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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성 moon song Oct 26. 2022

취향을 점검하는 가을맞이 그리고 겨울준비

의식주일상실험


10월이 되었다. 가을이 갑작스레 왔고 깜짝 추위를 오가며 다시 갑작스레 겨울로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화사하게 쏟아지는 햇살에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가 해가 지고는 뚝 떨어진 기온에 쫓기듯 돌아온 저녁. 다시 한번 가을을 맞이하고 겨울을 준비할 시간이 되었구나 실감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할 일이 많아 부담이 되면서도 설렜다. 2020년 여름부터 이곳에서 살면서 2년을 채우고 이제 세 번째 맞는 가을. 오롯이 나의 취향대로 가꾸어나가고 또 즐기는 시간이 주는 기쁨을 알고 있기에.


1. 의: 여름옷 정리 그리고 가을 옷 꺼내기

햇살이 눈부신 날 아침에 모아둔 여름옷을 깨끗이 빨아 햇살 아래 널었다. 마른빨래에 묻어나는 햇살 내음이 좋아서 강아지처럼 코를 박고 가만히 냄새를 맡았다. 침대 아래 수납장 깊이 넣어두었던 가을 겨울옷들을 꺼내고 여름옷들을 차곡차곡 개어 넣었다. 가을 옷들을 꺼내어 윗단 행거 안쪽에는 긴 원피스들을 왼쪽 행거에는 외투류를 걸고 아랫단 안쪽에는 윗도리와 니트, 후디, 조끼들을 아랫단 왼쪽에는 짧은 것부터 긴치마, 정장 바지류를 걸었다. 이제 내 것이 된 엄마의 트렌치코트도 곱게 걸어두고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 재킷, 스웨트 셔츠도 걸며 그 옷들을 입었던 순간들을 그리고 새로이 입을 순간들을 그려봤다.   


베이지색 트렌치코트와 부드러운 가을코트들 그리고 패턴무늬 원피스들. 따뜻하게 몸을 감싸는 니트의 계절.

그런데 이런. 가벽과 행거로 만든 ㄱ자의 초미니 드레스룸은 가을 옷만으로도 꽉 차고 말았다. 금세 가을이 지나고 긴 겨울이 이어질 텐데 이를 어쩐다. 몇 년 전부터 옷은 일 년에 서너 번도 사지 않고 있었지만 절대적으로 작은 공간이라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겨울옷을 걸고 나면 옴짝달싹할 수 없이 좁아 애를 먹었다. 원피스와 상하의는 겨울까지 입게 될 테고 가을 외투 일부를 넣고 겨울 외투를 추가해서 걸어야 하는 상황.

막다른 골목 같지만 거꾸로 새로운 방법을 궁리해볼 때인지도 모른다. 우선 안 입는 옷들을 정리해서 최대한 양을 줄어보기로 했다. 당근과 헌 옷 수거함의 도움을 받아 이참에 내가 좋아하고 나에게 잘 어울리는 옷들만 남겨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불어 효율적으로 옷을 수납하는 방법도 더 찾아보기로 했다. 매번 설레는 마음으로 옷을 고르고 입는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기에.

 


2. 식: 커피와 케이크 그리고 외식 외식 외식

박물관 퇴사와 더불어 혼자가 되면서 출근을 하지 않으니 아침이 여유로워졌다.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눈을 뜨는 시간도 자연스레 늦어지고 아침식사는 가볍게 아니면 아침 겸 점심이 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10월에는 거기에 더해 저녁에는 누군가를 만나 외식을 하게 되는 일이 늘었다.

10월은 나에겐 매우 특별한 달. 법정공휴일인 연휴도 많고 심지어 우리 가족들의 생일도 10월에 몰려있다. 어려서부터 10월은 모처럼 기분을 내거나 축하를 일일이 기다리고 있는 설렘과 들뜸의 연속이었는데 일을 하면서는 더더욱 10월은 행사, 공연, 연계 프로그램들이 넘쳐나는 축제의 달이 되었다. 조용히 지나겠거니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여기저기에서 기억해주고 축하해주어 외식을 하다 보니 직접 요리를 해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도 케이크로 일주일 아침식사를 대신한 건 즐거운 일이었다.

원래 단 음식을 잘 못 먹는 편인데 선물로 받은 케이크를 소중히 아끼며 음미하고 싶어서 아침마다 진한 커피를 내려 일주일 내내 먹는 진기록을 세웠다. 파아란 하늘과 높은 햇살 그리고 음악을 들으며 마시는 진한 커피와 달달한 케이크는 올해도 역시 10월을 축제처럼 지나게 해 주었다. 2018년도 엄마가 생일 축하노래를 불러주는 영상을 꺼내보며 조금 울긴 했지만. 여전히 음식으로 감동하고 음식에 좌우되는 식탐 가득한 나. 가을이 가기 전에 다시 요리에 시간을 들여야겠다. 함께 나누어먹으며 고마운 마음을 나눠야겠다.



3. 주: 이부자리부터 겨울맞이 공간 보수까지

봄부터 여름까지 쓰던 이부자리를 가을 겨울 이부자리로 바꾸었다. 속 이불은 햇살에 바삭하게 말리고 이불 커버와 배 겟 잇은 과탄산소다로 불려 깨끗이 빨아 넣었다. 다시 부스럭거리는 오리털이불을 꺼내고 따뜻한 노란빛의 커버로 이부자리를 깔고 나자 가을이 온 것을 실감했다. 쿠션도 다시금 정리해주고 목디스크를 악화시킨 대형 삼각 쿠션을 당근에 내놓았다. 이부자리가 더욱 아늑해졌다. 서늘한 기운을 느끼며 풍성한 이불 속에 들어갈 때마다 포근하게 감싸는 그 감촉이 얼마나 좋은지. 마음이 노곤하게 풀리며 따뜻해진다. 얼른 이불속으로 들어가 은은한 머리맡 조명을 켜 두고 느긋하게 보내는 잠들기 직전의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여름의 후덥지근함을 견디고 나면 맞이하는 서늘하고도 건조한 공기가 얼마나 쾌적하게 느껴지는지. 하지만 밤에 급격히 떨어지는 기온 탓에 서늘함이 냉기로 돌변해 곧 온몸을 웅크리게 만드는 추위가 찾아올 것을 경고했다. 미루면 안 될 것 같아 조금 이르게 겨울 맞을 준비를 시작했다. 에어컨 케이블을 정리하고 갈라진 곳이나 들뜬 곳, 바람이 들어오는 곳을 확인했다. 창틀과 창문, 현관문과 문틀의 아귀가 벌어지는 틈새, 문틀과 방바닥의 벌어지는 틈새, 욕실 나무계단 아래 메꾸어둔 백시멘트의 갈라진 틈새, 욕실의 천장과 타일에 벌어진 틈새 등. 보수할 곳을 확인하고 인테리어를 하며 남은 자재와 도구들을 꺼내어 거실 한편에 펼쳐두었다. 맘먹고 일을 하는 게 쉽지 않아 생각한 방책. 눈앞에 보이니 잊어버리지 못할 테고 또 자재들을 치우고 싶어서라도 가을이 다 가기 전에 보수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욕실의 부스와 선반처럼 쓰던 창틀은 더욱 견고하게 마감하고 틈새를 채우고 나면 보일러의 온기를 더욱 오래도록 따뜻하게 누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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