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즐거움을 더해주는
만드는 즐거움

의"식"주 일상실험

by 문성 moon song

1.

요리를 좀 더 잘하고 싶어졌다. 워낙 식탐도 많고 음식을 즐기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터라 먹어본 것들과 먹고 싶은 것들을 떠올리며 검색으로 레시피를 찾아 요리를 시작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도서관에서 대출가능한 만큼 요리책을 빌렸다.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며 새삼 다시 깨닫는다.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요리가 있고 그만큼 요리법도 다양하다. 간단한 레시피들을 찬찬히 읽어내려가며 그 뒤에 숨어있는 맛과 취향, 스타일의 차이들을 상상해보는 게 제법 재미있다.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깨닫는다. 아무리 다양한 요리법과 요리들이 있어도 내가 갖고 있는 식재료들로 내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것. 어떤 요리책도 정확히 내가 원하는 것으로 만드는 무언가를 알려주지도 않고 내가 그리는 요리를 보여주지도 않는다. 책에 따라 재료를 사고 계량법과 조리도구를 사지 않는 이상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결국은 제한된 재료와 조건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은 역시나 창조적인 부분에 기댈 수 밖에 없고 그점은 큐레이팅이나 글을 쓰는 것, 그림을 그리는 것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혼자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래서 내가 요리를 재미있게 여기나보다.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는 나, 취향 참 일관되다.


2.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을 어떤 요리로 어떻게 풀어나갈까. 나는 더없이 진지하게 냉장고 문을 열고 생각에 잠긴다. 재료의 신선도가 제일 중요하겠지. 그렇다면 급선무는 야채. 오래 둘수록 맛이 떨어지는 건 가지. 저렴하게 사온 가지의 양이 꽤 된다. 밀프렙으로 가지덥밥을 떠올린다. 그것만으로도 가지를 다 쓸 수 없을 것 같은데, 고민하다가 어느 일본음식점에서 먹었던 일본식 가지조림이 머리를 스친다.


레시피를 몇가지 골라 읽어보고 비교해보며 머릿속에 순서를 그려본다. 냉장고에 있는 다른 재료들도 슬쩍 조합해본다. 마늘과 청양고추와 구운 가지를 쌀위에 얹어 밥을 하고, 양념장을 만든다. 남은 가지는 기름에 오래 구워내서 일본식으로 만든 살짝 단 조림장에 푹 담궈둔다. 남은 버섯도 살짝 구워 곁들인다.

두번째로 기다리고 있는 재료는 순두부. 순두부와 연두부의 차이란 어디에 담겨서 팔리느냐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나서는 순두부를 애용한다. 저렴한 가격에 포장 역시 최소화되어 있어 쓰레기를 덜 만든다. 역시 저렴하게 세팩 묶음으로 샀더니 양이 너무 많다. 역시 오래 냉장고에 두고 먹을 순 없으니 다양한 방법을 궁리해본다. 중화풍으로 만드는 연두부덮밥. 한 팩은 두 끼분량으로 나눌 수 있다. 아침이나 저녁에 허기질 때 간단히 드레싱과 함께 식사대용으로. 가볍고도 단백질이 보충되는 메뉴.

피곤에 지쳐 집에 돌아와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어느날. 간단히 토스트를 굽고 그 위에 스프레드를 발라먹는다. 어떤 걸 바르느냐에 따라 다양해지는 맛. 친구가 선물해준 콩포트에 가까운 사과조림과 마트에서 세일하는 상품으로 -유통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굉장히 저렴하게 산- 바질페스토를 바르면, 맛이 풍부해진다. 여기에 할라피뇨를 더해주면, 단맛과 감칠맛과 매운 맛이 더해져 입을 깔끔하게 해준다. 스스로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어서 맥주 한 캔을 따서 함께 먹는다. 가벼운 식사 겸 반주.

다시 새로운 한주가 시작되는 일요일 저녁. 이제는 자연스럽게 도시락을 쌀 생각을 한다.

냉장고가 비워지는 걸 보는 게 이렇게 기쁠 일이었나, 남은 재료들로 메뉴를 생각하다가 이케아에서 사두었던 베지볼과 야채를 함께 굽는다. 맛을 생각해보며 할라피뇨를 곁들인다. 뭔가 부족할 것 같은데, 고민하다가 호두를 곁들인다.


3.

따뜻한 한끼가 주는 즐거움은 만들면서 더욱 커진다는 걸 새삼 느낀다. 재료를 택하고 다듬고 요리로 만들어가는 즐거움. 식탁에 올리고 멋과 맛으로 눈과 입을 만족시키는 즐거움. 든든하게 몸과 마음을 채우는 즐거움. 자연스럽게 다음을 고민해본다. 단백질이 부족한 것 같으니 고기류를 좀 더 추가해봐야겠다. 냉장고에 남아있는 총각김치는 어떻게 맛있게 먹어볼까. 떠오르는 메뉴들을 꼽아본다. 또 다시 더없이 진지하게 사소한 한끼에 나의 정성을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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