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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Oct 29. 2020

나의 벗, 오매춘

1949년 2월,

칼바람 살 헤치고 유령처럼 나타난 너

여릿한 딸 검게 언 손 품에 녹이며

" 너는 산다, 이 아이를 맡아 도라"

그날 총살된 나의 벗, 매춘이


마을에서 여학생은 단둘,

감색 세일러복 뽐내며

우리는 하늘이 어디 붙어있는지

몰랐지

한 책상 6년 같이 쓰며

눈도 비끗 안 해 본 우리


강요배, <한라산 자락 사람들>, 1992년, 캔버스에 아크릴, 112×193.7cm



5.10 선거 피해서

아기 업고 새별 오름 오를 때

산이 허옇게 올라온 사람들

매춘아, 아무래도 산이 이길 것 닮다

그때 우리는 똑 같은  마음


“독세기* 만한 섬에서

우리만 반대해 본들

대륙이 같이 움직이지 않으면

일이 되겠느냐"


갑자기 막아서는 사상가 남편

아이 업고 나서는 새카만 밤길


포대기에 갓난아기 둘러업고서

달 없는 밤 명월 성터 돌고 또 돌며


"이렇게 하다가 통일이 안 되면

우린 역적이 되는 거 아니가?"


새벽녘에 나눈 마지막 대화

근심에 얼룩지던 날, 그날

그날로 산에 오른 내 친구, 매춘이


바싹바싹 다가오는  긴 그림자

동네 어른 모여들어 산사람과 교섭할 때

투항하라 간곡한 부탁 들으러

약속한 날 약속 장소에

혼자 내려온 내 친구, 매춘이


동네 삼촌님들,

우리가 마음을 돌리지는 못 허쿠다

오늘 우리가 승리해질 거라 믿어서도 아니우다

몇십 년 후 아니면 백 년 후에라도

이 나라가 동강 나서 통일 꿈 사라질 때

분단조국 막아보려 싸운 사람도 있었다고

지는 싸움 하다 간 선배들도 있었다고

우리가 남길 유산, 이거 말고 뭐 있수과?


아이 업고 밤길도 가볍게 날아다닌

구우 공립 보통학교 6년 단짝 친구 매춘이


“오 매춘 때문에 우리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도 다 죽고 , 우리 동네 망했어”

원망 탕탕하던 사람들도 죽고

나도 이젠 폭삭 늙어

 

철창에, 총성에, 휘발유에  

그때 그 외로운 죽음들

누가 남아 증언할거나




작가의 말)

오매 춘(梅春:1917~1949) 여성 정치인, 한림면 명월리 태생.

명월리 유지 집안의 딸 오 매춘은 구우 공립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첫 단체인 신인회(新人會) 소속  소년회(한수풀 소년단)에서 민족의식을 키웠다. 이때 하수 풀 소년단을 이끌었던 이익우 씨(1910~ ) 독립운동가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수풀 소년단 출신은  8·15 광복 이후 해방된 국가 건설에 큰 몫을 하게 된다. 이 모임의 일원이었던 장성년 씨(작고)는 그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오 매춘을 증언해주신 장성년 씨( 1917- 작고), 1991년 촬영

 

우리는 한수풀 소년단에서 책으로 배우지 않고 강령으로 했지. 단체로서. 그날 가면 제목 써놓고 가르쳐주고. 내용 중에 제일 깊은 것은 ‘우리가 지금은 일본 놈한테 타격을 받지마는 언젠가는 해방이 되리라’는 독립운동 사상을 가르쳐주고, 문달현 선생님은 노래로 가르쳤어.


해님은 서산에 빛을 숨기고

어두운 빛은 사방에 두말려온다

만경창파에 노를 저어라, 희망봉에 오르라

자유 안락을 누리는 노랫소리 들린다 


 이익우는 특별한 사람이지, 나는 12살이 돼서 1학년 갔어, 우리가 이익우를 만날 때는 3학년부터야. 이익우가 옥살이 가기 전이지.  15세쯤 된 사람은 이익우가 다 모이게 했어. 독립사상으로.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꼭 향사 집에 토요일이면 모여. 모이면 이익우가 연설하기를 ‘지금은 우리가 일본 아래서 살지마는 언젠가는 우리 민족은 해방된다’는 ‘말을 해요. 학교에 갔다가도 집에 안 들르고 토요일이면 꼭 가게 됐어요. 머리가 그쪽으로만 가 있는 겁니다. 그때는 전화가 있었던 것도 아니라 직접 연락을 해오죠. 그것도 단체로서 하는데 ’ 우리 조국을 위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 언젠가는 우리가 독립할 수 있다’고 하면 그때는 꼭 그 생각을 갖게 되고 배가 고파도 그 회의를 봐야만 집에를 오게 돼요. 15살이 되니까 머리가 이상하대요.  

