 하나 대단한 것은, 해전에서 학익진을 쓰는 것 자체도 당시로서는 상상도 못할 전술이었지만 열세의 병력을 가지고 더 많은 적군을 상대로 학익진을 펼친다는 것도 병법 상 말도 안 되는 시도였다는 것입니다. 원래 학익진은 다수의 병력이 소수를 완전 섬멸할 때 쓰는 진법인데, 왜냐하면 소수가 다수를 포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순신은 해상에서 제자리 선회가 가능한 판옥선의 특징을 이용하여 막강 화포의 위력으로 이를 극복해냈습니다. 이순신은 남들이 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을 머릿속에서 이런 시뮬레이션을 다 끝내 놓고 전투에 임한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한산대첩이 벌어진 것 자체도 이순신의 지략이 빛을 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산대첩 기준으로) 60척도 안 되는 전선으로 500여 척이 넘는 일본 함대를 전면적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그래서 초기에는 정탐을 통한 소규모 섬멸의 유격전 방식으로 일본군을 섬멸했는데, 견내량에 적선 70여 척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작정하고 적을 꾀어내어 완전 분멸을 시킨 전투입니다. 당시 일본은 우리 수군의 규모를 정확히 몰랐으며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도 완벽한 섬멸을 당하자 아예 조선 수군과 싸울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해전 금지령' 을 내리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이순신이 노린 바였던 거였죠. 단순히 하나의 전투뿐 아니라 임진왜란 전체의 승리를 기획한 것입니다. 가히 제갈공명을 엎어치기할 수준의 전략입니다.


한산도 앞바다는 바로 한산대첩의 승전지입니다. 견내량을 틀어막고 적을 막을 수도 있었지만 보다 적에게 큰 피해를 주기 위해 한산도 앞까지 유인하여 학익진으로 TKO승을 거뒀습니다. 

 * 견내량 : 현재 통영과 거제를 잇는 거제대교 앞의 해협.


한산대첩기념비
한산도 제승당의 '수루(戍樓)'
한산도 앞바다에 있는 '거북선등대(한산항등표)'



천혜의 수군 요새, 통영 '한산도'


한산도에 있는 '제승당(制勝堂)' 은 이순신이 최초로 삼도 수군 전체를 지휘하는 삼도수군통제영을 두었던 곳입니다. 원래 이순신은 본인의 집무실에 '운주당(運籌堂)' 이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서 유방이 책사 장량을 가리키며 말한 '운주책유악지중(運籌策帷帳之中,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다)' 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그러나 칠천량 해전 때 통제영은 모두 불탔고 이후 1740년에 통제사 조경(趙儆)이 여기에 이순신의 사당을 지으면서 이름을 '제승당' 이라 고쳤습니다. 말 그대로 '승리를 만드는 집' 입니다. 현재 제승당은 행정구역 상 '한산면 두억리' 로, 두억리라는 이름은 앞바다에 떨어진 왜군의 목이 억(億) 개는 된다는 뜻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 관련 고사 :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평정하고 공신들에게 천하를 얻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군막 안에서 계책을 짜는 것이라면 나는 장량만 못하고, 국가를 안정시키고 백성을 다독이고 먹을 것을 공급하는 것이라면 나는 소하만 못하며, 싸웠다 하면 승리하고 공격하여 취하는 것이라면 나는 한신만 못하지만, 나는 이들을 기용할 수 있었고 그래서 천하를 얻은 것이다.' 라고 말하였음('사기' 권8, 고조본기 中).


