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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Sep 20. 2020

빨간 가죽 꼬까신

- 고 김진언 할머니를 생각하며


어찌 안 오냐고

지인 편에 몇 번을 물으셨다는

그 소식 듣고도

선뜻 가지 못하다가

고향 뜨기 전날

부랴부랴 들려

할머니~ 할머니이~

하마하마 내 목소리에

오랸댜(*)~

튀어나오실까 봐

나와서 내 손 끌고

어서, 밥 먹어라 하실까 봐

마루 건너 할머니 방

닿지 않을 그만큼만

살금살금 기어드는 소리로

초가집 섬돌 앞

오도카니 세워놓은

잠든 아기 업고 오느라

흘리고 온 아기신발

슬쩍 챙겨 들고

40년 고향 함께 뜬

빨간 가죽 꼬까신


김진언 할머니의 방에서 (1991년 촬영)


몇 년 후

바람결에 들은 소식

돌아가셨다고,

49제도 마쳤다고,

멍하니 서 있던

활처럼 휜 용눈이 오름


1949년 6월, 선흘리 보리밭

검은 밭담 사이마다 빼곡한 총구

손들고 걸어 나갈 때

이미 나는 죽은 목숨

경찰서 취조실

여덟 사람 돌아가며 담뱃불 지질 때

손도장 하나면 끝났을 것을

이만큼 살았으니

통일되면 담배나 피워 보련다고

씨익 웃으시던 무구한 얼굴


그날의 빨간 가죽 꼬까신

섬돌 위 할머니의 마음

도둑질하듯 끌어안고

내 살 길 궁리에

허둥지둥 빠져나온

할머니 집, 북촌 올레길


 

할머니가 말년에  살았던 집



작가의 말)

4.3 활동가로 25년 형을 살고 나오신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며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왔다. 결혼 후 내 삶이 바쁘고 고단하여 할머니와 만남이 뜸해졌다. 마음으로는 평생 우리 외할머니 대신 모시려고 했는데. 할머니와 인연이 10년쯤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제주를  떠나게 되었는데, 난 이상하게도 할머니께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어버이날 아이 업고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가 자는 아이 둘러업고 오느라 신발을 두고 와서 그 신발을 가지러 왜 안 오냐는 전갈을 받았지만 못 가고 있다가 제주를 떠나기 전날에야 툇마루에 세워진 신발만 갖고 돌아왔다. 방안에 할머니가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그날 난 뒤에서 누가 머리끄덩이 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나오며 버스 안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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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느냐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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