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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Nov 22. 2020

엄마의 봄

연둣빛 물풀 바다에 어룽 대면

우영팟 복숭아꽃 놀란 듯 피고

덩달아 피어나는 엄마의 열병

곡기를 끊고 유정한 노랫가락에 묻혀

한라산 소주만


무자년 가을. 성산포 광치기 해변 터진 목

햇살에 번득이던 칼 날 같던 파도

쟁강쟁강 떨어지는 목숨들

군인 눈에 꽂혀 건져진 초라한 생명 하나

봄, 1949년

물오르는 열아홉이 만난 봄

나를 잉태한 봄

육지 군대 철수하니 아버지도 같이 떠나

나는 미혼모 호래자식

동네 사람 복잡한 눈길 등에 찔러도  

돌아보니 엄마에겐 꿈결 같은 6개월

소주병 바닥 한 모금 털어 넣으며

낙수처럼 한 방울씩 떨어지는 한숨


엄마의 봄은

갯바람 축축한 새벽 포구 젖은 스웨터

난간에 쌓여가는 연녹색 소주병

도립병원 입원환자로 무르익고

퇴원할 때쯤

그해 봄은 다 간 것

언제부터 엄마는 오롯이 나의 엄마

연녹색 몸 푸는 바다 소주로 털어내고

짙푸른 성산 바다 말 달리는 은빛 파도

눈물 삭혀 피어나는 전복죽 달인


4.3 학살이 있던 성산 일출봉 앞 광치기 해변( 사진 뚜벅이)


작가의 말)

성산포가 고향인 시이모님은 봄이 되면 도지는 원인 모를 병으로 항상 입원을 하셨다. 식음을 전폐하고 영양주사에 의지하여 소주만 드시다가 퇴원하기를 매해 반복하셨다. 나중에야 시이모님이 학살 현장에서 육지 군인이 살려주었고 그 군인은 남편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이모님 딸은 그 군인과 살림을 차려 이듬해 봄 낳은 자식이었다.  이듬해 봄 군부대가 철수하면서  그 군인도 돌아가 연락이 두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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