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900m의 탁 트인 전망과 1만 5천 평 진보라색 꽃들의 하모니
#경남여행 #아스타국화 #거창별바람언덕 #가을꽃
부쩍 낮아진 기온에 몸이 움츠러들어서일까요? 아니면 단풍이라는 대체재가 있어서일까요? 봄꽃에 비해 가을꽃은 관심이 덜한 것 같습니다. 봄꽃은 벚꽃, 철쭉, 수선화, 진달래 등 화려한 라인업(?)이 생각나는데, 가을꽃은 코스모스 다음에 국화나 백일홍을 생각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최근 경남 거창은 한 가을꽃 때문에 군 전체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아스타(Aster) 국화입니다. 진한 보라색에 이름처럼 '별' 모양인 이 꽃은 은은한 코스모스와는 다르게 강렬합니다. 특히 거창의 아스타 존(Zone)인 거창별바람언덕은 해발 900m 가까운 감악산 정상 부근에 펼쳐져 있는데,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탁 트인 풍광, 그리고 수직으로 높게 뻗은 풍력발전기가 어우러져 가히 가을의 '잇뷰'를 만들어냅니다.
'아휴, 아빠 언제까지 가야 돼요?'
뒷좌석에서 두 남매가 난리가 났습니다. 하긴 이 멀리 산촌에 이렇게 차가 많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도 미리 들은 게 있어서 감안하고 왔습니다만 생각보다 정체가 심각합니다.
그럴만합니다. 갔다 와서 뉴스를 보니 올 가을 축제 기간에만 30만 명이 다녀갔다더군요. 가뜩이나 좁은 2차선 산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니 안 밀릴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가 올라가도 차 못 대는 거 아냐?'
'걱정 마, 위에는 주차 공간 넓대. 조금만 자고 있으면 도착해 있을 거야.'
하도 막히니 옆에 엄마까지 한숨을 쉽니다. 애들 달래랴, 엄마도 달래랴, 정체길 운전하랴...
아빠는 피곤합니다ㅠ.
다행히 사전정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주차 미션은 어려움 없이 완수했네요. 하도 핫해지니 거창군에서 여기저기 깎아 주차장을 계속 만들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자연 훼손이 걱정될 정도로 말이지요.
'와, 바람개비다!'
'바람개비가 아니고 풍차야 풍차.'
도착하자마자 높게 솟은 풍력발전기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보현이는 그냥 바람개비라고 부릅니다. 어디서 구했는지 옆에 몇몇 아이들이 진짜 바람개비를 들고 있는 바람에 보현이도 바람개비 사달라고 졸라댑니다. 그런데 어디서 파는지 도통 모르겠더라고요.
보현이는 산 내려갈 때까지 바람개비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 역시 고생해 올 만하네. 진짜 멋있지?'
도착해서 좀 걷는 동안 하나도 보이지 않았는데, 아스타 존에 도착하니 그야말로 뻥 뚫린 시야에 진한 보라색이 가득합니다. 수려하기로 이름난 봄꽃들에 전혀 뒤처지지 않는 멋진 뷰입니다.
여기 거창별바람언덕은 해발 952m 감악산 정상에 가까운 능선 주변이어서 보라색 꽃 아래로 멀리 너른 전망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바람개비(?)가 시야를 수직으로 갈라놓아 더 멋진 구도를 만들어냅니다. 최근 아스타 국화를 심어놓은 곳이 전국에 여러 곳 생겼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이곳 거창의 뷰는 다른 곳과는 달리 특별합니다.
'와, 진짜 예뻐요.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나현이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하며 꽃구경을 합니다. 반면 보현이는 아직도 바람개비 타령입니다.
좀 생소할 수도 있는 아스타 국화에 대해 소개하자면, '아스타'는 사실 콩글리시이고 영어로 '별'을 뜻하는 'Aster'입니다. 원산지가 북아메리카로 'New York Aster'라고도 불리며, 한자식 표현으로는 '우선국(友禪菊)'이라 합니다. 직역하면 '친구를 깊이 생각하다'인가요? 그래서 꽃말도 '믿음·신뢰'라고 합니다.
