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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r text Aug 06. 2021

다육이가 시들어버렸다

 어머니는 식물을 참 잘 키우신다.

 기억에 남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우리 집 베란다는 항상 녹색 식물들로 가득했다. 선물 받은 난은 물론이고 어딘가에서 얻게 된 모종이나 작은 꽃까지, 우리 집에 들어와 어머니의 손길을 닿은 것은 매번 푸르게 푸르게 자라났다. 아버지가 사무실에 뒀다가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화분들도 집에만 오면 다시 살아났고,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더 이상 기본 화분에서는 키울 수 없어 분갈이를 해야 할 정도로 건강해졌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좁은 자취방을 벗어나 내 집이 생기자 나도 식물이 키우고 싶어 졌다. 보고 자란 것이 있으니 나도 잘 키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도 조금 있었다.

 첫 시작은 작은 다육 식물이었다. 당시 팀장님께서 다육 식물을 길렀는데 이 아이들이 너무 잘 자라 더 이상 집에 둘 곳이 없다, 그래서 조금 나눠주려고 하는데 필요한 사람 있냐는 말에 손을 번쩍 들었다. 팀장님은 다음날 엄지손가락 절반 정도 되는 깊이의 작은 화분 두 개에 담긴 다육식물과 영양제를 가져다주셨다. 물을 줄 때는 화분째로 주면 된다, 물에 영양제를 조금 섞어 주면 더 건강하게 자란다. 다육이는 키우기 쉬운 식물이니 한번 잘 키워보라는 말씀에 미약했던 자신감이 조금 더 커졌다. 작은 사이즈도 마음에 들었고 다육이라고 불리는 이름도, 통통한 잎도 귀여웠다. 어지간한 환경에서 다 잘 자란다고 하는 적응력에 마음이 놓였고 집안의 미세먼지를 정화하는데도 효과가 좋다고 하니 만족스럽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왠지 잘 기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보고만 자란 것과 직접 해보며 자란 것에는 정말 큰 차이가 있다는 점, 근거가 없는 자신감은 반드시 실패하고 만다는 점을 알게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면 된다는 말을 철석같이 준수하며 영양제까지 한 방울씩 떨어트려 주었지만 우리 집으로 온 다육이는 3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렸다. 처음 1달은 잘 자라는 것 같더니 2달 즈음부터는 기운이 없어지는 것 같다가 3달째에 접어들자 급격히 생명력을 잃고 만 것이다.

 팀장님 집과 우리 집이 뭔가 환경이 많이 달랐을까. 기계처럼 주기에 맞춰 물을 주는 것 만으로는 안 되는 걸까. 물을 줬는지 아닌지 기억하지 못해 너무 오랫동안 안 줬거나 너무 자주 주었던 걸까? 초반에 너무 잘 자라서 진작 분갈이를 해줬어야 했는데 너무 좁은 곳에 방치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다육이가 힘을 잃고 시들시들할 때 영양제를 몇 방울 더 줄 것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찾아봤어야 했을까? 어지간한 환경에서는 다 잘 자란다고 했는데 우리 집은 그 어지간한 환경조차 되지 못한단 말인가? 수많은 궁금증과 개선사항을 남긴 채, 나의 첫 식물은 이렇게 내 곁을 떠나버렸다.


  두 번째 도전 역시 다육이었고, 세 번째도 다육이었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있는 꽃집에서 전시해 둔 다육이가 눈에 들어와 집으로 데려왔다. 꽃집 주인에게 물은 어떤 주기로 주어야 하는지, 어떤 방법으로 주어야 하는지. 시간대 같은 것도 있는지 철저하게 물어보고 집에 와서도 인터넷을 열심히 뒤적거렸다. 그러나 이 친구들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쩌면 너무 작은 것들을 사 와서 그런 건지 몰라. 크기가 조금 더 크면 갑자기 외부 환경이 바뀌어도 더 잘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번에는 아예 양재 꽃시장에 가서 다육이를 하나 더 데려왔다. 이번엔 두 번째나 세 번째보다 더 정성을 들여 물을 주고 관리했다. 조금 시들시들 해지는가 싶으면 햇빛이 부족한가 싶어 해를 따라 화분을 옮겨주고,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려나 싶어 이 여름 더위에 창문을 열어 오직 다육이만을 위한 환기를 하기도 했다. 확실히 크기가 더 커서인지 이번엔 앞선 시도들 보다 꽤나 잘 자라는 것 같았다. 조금씩 통통해져 가는 잎을 볼 때마다 뿌듯한 것이, 이 맛에 식물들을 키우는구나 싶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죽어 버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햇빛이 강할 때 물을 줬던 것이 문제였을까. 딱 한 번이었는데. 무럭무럭 자라던 다육이는 어느 날부터인가 갑자기 줄기가 얇아지기 시작하더니 통통하던 잎도 점점 말라비틀어지고, 하나둘씩 잎을 떨어트리고 겨우겨우 버티다가 마침내 완전히 죽고 말았다. 또 실패라는 아쉬움보다 잘 자라고 있던 식물을 죽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기분이 무척이나 울적했다. 왜 내가 데려오는 것마다 죽을까. 나는 식물을 키우면 안 되는 사람인 걸까. 대체 뭘 얼마나 더 해줘야 저 녀석들이 죽지 않고 잘 자랄까.


 베란다가 녹색 식물들로 가득하도록 가꿔냈던 어머니. 집에 다육이를 더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이 자라 주위에 나눠주기까지 해야 했던 팀장님. 그분들은 식물들을 그렇게 키워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을 쏟았던 걸까. 물을 너무 자주 줘서, 화분을 너무 여기저기 옮겨 다녀서, 애정과 관심이 지나쳐서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만은 않았고 때로는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분들은 관심을 줘야 할 때와 홀로 자라나도록 내버려 두어야 할 때를 다 알았던 거겠지? 사랑이 너무 과해도 상대를 죽게 만들고 너무 부족해도 죽게 만든다는 것을 다육이를 키우며 깨닫게 되었다.


 이제 우리 집에 남은 식물은 두 번째 다육이와 세 번째 다육이 사이에 선물 받은 작은 선인장 하나뿐이다. 지금까지는 잘 자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저 선인장도 잘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우 살아남아 생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 녀석에게는 어느 정도의 사랑을 언제 어떻게 줘야 하는 것일까. 부디 이 녀석만은 나를 떠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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