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명복 <침묵>
난 사람이 아니우다 게(아닙니다요)
난 이름도 어서(없어)
성도 모르 커라(모르겠어요)
노망 붙어서 아무것도 몰라
제주 섯알오름 구덩이
몬짝 시꺼단 큰 구덩이에 비와 부난(모두 실어다 큰 구덩이에 버렸으니)
게난 범벅이 되어 분 거 아니?(그러니 뒤범벅이 되어 버렸어요)
물에 골라 앉아 부난 (시신이 물에 가라앉아 버리니)
긁은 꽝 좀진 꽝(굵은 뼈 가는 뼈)
바게쓰로 뜨고 박새기로 건지고 했주게(양동이로 뜨고 바가지로 건지고 했어요)
어떵 구별 헐 거라?(어떻게 구별을 합니까?)
몬딱 섞어졍(모두 섞어져 버렸으니)
머리빡 하나에 좀진 뼈 여나문 개 씩(머리뼈 하나에 가는 뼈 10여 개씩)
무덤 만들멍 했주게(무덤 만들었어요)
느 것 나 것이 어수다 게(내 것 네 것 구별이 없어요)
백조일손 묘역 (2019 촬영)
한림면 한림리 강원세神位
한림면 귀덕리 고일선神位
애월읍 어음리 양시하神位
한림면 금릉리 김운학神位
대정읍 하모리 고운경神位
대정읍 하모리 김남우神位
대정읍 하모리 김동원神位
대정읍 하모리 이 태실神位
안덕면 사계리 김군희神位
인덕면 덕수리 김하윤神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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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우리 오라버니 이름 나왐신게(나오네요)
우리 아방 어멍 이름도 나왐신게
나 올해 오면 다신 안 올 꺼(안 올 겁니다)
옛날 애쓴 어른들 하나도 안 보염신게(보이네요)
박진희 <질문의 숲 2>, 고무신 오브제, 2019
잠깐 지서에서 불럼젠 허난( 부른다고 하니)
밥 숟가락 던져두고 나간 오라버니
경찰서 마당은 텅 비어 있고
트럭에서 던진 검정고무신
한 짝씩 한 짝씩 고무신 길 따라
섯알오름 탄약고까지 갔주게(갔어요)
그냥 보기만 했주게(했어요)
건들면 나도 빨갱이엔 헐거난(시신을 거두면 내게도 빨갱이 누명을 씌울 테니까)
살 다 썩은 후제야 몰래 간 거라(살이 다 썩은 후에야 몰래 간 겁니다)
1960년 세우고 뒷 해 경찰이 파괴한 비석 파편들
친정 아무도 어수다(친정에 남자들이 없습니다)
나 메기( 나뿐, 아무도 없어)
나이?
부끄러왕 나이를 어떵 말 허여?( 부끄러워 나이를 어떻게 말하나요?)
난 아무것도 모릅니다 게(몰라요)
노망 붙어부난
난 사람이 아니우다 게(아닙니다)
이름도 나이도 끝내 밝히지 않던 유족 할머니(2019년 백조일손 위령제에서)
작가의 말)
자신들이 섯알오름 일제 고사포 진지였던 사형장으로 가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은 트럭 위에서 신발을 하나 씩 던져 자신들이 총살된 장소를 알렸지만 유족들은 접근할 수 없었다. 유족들에 접근할 수 있었을 때 이미 시신은 부패되고 녹아 문드러져 바가지로 뼈만 건져냈다. 집안의 남자들이 다 죽고 혼자 살아난 자신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위의 할머니는 그 일을 했던 분이다. 이렇듯 섯알오름에 <벡조일손 묘>가 조성되고 의젓한 위령비가 세워지지 까지는 사연이 많았다. '조상은 100 명이나 자손은 하나'라는 뜻의 백조일손 비석을 처음 세웠을 때 박정희 정권은 " 빨갱이들 비석을 세운다"며 비석을 부쉈다. 다행히 그 파편을 모아 민주화의 힘으로 새로 조성된 4.3 위령비 옆자리에 조성하여 지난한 역사의 발자취를 알게 해 준다. 이 사례처럼 어두운 과거를 깜쪽같이 없애는 것보다 그대로 두고 설명 안내판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2006년에 다시 세운 섯알오름 위령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