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한 때 바람이었다가
구천을 떠도는 바람이었다가
누군가의 어머니, 아내, 누이, 딸이 아닌
작은 년, 큰 년, 말자, 끝순이가 아닌
김해순, 임완숙, 황여순, 고수아*...
의젓한 내 이름으로
검은흙 아래 누워
바람 까마귀 몇 마리
검은 옷 정중한 조객으로
지키고 있는 곳, 거기 그 자리
미군정 총부리 맨손으로 잡던 그 기개로
골르르 족족 *한 세상 여엿차
미완의 꿈, 흙 가슴으로
백비**되어 누워 있노라
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누워있는 제주4.3평화재단의 <백비>
"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리라."
작가의 말)
해방공간의 제주도는 여성들 활동이 활발했다. 역사적으로 제주는 환경의 특성(밭농사 바다농사 등)상 여성 노동력이 더 긴요한 곳이었다. 타 지역에 비해 경제적 독립을 가진 여성들이 많았고 시대에 비해 주체적 사고를 가진 이들도 많았다. 조선시대에 이어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된 조혼 제도나 가부장 제도, 축첩 관습 제도 등을 거부하려는 움직임은 그들을 제주 4.3 항쟁의 주역으로 또는 조력자로 나서게 했다. 그 진보의 열풍을 막아선 미군정에 대한 반감은 1947년도 3.1 대회를 막아서는 경찰의 총부리를 잡고 " 누구를 향한 총부리냐"라고 기염을 토하던 여성의 목소리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때 활동하는 여성들이 간절히 원했던 남녀, 빈부가 공평해지는 미래 사회에 대한 열망의 빛은 60 년 후에야 조금씩 이루어졌다. 해방공간의 여성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 더러는 제주 4.3 평화공원에 이름 석 자로 누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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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4.3 평화공원 행방불명된 사람들 비석에 새겨진 여성 이름들
* * 치우침 없이 골고루
** * 4.3 평화공원에 4.3의 역사적 이름을 정하지 못한 채 누워있는 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