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부터 귀가 아프게 듣던 말이다. 그러나 이런 모질이에게 직업의 중요성은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오히려 치킨 집의 아들이라는 타이틀은 주변 잼민이들의 부러움을 사 언제 어디서나 환영받았었다. 나는 그런 당신의 직업이 참 좋았고 유일무이한 행운이라고 여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에게 귀천이 나뉘지. 그런데 이런 생각은 지금에야 훈련이 되었기 때문인 건가, 혹은 내 마음에서 우러나는 걸까. 그 당시 읊어댔던 당신의 한 서린 눈빛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왜 자꾸 공부를 시키는 걸까.
나도 당신처럼 그 직업을 잘해나갈 자신이 있지만, 당신의 바람은 오롯이 본인과 다른 인생이다. 당신의 소망인 의사, 판검사, 과학자만이 귀한 직업이었다. 그럼에도 당신이 굽신거리며 얻어온 한 두 푼에서 저 문구가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당신의 모질이가 그런 당신의 꿈을 이루어 주고자 했다. 공부를 시작하고부터 대학, 대학원. 이제는 학술대회를 오가며 석학들과 이야기 나눈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들어 댈 때마다 기어코 부모의 직업을 숨기라고 말하는 당신이 있다. 학연, 지연, 혈연 그 무엇 하나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이유로 본인 일 터도 숨기려 드는 당신의 눈빛은 그 시절의 눈빛과 사뭇 달라 보인다. 그럼에도 나는 언제나 당신의 직업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댄다. 남의 집 식모살이든, 과일장수든 치킨집 사장이든, 당신의 직업은 나에게 전혀 천하지 않다. 당신이 살아온 인생이 천하지 않기 때문이다.
멀리 떠나온 지금에서도 저 말을 계속해서 강조하는 당신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게 들려온다. 물론, 알고 있다. 누구보다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당신이라는 걸. 이제는 당신의 모질이가 보다 잘 되어 본인을 떠나버릴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도. 도움 하나 줄 수 없어 미안해하는 그런 당신에게 매번 화가 나는 이 병신 같은 모질이는 토이 솔저 같은 스스로가 미울 뿐이다.
당신의 직업은 모질이의 앞 길을 헤처 나가는데 전혀 방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앞으로도 자랑스럽고 감사한 직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