통영에서 한산도로 배로 입항하면 '제승당여객터미널' 에 도착하며 여기서부터 제승당 본 건물까지는 약 1km 도보길입니다. 이 도보길은 산책로로도 정말 훌륭하지만 더 눈에 띄는 것은 너무나도 잔잔하게 고요한 '바다' 입니다. 아래 지도 이미지를 보시면 알 수 있지만 바다가 깊게 안쪽까지 들어오는 형태라 바닷물이 섬으로 둘러싸인 형태이며 그래서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헷갈릴 지경이 됩니다. 날이 좋다면 파도는커녕 잔잔한 물결도 별로 일어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왜 이순신이 이곳을 (전쟁 중에) 통제영 본영으로 삼았는지 이해가 됩니다. 안쪽으로 움푹 파인 형태라 외부 바다에서 우리 군선이 눈에 띄지 않고, 파도가 상당히 잔잔하여 태풍 등 기상 악화에도 배와 군사를 보호할 수 있으며, 만(灣) 형태가 꽤 면적이 넓고 주변에도 그런 곳들이 많아 많은 배를 정박시킬 수 있고, 섬의 크기도 큰 데다가(14.7㎢, 여의도 5배) 경작지도 넓고 하천도 있어서 최악의 경우 육지에서 고립되었을 때에도 어느 정도 자립 및 항전이 가능해 보입니다. 역시 이순신의 탁월한 지략에 감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승당 주변의 지형도



한산도의 다른 볼거리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6년에 제승당은 '통영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 으로 성역화되고 여러 건물들이 복원되었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수루(戍樓)' 입니다. 이순신이 지은 유명한 '한산도가(閑山島歌)' 에 나오는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閑山島月明夜上戍樓)' 라는 구절에 나오는 그 '수루' 입니다.


또 하나는 이순신을 모신 사당 '충무사' 입니다. 전국에 이순신을 모신 사당은 여러 곳이 있지만, 이중 가장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숙종의 어명으로 세워진 아산 현충사와 이순신의 본영이 있었던 이곳의 충무사가 아닐까 합니다.


경내에는 '한산정' 이라는 이순신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수련장이 있습니다. 한산정의 과녁판은 바다 건너 145m 지점에 있는데, 이렇게 바다를 건너 활쏘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이곳 외에는 거의 드물다고 합니다.


거북선 모양을 활용하여 20m 높이로 지어진 '한산대첩기념비' 는 제승당으로부터 자동차로 20분 거리(10km)에 있습니다. 하지만 직선거리로는 700여 m 밖에 안 되어 제승당에서도 육안으로 보입니다. 육로로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이곳을 보기 위해서는 한산도에 카페리를 통해 자동차를 가져오셔야 할 것입니다. 이 기념비 역시 박정희 대통령 때 세워졌습니다(1979). 


기념비의 입구 마을 이름은 '문어포(問語浦)' 인데, 한산대첩 당시 패주한 왜군 일부가 이곳에서 도망가는 길을 물었다고 하여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기념비로 오르는 길의 문어포 주변 경치가 정말 좋아 마치 전망대 같습니다. 다만 이 주변의 주차 공간이 약 10대 정도밖에 안 되는 점은 감안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승당부터 해안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어지는 '한산일주로' 는 드라이브 코스로 정말 좋습니다. 왼쪽으로는 '한려수도' 라 불리는 매력적인 바다가 이어지는데 바다만 보이면 다 포토존일 정도입니다. 고저차도 거의 없는 곡선주로로 되어 있고 차량도 별로 다니지 않아 운전 난이도도 낮습니다.


'추봉도' 는 한산도에서 추봉교라는 연도교로 이어진 섬입니다. 이곳에 있는 예곡마을·추봉마을 지역은 한국전쟁 당시 UN군 지휘사령부가 있었고 또 1만여 명에 달하는 공산포로들을 수용했던 포로수용소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그러한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앞으로 통영시에서 이곳의 유적 정비사업을 추진한다고 하니 나중에는 이곳도 훌륭한 여행지가 될 것 같습니다. 이와는 별개로 '봉암해수욕장' 주변은 몽돌로 된 해수욕장으로서 낚시꾼이 즐겨 찾는 곳입니다.