   이익우는  할아버지가 정의 군수 했고. 나하고는 남매같이 지냈는데 왜정 때부터 독립운동해가지고 그 사람 옛날에 죽을 사람인데. 아내 때문에 살았어요.

 우리가 풍설에 듣기를, 이익우가 전남도당 서기국장으로 일하다가 교도소 갔는데, 그때는 광주교도소에 있을 때 간수 보고 ‘왜 같은 일을 하고도 남에게 미움당허며 사느냐, 좋은 일을 하며 살 수도 있는데, 내 말만 잘 들으면 잘 살 수 있다’고 하면서 간수를 꼬인 거라요, 그러면 어떻게 해서 내가 당신을 살릴 수 있겠냐고 간수가 물었겠죠. 이익우가 내 말 만 들으면 된다고 해서, 그러니 형무소 밖에 몇 정목 몇 메다에 자전거 둘이 있으니까 1번은 남편, 2번은 간수해서 그걸 타고 광주에서 딱 도피한 거라. 간수가 생명을 내놓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목숨을 건졌죠. 그러니까 부인은 밖에서 포섭을 한 거죠. 어떻게든 빼내 주기만 하라, 그렇게 남편을 옥중에서 빼내 주라고 하고 그러면 중간에서 연락하는 사람이 또 있어요. 그룹쁘(group)가 있죠. 남편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쨌든 살리고 싶었겠지. 중간에 노력한 사람이 있겠지. 아무 때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어야 살죠. 이익우 말에 그냥 녹은 거라. 여수에 오니까 여수에서 배가 딱 대기하고 있다가 두 사람을 실어라 해서 그냥 시모노 새끼로 내빼는 거라. 일본 가니까 그 사람 이익우보다 더 성공했어요. 

이익우가 지금 82세야.(1990년 기준) 우리 집에 왔다 간지가 한 달 되었네. 


  그때는 보통학교에 들어가면 술집 여자 취급을 했거든요. 우리 할아버지가 한문학자로 독선생 하고 그러니까 어쨌든 자손들에게 글은 배워야 한다고  남기는 건 글이다 하셨죠. 35세에 돌아가시며 그런 유언을 해서 우리 어머니가 나 혼자 가지고 일생을 마쳤는데 나를 학교에 보냈어요. 12살 되던 해에.

 오매춘과 나는 보통학교 동창이라. 우린 한 세상에서, 같은 책상에서 6년 동안 생활해도 눈 까닥 하나 안 하고 살았어. 우리 할으방(남편)이 좌익이니까 나에게 권유할 것 없이 자연히 자기가 한림면 서쪽 활동을 하고 있으면 동쪽은 내가 할 것이라 생각했겠지. 난 사상가 남편을 두니 조심하느라 꼼짝 못 했어요. 

  매춘이는 5.10 선거 반대, 그 운동을 소리 나게 했어요. 한라산 중산간 마을 명월 금악 돌아다니면서 주동을 하다가 너무 이름이 나버려 숨을 데가 없어가지고 부모네 있는 데 왔어. 자수했으면 살았을지도 모르지. 학교 집에서 군인들이 기관총으로 화-르르 하게 모조리 다 죽여버렸지. 이북 청년(서북청년단 경찰)에게 총살당했어.(1949.1.12)

 아이고 매춘이 일이 잘도 억울 허여. 자기 일생을 놔서 이렇다 하면 사상운동을 한 3년 해실거라. 행복하게 살지도 못하고. 딸 하나만 낳고. 이혼은 해도 운동을 하다 보니까 자기 남편 하고도 온다 간다 했을 겁니다. 머리빡이 같으니까 만날 수밖에요.  그 남편도 그걸로 죽고. 죽게 될 때, 딸을 친구에게 맡기며 ‘나는 죽지만 너는 산다, 이 아이를 거두어다오’ 했지요.  그래서 우리가 세밀한 말을 할 수가 없어요. 자기가 죽으면서 사상가는 '죽을 때는  혼자 목숨을 끊어라' 해서 혼자 딱 죽었어요. 참, 오 매춘 말을 하려니 눈물이 나오네요. 14 식구 중 막내 남동생 한 사람 살고 다 총살시켰어요. 아버지가 왜정 때 한림읍사무소 서기였어요. 한문이 막 유식하지. 오매춘 부모도 며칠 후 총살되었죠. 역시 시국에 대한 것은 통일이 돼야 밝혀지겠지. 지금은 깨끗이 말을 하려고 해도 못해. 잘도 머리가 영리한 사람인데 참 억울해.  언제면 통일돼서 그 사람 명예회복을 할까?


 오매춘은 성공도 못 할 일을 왜 하느냐는 마을 어르신들의 걱정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한다. 

" 우리가 하는 일이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단조국을 막으려고, 통일된 나라를 만들어보려고 이렇게 애쓰다 간 사람도 있다는 걸 10년, 아니 100년 후에라도 후손들에게 알리기 위해 싸웁니다. 그 외에 우리가 남길 게 뭐 있겠습니까?"  





*달걀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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