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습

2장. 불면

by 문성 Moon song Kim

4. 몸을 일으켰다. 아무리 눈을 감고 기다려 봐도 잠은 멀찌감치 달아나고만 있었다. 벽에 기대어 앉아 한층 환하게 드러난 방안의 풍경을 둘러봤다. 여전히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이 어지러웠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되돌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나만의 것이었다. 그는 단호했다. 그의 인생에서 나를 제외하는 것 밖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굴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만이 아니라 말투도 표정도 행동까지도 그의 모든 게 더 이상 무엇도 잇고 싶지 않다고 단언하고 있었다. 이미 헤어진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상황을 더 지독하게 끌고 가려고 하는 건지도 몰랐다.


선택해야 했다. 이대로 헤어지길 택할 수도 찾아가길 택할 수도 있었다. 어떤 것을 택하는 게 나을지 가늠해봐야 했다. 택하고 나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그중에서도 최선의 상황은 무엇이고 최악의 상황은 무엇인지, 그려봐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다면 그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자문해봐야 했다.


이대로 헤어지길 택한다면 최선은 오늘과 같은 날을 견디는 것이었고 최악은 그러고도 사귀기 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었다. 찾아가길 택한다면 최선은 그와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고 최악은 역시 예전으로도 돌아가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택하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같았다. 이대로 헤어지길 택하고 오늘과 같은 날들을 견뎌낸다 해도 그가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찾아간다면,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해볼 수는 있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해도 아직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 설사 그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온다 해도 내 두 귀로 똑똑히 확인하고 싶었다.


찾아가기로 마음먹고 나자 이후의 모든 상황을, 특히 최악의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궁리해둬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해도 선택을 후회할 수는 없었다. 선택을 후회하다가 선택한 나를 후회하게 되고 결국에는 나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지경에 이르고 싶지 않았다. 뒤늦은 자책까지 하게 되기는 싫었다. 그러니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일종의 예방접종인 셈이었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려고 하면 할수록 상상은 최악의 최악으로만 치달았다. 그가 끝끝내 헤어지겠다고 한다면, 붙들고 늘어지는 내게 질려한다면, 싫어하다 못해 생판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된다면, 과연 감당할 수 있을까. 가늠할 수도 없었다. 후회하지 않겠다는 각오는커녕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는 각오조차 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내 안에서는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찾아가 봤자 우리 관계를 되돌릴 순 없을 거라고. 이대로 그만두는 편이 낫다고.


어두워지는하늘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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