'수루(戍樓)'
한산도 충무사
한산정
한산정의 과녁판
문어포 (한산대첩기념비 입구)
추봉도 봉암해수욕장 (몽돌)
추봉도 추원마을



전의 글에서 단양을 중부권 최고 여행 맛집이라고 소개해 드렸다면 통영은 남부권 최고의 여행 맛집입니다.  일단 '통영' 이라는 이름 자체가 '통제영' 에서 따왔을 만큼 통영에도 이순신 관련 여러 여행지가 있습니다. '세병관(국보 제305호)' 은 임진왜란 이후인 1605년에 (불타버린 한산도를 대신하여) 이곳에 삼도수군통제영을 새로 설치하면서 지은 건물로 그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합니다.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화재 건축물이라고 합니다.


통영에서 연륙교로 연결된 미륵도로 들어가면 '도남관광단지' 가 있는데 그곳에 거북선 모형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물론 재현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거북선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할 것 같습니다.


한려수도 국립공원의 여러 섬들이 통영 또는 거제에서 연결됩니다. 통영에만 151개의 섬이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 천혜의 항구가 있고 우리나라 최고 유명 출조지 중 하나인 '욕지도', 두 개의 섬을 잇는 550m의 '양쪽 해수욕장' 으로 유명한 '비진도', 과거 '쿠크다스 섬' 으로 불렸던 '소매물도', 거제의 외도처럼 꾸며진 '동백의 섬' '장사도', 보덕암과 출렁다리 트래킹이 유명한 '연화도' 등 섬 여행만 해도 일주일은 족히 보낼 수 있을 정도입니다. 굳이 섬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통영시내 곳곳에서 한려수도의 수려한 해안을 볼 수 있어 '한국의 나폴리' 라는 별칭이 충분히 어울립니다.


통영 육지에도 여러 볼거리가 많은데 우리나라 벽화마을의 시조 격인 '동피랑', 역시 초창기 케이블카로 유명세를 탔던 '통영해상케이블카', 우리나라 최초의 해저터널인 '통영해저터널', 루지 썰매로 다운힐 라이딩을 하는 '스카이라인루지',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진주만을 테마로 만들어진 '통영명품진주전시관' 등을 주목할 만합니다. 미륵도에 있는 '통영국제음악당' 은 바다 바로 앞에 있는 것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연상시킵니다.


더불어 통영시내 쪽은 부산, 여수와 더불어 남해안에서 가장 관광도시로 잘 개발되어 있습니다. 통영대교와 충무교를 중심으로 한 시내 야경 등을 안주 삼아 밤에도 시내 관광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다만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명 관광지가 그렇듯이 통영도 교통과 주차 문제가 상당히 심각한 편이어서 여행 시에 감안을 좀 하여야 합니다. 주말 아침에는 통영여객선터미널 진입부터 쉽지 않아, 특히 섬 여행을 가실 때에는 충분히 여유시간을 두고 움직이셔야 합니다.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8월 초중순(한산대첩 축제), 3월 말~4월 초(통영국제음악제)

- 연계 여행지 : 세병관(삼도수군통제영), 도남관광단지, 욕지도·비진도 등 한려수도 섬, 통영국제음악당 등


- 교통 :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배편. 1일 18회, 편도 35분.

             *배편 문의 : 한산도여객선예약센터 / 1833-5880

           통영여객선터미널 - 서울시청에서 381.8km, 통영종합버스터미널에서 6.9km

              (서울-통영터미널) 강남터미널에서 1일 15회, 편도 4시간 10분

              (통영터미널~) 시내버스 편. 수시 운행, 편도 30분

              *버스 편 문의 : 통영시 관광과 관광안내소 / 055-650-0580


- 먹거리 : 도다리쑥국, 굴국밥, 충무김밥, 우짜, 꿀빵(이상 향토음식), 멍게비빔밥 등


통영 세병관
세병관에서 바라본 통영 시내
삼도수군통제영
거북선 모형의 내부 (통영 도남관광단지)
한산도 카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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