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멍, 분시 어신* 우리 어멍
남자 이름만 붙은 사람이
오라면 따라가고
가라면 돌아오고
울타리 해 줄 남자 찾아
신촌에서 성산까지
허천나게 다니며
아들 낳고도 못살아
다시 돌아온 설운 어멍
1948년 무자년 12월,
와삭와삭 조여 오는 죽음의 그림자
아기 포대기에 마른 조침떡**찔러주며
할머니의 지엄한 분부
-우리 늙은이들은 앉은자리 죽어도 그만,
너는 살아 씨앗 보존 허라
오라비는 그때 네 살
포릇포릇한 막내는 한 살 물 애기
경찰도 군인도 산사람도 다 무서워
한라산 눈벌판 쫓겨다니다
손에 잡은 오라비 푹 쓰러지는데
한데 벌판에 버려두고
포수 총 피하는 노루 새끼로 헤매다
- 얘야, 아기 좀 봐라, 울지도 않고, 자는가
- 어멍, 애기 눈이 이상 하우다
죽은 아기 업고 종일 다닌
미련한 우리 어멍
춥고 배고파 기어들어간 밤
나는 하마하마 잠들고
어머님, 어머니~임
우리 어멍 정지문 가만가만 흔들 때
- 씨종자 할 손자들 다 죽이고 씹년 들만 들어왔느냐
올레 밖으로 쫓겨난 우리 어멍
식은 밥 한 양푼에도 치마 올리고
오라는 사람 있으면 졸졸 쫓아가
아기 낳고 살다 못 살면 돌아오고
나 시집간다는 기별에
인편에 부쳐 온 명주 한 필
얼굴도 가물가물한 우리 어멍
아기 업고 서방질 다닌
허황 ***들린 우리 어멍
강요배 <이승과 저승사이>, 캔버스에 유채, 140*227, 1991
작가의 말)
동네에서 은근히 무시당하는 엄마 또래의 여성이 있었다. 그분의 친정어머니가 여러 남편을 전전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최근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는 4.3의 상흔이었다. 죽은 아이를 찾으러 갈 기운도 없어 그 여성의 어머니는 아는 집에 찾아가 " 나 밥 좀 도라(달라) 기운이 있어야 시체를 거두러 갈 거 아니가(아니냐)"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그 여성은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아주어 내가 고아는 면했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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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없는, 분별없는
** 좁쌀로 만든 설기떡
*** 헛것이 몸에 들어와 혼이 나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