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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드니 이작가 Jul 18. 2021

슬기로운 방콕생활

내 삶은 예능? 다큐?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오후 3시이고 너무 좋은 날씨이다. 날씨가 좋다는 것은 얼굴에 뿜어대는 미스트처럼 비가 와서 집에서 커피 마시며 책 보기 좋다는 것도 아니고, 눈이 내려서 첫사랑을 생각하며 분위기에 취한다는 애기도 아니다. 오늘은 겨울을 재촉하던 찬 바람도 없이 햇빛이 비춰 큰 베란다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고 등 뒤로 햇볕이 따뜻하게 감싸주고 살랑거리며 들오어는 바람을 코끝으로 느끼게 해주는 날씨라는 뜻이다.  


그런데 시드니의 락다운(Sydney Lockdown)으로 거주지 10km 이내에서 아주 필수적인 외출만 허용한 상태라 하루 종일 집에서 머무르기로 맘을 다잡았다. 탈출의 시도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 구글(Google) 지도를 켜서 10킬로 이내에 있는 골프장 세 곳에 전화해보니 모두 부킹이 완료되어서 골프도 못 치고 냉장고에 대패삼겹살과 채소, 깍두기, 쌀, 파스타 등 먹거리도 충분하다. 


그래서 날씨에게는 무례하지만 영화도 보고 넷플릭스 보고 책도 보고 있다. 좁은 아파트이지만 소파에서 앉아서 보고 베란다에서 서서 보고 침대에 누워서도 본다. 워낙 밖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지라 고등학교 졸업 후 이런 날씨에 실내에 있다는 것이 어색하고 하다. 하지만 Stay home 명령을 잘 지키는 나의 준법정신과 일선에서 고생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는 공동체 의식에 스스로 기특해한다. 


<대화의 유희 3>에 나온 소설가 황석영, 밀라노 할머니 밀라 논나의 이야기로,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오사카 나오미>로 공지영의 소설 <즐거운 나의 집> 이 집에 있는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 주었다. 또 브런치에 쓸 글감도 생겨서 이 따뜻한 햇살이 저물어 나의 창의력도 사그라들기 전에 글을 쓰자고 채촉하게 되었다. 


20대 오사카 나오미, 60대인 공지영, 70대 밀라 논나 그리고 80대 황석영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이야기하고 서로 느낄 수 있는 인생 다큐멘터리가 좋다. 출판은 못했지만 나의 첫 브런치 책 My Story Your Sydney 도 나의 이야기를 시드니로 포장한 것이다.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도 소설의 형식을 빌린 자신의 일기이고 <대화의 희열>도 자기의 인생 이야기를 유쾌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40대 중반인 나의 삶은 황석영처럼 현대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도 없고, 밀라 논나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도 못했다. 뭐 그리 할 말이 많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면서 느끼는 것을 표현하고 스스로 더 좋은 인간 되려고 노력한다는 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줄 만한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일이 잘 풀린 적도 있었고, 삶이 나에게 벌을 내린다고 느낀 적도 있었다. 항상 인생을 여행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삶은 댜큐일까? 예능일까? 나의 삶을 어떤 이야기로 채워갈지 또 어떻게 기록할지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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