국화 중에서도 이르게 피는 꽃으로, 백과사전에는 개화시기가 8~10월이라고 합니다만 최근에는 온난화 때문에 9월 기온도 상당히 높아져서 거의 10월이 다 되어서야 본격적인 개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유난히 늦더위가 심했던 올해(2024)에는 9월 말 예정이었던 전남 신안의 아스타 국화 축제가 취소되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곳 거창의 아스타 존은 상황이 다릅니다. 전에 '윗세오름'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1km 올라가면 6.5℃씩 추워지기 때문에, 해발 900m 근처에 있는 거창별바람언덕은 지표보다 거의 6℃는 낮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여기는 9월 중순만 되면 보라돌이 세상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별'이라는 이름 때문인지 이곳의 지명은 '거창별바람언덕'이고 아스타 국화 축제의 이름은 '감악산 별&꽃 여행'입니다. 실제로 이곳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의 인공위성 레이저 관측소가 있는데, 평소에는 비공개이지만 때에 따라 천체 사진전 등을 열어 일반에 공개도 하는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꽃밭에서만 시간을 보냅니다만 저는 계획이 따로 또 있었습니다. 바로 근처에 있는 감악산 정상(952m)에 가는 것입니다. 오르막 거의 없이 평지나 다름없는 길을 1.2km만 가면 준 1,000m급 산 정상에 갈 수 있는데요!
'아빠, 또 산에 가요?ㅠ'
'이거 산 아니야. 봐봐. 거의 한강공원 같은 길이잖아. 조금만 가면 돼.'
'저기 봐, 나비다 나비! 호랑나비도 아니고 저건 뭐지?'
역시 아이와의 여행에서는 약간의 뻥(?)도 담긴 달래기 스킬이 중요합니다.
해발 952m 감악산 정상입니다. 파주에 있는 감악산(674m)과는 다른 산이고 높이도 훨씬 높습니다. 소위 '영남알프스'라고 하는 경남 지역의 1,000m급 봉우리들에 거의 뒤처지지 않는 상당한 고봉인데, 보현이도 거의 어려움 없이 올 정도로 편하게 왔습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요!
고도 차이는 별로 나지 않지만 아까 아스타 존과는 확연히 다른 녹색의 거대하고 웅장한 자연 뷰입니다. 보랏빛 포토존에서만이 아니라 여기에서도 얼마든지 인생 사진 건질 수 있을 터입니다.
'와, 뷰 봐라. 이런 거 한번 보고 가야 되지 않겠나.'
영남에 왔으니 저도 모르게 영남 사투리를 흉내 내 봅니다.
내려오는 길에 나현이에게 이번 여행 어땠냐고 물었더니 완전 대만족이라고 합니다. 하긴 나현이도 이렇게 예쁜 진보라색의 가을꽃은 처음 보았겠지요.
'보현아, 너는 어땠어? 뭐가 제일 좋았어?'
'그네 탄 게 제일 좋았어요.'
그런데 보현이는 꽃에 별로 감흥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남자 애들이란...
[연계 여행 정보]
- 최적 시즌 : 9월 말~10월 중순(감악산 별&꽃 여행 축제)
- 연계 여행지 : 거창 창포원, 거창사건추모공원, 거창산림레포츠파크(2024.11 예정)
- 교통 : 서울시청에서 311km, 대구시청에서 94km, 광주시청에서 139km, 거창터미널에서 14km
(서울-거창T) 동서울T에서 1일 5회, 남부T에서 1일 9회, 각각 편도 3시간 20여 분
(대구/부산) 대구서부T에서 1일 25회, 편도 50분 / 부산서부T에서 1일 10회, 편도 2시간 40분
(거창T~) 특별한 대중교통편 없음(산 아래 입구에는 1일 6회)
- 먹거리 : 고추다대기(찌개, 국, 밑반찬 등), 어탕국수(이상 향토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