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r text Oct 08. 2021

즐거이 버티기

꾸준함에 대하여

꾸준함은 모든 것을 이긴다.


 언제, 어디에서 처음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말을 무턱대고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방면으로든 타고난 재능이나 번뜩이는 영감 같은 것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이라도 뭐든 꾸준히만 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으리란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지금은 하기 싫은 것도, 잘 못하는 것도 꾸준히 하다 보면 좋아하게 되고, 잘하게 될 거야." 뭐 이런 기대와 희망 같은 것들. 지금이야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돈  방향이다." 같은 말을 뼈저리게 느끼며 산다지만, 그래도 꾸준함의 힘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올 초에는, 원대한 목표를 몇 개나 정해놓고 한 해 동안 다 이뤄내고 말겠다고 시작했다가 금세 포기했던 지난날과 다르게, 꾸준히 해낼 수 있는 작은 목표들을 세워보기로 했다. 내게 도움이 될 만한 작은 행동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게 습관이 되고, 그 습관들이 쌓이면 내게도 좋은 변화가 생기겠지-라고 작전의 변화를 시도해 본 셈이다.


 목표들은 '영양제 챙겨 먹기'나 '내일 입을 옷을 정해놓고 자기'처럼 가급적 소소한 것들로 정했다. '매일같이 운동하기'나 '독서하기' 같이 난이도 있는 목표도 있었지만 출퇴근할 때 이동한 것도 운동으로 친다거나 웹툰을 보는 것도 독서에 넣는 등 나름의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이렇게 나름 전략적인 판단으로 정한 목표가 총 8개였다. 애초에 과하지 않은 것들로 정하고 여러 가지 편법도 준비해 두었으니 일 년간 꾸준히 실천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실천하려고 보니 쉬이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반면 마지못해 하는 일도 있었다. 전부 다 나 좋자고 정해둔 목표인데 결과는 어쩜 이리도 다른지. 게다가 좋아서 쉽게 하게 되는 일에 비해 미루다가 마지못해 하는 일들은 훨씬 많은 노력이 필요한데 비해 이뤄낸 성취는 상대적으로 낮았다. 마지못해 해온 일들을 돌이켜 보자니 마치 수학 같았다.

 수학은 나를 참 힘들게 했던 학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이과를 선택한 이래 공대까지 갔지만 나는 끝끝내 수학을 좋아하게 되거나 잘하게 되지 못했다. 대학을 가야 했고 학점을 따야 했으니 자의든 타의든 꾸준히 하기는 했지만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조금씩 하며 그저 그것이 필요 없게 되는 순간까지 버텼을 뿐이었다. 덕분에 수학을 기본으로 깔고 가야 하는 전공과목에도 쉽게 흥미가 생기지 않았고, 자연히 잘하지도 못했다. 꾸준히 하기는 했으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것이다.



 꾸준하다는 말의 어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꾸준하다.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끈기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

 1) 한결같이 :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이

 2) 부지런하다 :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꾸준하게 열심히 하는 태도

 3) 끈기 :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기운


 부지런함을 설명하는 부분에 엑셀에서의 순환 참조 같은 말이 조금 섞여있기는 하지만, 꾸준하다는 말의 의미를 풀어보면 대략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꼭 같이 어떤 일을 꾸물거리거나 미루지 않고 열심히, 쉽게 단념하지 않고 끈질기게 견디어 나가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보자면 나는 수학을 꾸준히 한 것이 아니었다. 꾸물거리거나 미루다 했던 날들이 훨씬 많았으니까. 꾸준히 했다기보다 버텨냈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싫고 못하는 것을 버텨서 얻게 된 것은 스스로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도움보다는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의 성취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나마의 성취를 얻는데 필요한 노력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내는데 비해 몇 배나 더 컸다. 세상을 살면서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 수는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므로, 이렇게 버텨내는 것이 무의미하거나 필요 없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고 때로는 꾸준함 만큼이나 중요하니까. 다만, 그저 버티기만 하는 꾸준함으로는 모든 것은커녕 아무것도 이기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우리는 때로 버텨내는 것과 꾸준히 한 일을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분명 버텨내는 것과 꾸준히 한 것은 다른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그렇게 오랫동안 꾸준히 했는데 달라지는 것이 없어."라고 말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버텨낸 것을 꾸준히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마지못해 하다 보니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던 것을 열심히 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도 예외 없이 이렇게 생각했고, 수학은 아무리 꾸준히 해도 도저히 친해질 수 없는 학문이라며 취직하자마자 정을 떼 버렸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수학 문제를 푼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내겐 여전히 별나라 같은 소리다.


 나같이 의지가 약한 이에게는 버텨내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는 도전이다. 버텨내야 하는 무언가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면 결과가 만족스럽진 못할 지라도 어쨌든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다만 버텨내는 것은 그를 위한 노력이 너무 많이 들고, 만족스럽지 못한 성취에 실망해서 꾸준함의 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된다는 단점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버텨내고 있는 것들도 조금 더 즐거이 해보려고 한다. 내키지 않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테지만 그래도 버텨낸 일이 아니라 꾸준히 한 일이 될 수 있도록. 얼마 전에 브런치에서 보내온 푸시 메시지처럼, 나의 '꾸준함'이 '재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그래서 내 맘 속 꾸준함의 미덕이 빛을 잃지 않도록.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이전 12화 나의 오래된 데스크톱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