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당봉* 오름 밭 축축 늘어진 조코고리*
동짓날 되도록 서리 맞을 때
밭담에 펄럭이는 붉은 양단 이불포
가로로 걸린 금착한**굵은글씨
“인민 공화국 만세!”
애타게 휘날리다 가지에 걸린
붉은 노을 속 이불포 현수막
시커면 밤에 북 북 뜯어다
뒤집어 동생 저고리 만들고
남은 동가리로 비단 복주머니까지
강요배 <녹두꽃> 캔버스에 아크릴릭, 112*193.7,1994
밭고랑 뒹구는 시체
신발이며 옷이며 박박 벗겨다
핏물 왈랑왈랑 헹구고 부챗살 퍼지는 봄볕 쪼여
오일장에 내다 팔고
산이 이길 땐 빨치산 상대로 고무신 장사
경찰이 셀 때면 토벌대 앞 알랑알랑 막걸리 장사
돈은 이렇게 버는 거여
가만히 입 벌려 앉아 있어 보라
누가 밥숟가락 넣어줘?
한가해야 눈물도 나오는 거주
조코고리 베어다 쇠죽 닮은 좁쌀죽
파래 범벅, 톳 범벅, 바릇 범벅
산으로 바다로 눈이 벌겋게 돌아다녀
큰언니 옆 뱅뱅 돌며
제비 입 쳐다볼 때
두 살 터울 다섯 동생 모두 건져낸
큰언니, 매운 우리 언니
강요배 , 아기 안은 소녀, 1971
작가의 말)
오랜 세월 어머니와 자매처럼 지내던 분은 고향이 제주시 삼양 마을이다. 그분의 부모도 4.3 때 돌아가시고 큰언니가 남은 동생들을 부양했다. 큰언니는 경찰을 상대로 수단껏 막걸리 장사도하고 산사람들을 상대로 신발 장사도 하며 남은 가족을 먹여 살렸다. 어느 날 언니는 붉은 비단 천으로 동생들 치마를 만들어 줬는데 그 천은 산사람들에게 마을 사람들이 바친 현수막을 밤에 뜯어와서 만든 거라고 했다. 사람들은 어쨌든 그 위기에도 살아내야 했고 생존 앞에서는 어떤 명분도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조이삭이 누렇게 익은 밭 담 위로 펄럭이는 붉은 비단천에 쓴 글은 산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을 사람들의 지지였겠지만 그걸 뜯어다 동생들 옷을 만든 큰언니도 그 시국을 살아야 하는 마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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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삼양동에 있는 오름 이름
** 조이삭의 제주어
***가슴이 놀라 내려앉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