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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경인 Aug 19. 2020

아기 업고 서방질

 


어멍, 분시 어신* 우리 어멍
남자 이름만 붙은 사람이
오라면 따라가고
가라면 돌아오고
울타리 해 줄 남자 찾아
신촌에서 성산까지

허천나게 다니며
아들 낳고도 못살아 

다시 돌아온 설운 어멍
 
1948년 무자년 12월,
와삭와삭 조여 오는 죽음의 그림자
아기 포대기에 마른 조침떡**찔러주며
할머니의 지엄한 분부
-우리 늙은이들은 앉은자리 죽어도 그만,
너는 살아 씨앗 보존 허라
오라비는 그때 네 살
포릇포릇한 막내는 한 살 물 애기
 
경찰도 군인도 산사람도 다 무서워
한라산 눈벌판 쫓겨다니다
손에 잡은 오라비 푹 쓰러지는데
한데 벌판에 버려두고
포수 총 피하는 노루 새끼로 헤매다
- 얘야, 아기 좀 봐라, 울지도 않고, 자는가
- 어멍, 애기 눈이 이상 하우다
죽은 아기 업고 종일 다닌

미련한 우리 어멍
 
춥고 배고파 기어들어간 밤
나는 하마하마 잠들고
어머님, 어머니~임
우리 어멍 정지문 가만가만 흔들 때
- 씨종자 할 손자들 다 죽이고 씹년 들만 들어왔느냐
올레 밖으로  쫓겨난 우리 어멍


식은 밥 한 양푼에도 치마 올리고
오라는 사람 있으면 졸졸 쫓아가
아기 낳고 살다 못 살면 돌아오고


나 시집간다는 기별에
인편에 부쳐 온 명주 한 필
얼굴도 가물가물한 우리 어멍
 
아기 업고 서방질 다닌
허황 ***들린 우리 어멍



강요배 <이승과 저승사이>, 캔버스에 유채, 140*227, 1991



작가의 말) 

동네에서 은근히 무시당하는 엄마 또래의 여성이 있었다. 그분의 친정어머니가 여러 남편을 전전했다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최근에 어머니께 들은 얘기는 4.3의 상흔이었다.  죽은 아이를  찾으러 갈 기운도 없어 그 여성의 어머니는 아는 집에 찾아가 " 나 밥 좀 도라(달라) 기운이 있어야 시체를 거두러 갈 거 아니가(아니냐)" 하셨다고 한다.  다행히 그 여성은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고 "어머니가 살아주어 내가 고아는 면했다"라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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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없는, 분별없는

** 좁쌀로 만든 설기떡

*** 헛것이 몸에 들어와 혼이 나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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