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김진언 할머니를 생각하며
어찌 안 오냐고
지인 편에 몇 번을 물으셨다는
그 소식 듣고도
선뜻 가지 못하다가
고향 뜨기 전날
부랴부랴 들려
할머니~ 할머니이~
하마하마 내 목소리에
오랸댜(*)~
튀어나오실까 봐
나와서 내 손 끌고
어서, 밥 먹어라 하실까 봐
마루 건너 할머니 방
닿지 않을 그만큼만
살금살금 기어드는 소리로
초가집 섬돌 앞
오도카니 세워놓은
잠든 아기 업고 오느라
흘리고 온 아기신발
슬쩍 챙겨 들고
40년 고향 함께 뜬
빨간 가죽 꼬까신
몇 년 후
바람결에 들은 소식
돌아가셨다고,
49제도 마쳤다고,
멍하니 서 있던
활처럼 휜 용눈이 오름
1949년 6월, 선흘리 보리밭
검은 밭담 사이마다 빼곡한 총구
손들고 걸어 나갈 때
이미 나는 죽은 목숨
경찰서 취조실
여덟 사람 돌아가며 담뱃불 지질 때
손도장 하나면 끝났을 것을
이만큼 살았으니
통일되면 담배나 피워 보련다고
씨익 웃으시던 무구한 얼굴
그날의 빨간 가죽 꼬까신
섬돌 위 할머니의 마음
도둑질하듯 끌어안고
내 살 길 궁리에
허둥지둥 빠져나온
할머니 집, 북촌 올레길
할머니가 말년에 살았던 집
작가의 말)
4.3 활동가로 25년 형을 살고 나오신 할머니와 인터뷰를 하며 오랜 시간 인연을 맺어왔다. 결혼 후 내 삶이 바쁘고 고단하여 할머니와 만남이 뜸해졌다. 마음으로는 평생 우리 외할머니 대신 모시려고 했는데. 할머니와 인연이 10년쯤 되었을 때 우리 가족은 제주를 떠나게 되었는데, 난 이상하게도 할머니께 그 말을 하지 못했다. 어버이날 아이 업고 할머니 댁을 방문했다가 자는 아이 둘러업고 오느라 신발을 두고 와서 그 신발을 가지러 왜 안 오냐는 전갈을 받았지만 못 가고 있다가 제주를 떠나기 전날에야 툇마루에 세워진 신발만 갖고 돌아왔다. 방안에 할머니가 계셨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그날 난 뒤에서 누가 머리끄덩이 잡기라도 하는 것처럼 허겁지겁 나오며 버스 안에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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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왔느냐의 제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